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단 Jul 22. 2020

언젠가 떠나더라도 잊진 말기로 해요

PS3게임 <저니>


“얘들아 강릉 도착했어! 얼른 내려! 아저씨 잠시만요 저희 내릴게요!”


용수형의 다급한 외침에 고속버스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와 범한형은 화들짝 눈을 떴다. 비몽사몽이던 셋은 정신없이 가방을 들쳐 메고 버스에서 내렸다. 1월 1일 새해맞이 정동진 일출을 보기 위해 '고1 두 명에 중3 한 명' 으로 구성된 우리는 씩씩한 소년 여행단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해변으로 향했지만 구름이 많아 일출은 보지 못했고 그 대신 추억 삼으라며 눈삽을 하나씩 쥐어준 역장님의 배려(?)로 역사 제설작업만 아침 내내 빡세게 했다.


특별히 뭐 볼 건 없는 작은 역이라 저녁은 강릉에 가서 먹자는 쪽으로 중지가 모아져 오후 6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탑승했다. 새해 첫 일출 한 번 보겠답시고 새벽부터 설쳐대서 그런지 버스에 앉아 뜨끈한 히터 바람을 쐬자마자 셋은 곯아떨어졌다. 그 와중에 어렴풋이 안내방송을 들은 잠귀 밝은 용수형이 우리를 깨운 덕분에 겨우 일어났다. 버스에 가득 찬 승객 중 내리는 사람은 우리 셋 뿐이었다. 허겁지겁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하차해 한숨 돌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왼쪽으로는 길고 긴 산맥, 오른쪽은 바다뿐이었다.


영동 지방 최대의 관광도시이자 강원도의 자존심 강릉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풍경이었다. 바닷가에는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황태들이 주렁주렁 걸린 황태덕장이 펼쳐져 있었지만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가파른 산등성이 쪽에도 가게는커녕 인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온 세상이 하얬다. 며칠 전 내린 강원지역 폭설의 여파로 녹지 않은 눈이 잔뜩 쌓여있어서. 셋 다 어리둥절, 황망해하다가 가까스로 상황 파악을 했다. 우리는 잘못 내렸다. ‘강릉’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다른 정거장의 이름을 듣고는 잠결에 번쩍 눈을 뜬 용수형의 귀여운 실수였다.


스마트폰이나 GPS의 시대가 아니었기에 현재 위치가 어딘지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대체 차편이 언제 오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길을 물어볼 현지인은 보이지 않았고 한겨울의 해안도로는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언제 올지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이미 차로 꽤 많이 왔고 그렇다면 목적지까지 얼마 안 남았을 테니 낭만 있게 걸어서 가보자!’ 며 패기 넘치는 결론을 내렸다. [강릉 11km] 라고 쓰여 있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걷기 시작했다. 소년들이라 운전을 해본 경험도 없고 거리 감각도 꽝이라 11km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을 못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추억이라며 낄낄대며 한 걸음씩 힘차게 내디뎠다. 하지만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다 보니 점점 힘들고 지쳐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까지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옷과 머리는 축축하게 젖었고 신발마저 질척대 체력소모가 심해졌다. 그렇게 1시간을 걷자 어느 순간부터 모두 말을 잃더니 묵묵히 땅만 보고 걸었다. 한참 더 걸은 후에 나타난 이정표의 숫자가 [강릉 7km] 인걸 보고는 모두 경악했다. 1시간 넘게 걸었는데 아직 반도 못 왔다고? 슬슬 감정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게 쳐 졸다가 왜 하필 거기서 정거장 이름을 잘못 들어갖고… 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뭐? 나 아니었으면 강릉역도 그냥 지나쳤을 걸? 혹시 문제 생길까 봐 편하게 잠도 못 잔 사람한테 무슨 말이야 그게!”

“허이구, 그 버스 강릉역이 종점이네요 이 사람아. 그냥 쭉 갔어도 종점에서 아저씨가…”

“형들 둘 다 그만 좀 해요. 기운들도 넘치셔 정말.”

“막내는 조용히 해!” (x2)


한참을 투덜대며 분노의 파워워킹을 하던 범한형은 빙판길에 고꾸라지기까지 했다. 벌떡 일어났지만 코피는 뚝뚝 흘러 하얀 눈밭에 빨간 꽃송이처럼 피었다. 지치고 힘든 것도 모자라 피까지 흐르는 친구를 보니 마음이 영 착잡한지 용수형은 우리와 동행하지 않고 혼자 저만치 뒤처져서 따라왔다.

눈길을 걷기 시작한 지 2시간. 젖은 몸도 무거웠지만 그보다는 잔뜩 어색해진 세 사람의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뒤에 있던 용수형은 또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차가 지나가면 팔을 흔들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이렇게 눈 내리는 늦은 밤, 바닷가 도로에서 덩치 큰 청소년 셋을 태워줄 의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의 나 같아도 무서워서 못 태우겠다!)


마냥 걸었다. 어디가 끝인지,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지금 이 순간이 좀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춥고 배고프고 힘든 건 맞는데 그 와중에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같이 옆에서 걷고 있는 동행이 있다는 것, 말하면 들어줄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자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혼자였다면 완주는커녕 애당초 걸을 생각조차 못했을 텐데.


산티아고 순례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사색과 성찰이 이어지는 길. 묵언 수행 중인 승려처럼 서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은 채 각자의 상념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덧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강릉 시내 번화가에 들어섰다. 기록상으로는 2시간 45분.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쥐 잡듯 노려보던 우리는 어깨를 얼싸안고 등을 토닥이며 무사 도착의 감격을 나누는 것도 잠시, 배고파 죽겠다며 감자옹심이를 먹을지 회막국수를 먹을지에 대해 떠들썩하게 갑론을박을 벌여나갔다.




