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단 Jun 25. 2020

세상은 온통 비극이어라

PC게임 <위쳐3>


2009년 무더웠던 여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은 7월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계속되는 적자로 생존이 어렵다며 2646명의 사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된 수천 명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 아가들은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었고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사원들은 아스팔트 위의 투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해고를 당한 사원과 사측은 다각도로 협상을 시도했지만 타협점을 찾기는 불가능했다. 회사는 대쪽처럼 완강했다. 정리해고만 아니라면 어떤 자구책이라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상생의 길을 요구하는 사원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결국 교섭은 불발됐고 사원들은 공장 문을 걸어 잠그는 옥쇄파업에 돌입한다.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지겠다는 뜻처럼 이들은 도장 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이미 이 싸움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일지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사회부 막내였던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날마다 평택으로 향했다. 6월이 지나 7월이 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사원들은 청춘을 바쳐가며 일하고 몸담았던 '우리 회사'가 자신들을 이렇게까지 철저하고도 집요하게 파괴할 줄은 예상 못했다. 처음엔 사측 사람들이 집회 현장에 나오기도 하고 서로 눈인사 정도는 하며 험악한 일은 만들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경찰뿐 아니라 회사에서 고용한 용역업체의 등빨 좋은 청년들이 수십 명씩 몰려와 걸쭉하게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용역깡패는 꺼져라! 우리 회사에서 나가라!’ 라는 사원들의 외침에 ‘이러니까 니네가 짤렸지 이 XX들아’ 라며 조롱하기 일쑤였다.


푹푹 찌는 여름날임에도 회사는 사원들이 농성 중인 도장 공장에 단전, 단수를 강행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았고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비상사태. 쌍용차 정문 앞에는 해고자 가족들이 찾아와 물과 의약품만이라도 전해주겠다고 사정했지만 회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천년 원수지간인 나라끼리의 전쟁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만큼은 서로 지켜주자는 제네바 협약이 국제법상 엄연히 존재하는 문명의 시대이건만 2009년의 평택에서 그딴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 정문 앞에는 텐트를 치고 밤낮으로 현장을 지키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 모임’ 이라는 예쁜 이름답게 주로 농성자의 부인들이었고 간혹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아가들도 있었으며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이곳으로 곧장 하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지금과는 다르게 언론에 대한 일말의 신뢰가 약간은 남아있던 시절이라 신문, 방송과의 인터뷰에 많이들 응하다 보니 아침에 현장에 출근하면 서로 가볍게 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진 회사는 결국 ‘구사대’를 동원하기로 결심한다. 운 좋게 이번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을 이용해 해고 대상자를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회사를 악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결연한 표정의 이들은 매일 공장으로 출근해 농성자들과 대치했다. 난 살아남았으니까. 공장이 어서 정상적으로 가동돼 차를 팔아야 월급이 나오고 내 새끼들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이들이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정문은 소란스러웠다. 해고자와 생존자로 얄궂게 나뉘었지만 그들 중에는 같은 부서, 같은 라인에 근무하던 동기들도 있었고 친한 선후배들도 많았다. 사는 지역도 대부분 공장 근처의 아파트 단지라 이웃사촌이었고 가족끼리 함께 식사하거나 모임, 주말 캠핑을 다니는 친한 집안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텐트에서 투쟁 중인 해고자 아내 분들과 구사대 출근자 중에는 서로 아는 얼굴들이 꽤 많았던 거다.


“민수 아빠, 저 기억하시죠? 이 생수 박스 복지동에 있는 남편한테 좀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제부터 물을 전혀 못 마셨대요.”

“어머 부장님, 저 하윤이 엄마예요. 이런 식으로 출근하시는 건 좀 아니잖아요. 저희 애 아빠 생각도 해주셔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출근 중이던 구사대는 민망함에 모두 말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 정말 친해 보이는 몇몇은 부인들과 잠시 안부를 나누기도 했다. ‘쉽지는 않아 보인다’, ‘식사 제때 하시고 몸 잘 챙기셔라’ 등 걱정과 격려가 오고 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일로였고 결국 농성자와 구사대, 즉 해고자와 비해고자 간의 과격한 몸싸움이 벌어져 양측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고 감정 또한 한층 격해졌다.


다음 날 아침,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린 채 출근하는 구사대를 향해 해고자 부인들은 소리 질렀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같이 수십 년을 근무한 사람들끼리 어쩜 이럴 수 있냐고, 함께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때 얼굴을 아는 남편 동료를 발견한 아주머니 한 분이 그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다. 뭐라고 말 좀 해보시라고, 오늘 또 쇠파이프 들고 애아빠들 두들겨 팰 거냐고 악다구니를 쓰자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던 남자는 결국 폭발했다.


“야 이 씨X년아! 왜 나한테 그래! 내가 뭐 어쨌다고 어?! 그럼 뭐 다 같이 죽어야 돼? 씨X!”


ⓒ금속노동자 오민규


같이 출근하던 구사대 몇몇이 말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이딴 짓거리나 하고 앉았다며 흥분하더니 농성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쌓아 놓은 생수 박스를 뒤엎고 발로 짓밟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가들은 울었고 부인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옆에 있는 경찰들은 아무런 감정 없는 나른한 눈으로 아침 교대 근무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표정이었고 용역깡패들은 재밌는 구경이라도 났다는 듯 이죽거리며 손가락질 해댔다.

   

싱그러운 햇살 가득한 아침. 세상은 미쳐 돌아갔고 그 한복판에 있던 나는 이 장면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게 맞는지 저 사람들을 뜯어말리는 게 맞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 건지 어디까지가 악이고 어디서부터는 선인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전부 다 내던지고 아주 멀리 고요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오랜 전쟁으로 황폐해진 대지. 피폐해진 민중의 삶. 강자가 약자를, 약자는 더한 최약자를 핍박하는 착취의 고리. 거리에는 전쟁고아들이 넘쳐나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학살이 자행되는 비극의 땅. 2015년 폴란드에서 만든 게임 <위쳐3>가 그리고 있는 잔혹동화의 세상이다.


괴물과 인간, 마법과 검이 공존하는 판타지 세계의 주인공 게롤트. 그는 ‘위쳐’ 라는 존재다. 인간에 비해 모든 능력이 우수하고 수명도 길다. 검술과 마법에 능숙하며 부상을 당해도 빠르게 회복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강화 인간이기 때문이다. 위쳐가 되기 위해서는 극도로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지원자의 대부분은 도중에 사망하고 몇몇만 살아남는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를 위쳐로 만들겠다는 생각조차 않을 테니 대부분의 지원자는 고아나 사생아뿐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무런 희망이 없는 아이들.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고된 시련과 훈련을 견뎌내면 초인적인 힘의 위쳐가 된다. 그리고는 왕국 여기저기를 떠돌며 곤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분쟁 해결, 괴물 퇴치, 실종자 수색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며 먹고살기 위한 투쟁을 이어간다. 인간의 힘으로 처리하기에 벅찬 일들을 목숨 걸고 해결해주지만 정작 도움받는 사람들이 위쳐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나와는 분명 다른 존재. 인간의 눈에는 괴물 잡는 위쳐 또한 충분히 괴물이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마을의 술집에 가도 이방인 게롤트는 환영받지 못한다. 돌연변이 짐승을 대하듯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뱉는 사람들.

“내 면전에서 꺼져 이 괴물아. 네 입김 때문에 내 맥주가 쉬어버릴 것 같으니까!”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있지만 이런 대접에는 이골이 난 듯 무시하고 구석에 조용히 앉아 벌꿀술이나 들이켠다. 이토록 위쳐를 배척하는 이 마을 사람들은 그럼 나쁜 사람들인가?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이곳 테메리아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닐프가드 제국의 침공을 받았다.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피해자들인 것이다. 삶의 터전을 강탈당한 소시민들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정서는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수도나 대도시가 아닌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데도 말이다.



술집에 걸려 있는 테메리아의 백합 문장을 보고 몇몇 주민들은 점령군이 오기 전에 저 표식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며 걱정한다. ‘이제 여기는 더 이상 테메리아가 아니야. 닐프가드에 점령당했잖아’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해보지만 민초들은 힘이 없다. 씁쓸하게 순응할 뿐. 건물 바깥 농부들의 대화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어이, 고이데마르 오랜만이네. 술 한 잔 할 텐가?”

“이젠 데르반이야 데-르-반. 고이데마르가 아니라”

“무슨 말이야? 난 사람들이 자네 탯줄을 자르면서 붙여준 이름을 아는데. 그 이름은 도대체 뭔가? 데르반?”

“닐프가드 식이지”

“아아, 그렇구먼. 그럼 미스터 데르반, 저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요~”


나라를 빼앗기고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까지 하루아침에 바꿔야 하는 수모를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잘 이해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테메리아의 처지도 마치 일제강점기의 조선과 비슷하다.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약사 빠르게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해버리는 사람, 저항하기 위해 무기를 쥐어드는 사람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합집산. 마을의 게시판에 나란히 붙은 두 장의 벽보가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닐프가드 제국군에 입대할 자원병 모집. 숙박과 식량, 보수는 물론 황제 폐하를 섬기는 영광. 신병의 가족들은 복무기간 동안 풍족한 식량을 제공받으며 병사가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했을 경우 가족들은 평생 연금을 받는다
테메리아의 주민들이여! 자유를 원하는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 준비가 되었다면 숲으로 오라. 닐프가드 벌레들에게 우리 테메리아인이 고분고분 멍에를 쓸 리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 외지인들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조국을 위해 긍지 높게 죽을 지어다!



강대한 제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수탈받는 민중. 약하고 핍박받는 그들이지만 약자라고 해서 항상 선이고 옳은 건 아니다. 게임 상에서 이들은 더한 약자와 소수자들을 억압한다. 위쳐도 그런 피해자 중 하나이다. 약물의 부작용으로 고양이 같은 노란색 눈동자에 백발을 하고 다니는 게롤트는 어디서나 천대받는다. 한 아이, 한 가족, 때로는 온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늑대의 탈을 쓴 구원자’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구원자의 탈을 쓴 불청객’ 일뿐이다.


그렇다고 주인공 게롤트가 선인 것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 저편, 깊은 곳의 어둠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게 직업인만큼 타인들과는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냉소적 태도를 견지한다. 산에서 길을 잃은 할머니를 찾아달라는 손녀의 눈물 젖은 부탁에도 보상금부터 흥정하는 게롤트를 선이라 할 수 있을까? 주인공, 동료, 적에 이르기까지 모든 등장인물이 모호한 회색빛으로 가득한 작품. 그러기에 <위쳐3>는 어지럽다. 명쾌한 게 하나도 없다. 모순과 딜레마로 가득 찬 판타지 세계.


수려한 그래픽과 뛰어난 표현력. 화려한 마법과 장쾌한 검무. 매력 넘치는 출연진. 무수히 많은 단역들마저 저마다의 사연과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또 하나의 세상을 화면 안에 완벽하게 구현해낸 작품. 하지만 <위쳐3>에서 충격적인 건 이렇게 테크니컬 한 부분이 아니었다. 선악을 명쾌하게 재단하기 곤란한 상황의 연속. 선의를 베풀었지만 돌아오는 건 악의.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인데 당사자들은 오히려 파멸로 치닫고, 호의는 비극이 된다. 인간이란 모두 이기적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는 안 되는 게 더 많지 않냐고 집요하게 묻는, 현실보다 더 현실감 넘치는 냉소 어린 시선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베스미어: 예전에는 일들이 훨씬 단순했어. 괴물들은 나쁘고 인간들은 선했지. 이젠… 모든 게 혼란스럽군.

게롤트: 예전도 지금과 완벽하게 똑같았습니다. 단지 잊으신 거겠죠.


선배 위쳐와의 대화에서 보듯 이 작품 속 사건들은 대부분 찜찜하고 뒷맛이 쓰다. 결혼식을 앞두고 다른 섬에 살고 있는 자기의 신부를 데리러 간 형들의 행방이 묘연해 위쳐에게 의뢰한 남자. 수색해보니 오는 길에 폭풍우로 신부는 바다에 빠져 세상을 떠났고 동생을 볼 면목이 없어진 형들은 모두 자살해버렸다. 자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예비신부와 형제를 모두 잃은 남자에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좀처럼 입이 안 떨어진다.

   

어느 마을에서는 몇 년째 이어지는 흉년에 폭도로 변한 농민들이 영주가 살고 있는 탑으로 쳐들어가 약탈하고 영주와 영주의 딸인 아나벨을 처형한다. 폭도들 중에는 아나벨의 연인인 그레이엄도 있었다. 어부인 그는 신분 차이로 영주의 반대가 계속되자 아나벨을 데리고 도망치려는 생각에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흥분한 폭도들은 제어가 안됐고 결국 가족들과 같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 저주의 유령이 되어버린 아나벨. 편히 눈감지 못하고 탑에 묶여 이승을 떠도는 그녀에게 게롤트는 사랑만이 이 저주를 풀 수 있다 설득했고 그녀는 이에 응한다.


아직까지도 그녀를 향한 깊은 사랑은 여전하지만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폐인이 된 그레이엄을 찾아간 게롤트. 탁자에 놓인 아나벨의 초상화에 매일같이 촛불을 켜놓고 말을 거는 그의 진심이라면 저주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해 그녀의 유골을 건넨다. 그녀의 평온한 영면을 위해 잘 묻어주고 명복을 빌겠다는 그레이엄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고 떠나는 게롤트. 하지만 몇 걸음 못가 그의 뒤에선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집으로 달려가자 유골에서 튀어나와 괴물로 변한 아나벨이 찢어 죽인 그레이엄의 시체가 처참하게 쓰러져있다. 사랑의 안식이 아니다. 그녀가 원한 건 피의 복수였다.



딱 두 에피소드만 옮겼을 뿐인데도 한숨이 나온다. 선악은 판단키 어렵고 아름다운 결말 따위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이 미친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절절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 <위쳐3>. 함께 웃고 울던 동료의 등에다가 하루아침에 칼을 쑤셔 넣는 건 평택에서도 테메리아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상이었던 거다.


쌍용차를 구원하겠다며 1조 2천억 원의 투자를 약속했던 중국 기업은 기술만 쏙 빼먹고 쌍용차를 버렸다. 정리해고를 원하던 경영진은 회계 조작을 통해 거짓 경영 위기를 만들어냈던 걸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노사 협상의 여지가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경찰청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직접 청와대에 연락해 MB의 진압 승인을 받은 경기지방경찰청장은 대테러작전에나 동원되는 경찰특공대와 테이저건, 다목적 발사기, 최루액 20만 리터로 농성자들을 무차별 공격했고 이는 모두 위법한 공무집행이었던 걸로 경찰청 진상조사위는 결론 내렸다. 경찰은 댓글부대를 동원해 쌍용차 노조원을 폭도로 몰아세우고 경찰에는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불법 공작 활동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북 방첩업무를 담당해야 할 기무사 군인과 국정원 공무원이 노조원들을 불법 사찰하고 공장 내부에 침투해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쌍용차는 노조에 100억 원, 경찰은 노조에 24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불법과 몰상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던 해고자들.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 십 년 동안 무려 30명의 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세상. 피눈물이 흐르고 흘러 호수가 되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정한 수라지옥 같은 세상. 우리는 이 정도의 일상다반사에 놀라거나 상처 받지 말고 익숙해져야 한다. 악령으로부터 구해준 마을 사람들이 정작 일이 끝나자 보상금이 아까워 돌을 던지며 쫓아내도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게롤트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이 공포가 되는 모든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