   


(아래에는 <저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황량한 사막. 태양은 뜨겁고 모래는 반짝인다. 유목민들이 쓸 법한 붉은 로브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싼 주인공이 화면에 등장하지만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조작이라고는 가벼운 ‘점프’와 실로폰의 한 음을 치는 듯한 ‘소리내기’ 뿐. 이 두 가지 동작만을 수행하여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 빛나는 곳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간다. 2012년에 출시한 인디 게임 <저니(Journey)>는 이게 전부다.


걷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저 걷는다. 바스락바스락 모래가 발에 밟히는 소리, 물기가 하나도 없는 퍼석퍼석한 바람 소리를 동행 삼아 계속 걷는다. 사막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묘비만 가득하다. 누구의 무덤이고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무너진 다리와 쓰러진 건물, 멸망한 고대 왕국의 흔적처럼 보이는 폐허뿐. 하루아침에 사라진 문명의 기원을 찾기 위한 고행길을 걷고 있는 듯한 주인공. 수도자나 순례자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저 산 꼭대기에 도착하면 삼라만상의 모든 진리와 대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굳은 믿음.



선조의 유산으로 보이는 사원에 도착하면 주인공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한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이내 신비로운 계시와 마주한다. 탄생과 소멸, 번영과 멸망. 추상적인 도형과 그림으로만 표현되기에 명확한 건 단 하나도 없지만 느낌만큼은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렇게 차근차근 세상의 진실을 깨달으며 걸음을 이어가는 주인공.


이렇듯 구도자의 고독한 여정길로만 보이던 작품은 어느 순간 큰 전환을 맞는다. 저 멀리서 나 말고 또 다른 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물리쳐야 할 악당인가 싶었다. 하지만 적의 같은 건 찾아볼 수조차 없고 반가운 듯 펄쩍펄쩍 뛰어오는 상대. 나와 똑같은 복장과 모습, 땅에 닿을 듯 긴 스카프를 메고 있는 사막 패션까지 비슷하다. 같은 사람이라 해야 할지 같은 종족이라 해야 할지 표현은 애매하지만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이 흘러넘쳤다. 홀로 사막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 적적한지는 이미 충분히 느꼈으니까.



모래 언덕을 함께 걸으면서 동행하는 친구를 가만히 지켜보다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고 이내 의혹은 확신으로 변했다. 깜짝이야! 이 친구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NPC, 가공의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다. 적잖이 놀랐다. 프로그래밍된 캐릭터로 보기에는 비효율적이고 엉성한 움직임이 너무 많았다. 언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엉뚱한 길에 들어서서 한참을 헤매다가도 어느 틈엔가 옆에 다가와 자분거린다. 이 불규칙한 움직임, 확실한 인간이다. 하지만 어디의 누구인지, 성별이나 나이, 컴퓨터 유저인지 플레이스테이션 유저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소통 수단이라고는 ‘점프’와 ‘푱-!’ 소리뿐인데 이것만으로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은 함께 간다. 동행인이 뒤쳐지면 올 때까지 잠시 대기하기도 하고, 내가 좀 버벅거릴 때는 그가 언덕 너머에서 기다려준다. 건물 잔해 사이를 바람에 몸을 싣고 뛰어넘는 타이밍이 좀 까다로워서 같은 곳에서 계속 떨어졌더니 영 답답했는지 그가 내 곁으로 내려왔다. 지금부터 하는 시범을 잘 지켜보라는 듯 우선 “푱-! 푱-!” 소리를 두 번 내더니 폴짝폴짝 가벼운 몸놀림으로 건물을 올랐다. 알려준 대로 조심조심 뛰어오르자 꼭대기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는 껑충 뛰면서 외쳤다. “푱푱푱-!” 뭔지 모를 따뜻한 느낌.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소리라고는 “푱!” 이라는 음정 하나뿐. 하지만 왜인지 상대방은 내 감사 인사를 충분히 알아들은 느낌이다.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게 분명한데 왜 어이없을 만치 심플한 한 음의 소리만으로 이렇게나 많은 마음이 전달되는 걸까.



다음날 회사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전날 하던 부분에서부터 이어서 플레이했다. 이번에도 동행인은 나타나 줬다. 그런데 뭐지? 미세하게 스타일이 다르다. 움직이는 타이밍, 점프의 감각, 푱푱 거리면서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 어제의 친구와는 확실히 달랐다. 아… 어제의 그 친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구나 얘는. 당연히 그렇겠지. 어제의 친구가 딱 내가 하는 시간에 맞춰서 또 나타나 줄 수는 없겠지. 전 세계에서 이 게임을 지금 시각에 플레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오늘 만난 새로운 친구와 보폭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저니>는 이런 작품이다. 사막과 설산, 고대 유적이 잠든 깊은 동굴 속을 한 명의 방랑자가 되어 하염없이 걷는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말은 전혀 통하지 않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동지가 되고 우정이 싹튼다. 물론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우정을 쌓지 않아도 된다. 옆에 있는 이를 두고 저 멀리 혼자 가버려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엄연히 길고 긴 여정의 일부분일 뿐. 아무리 좋은 동행인과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고, 별로 탐탁지 않은 동행이라면 이내 자연스럽게 길이 갈린다. 회자정리의 현신과도 같은 게임이다.



작품의 막바지에 이르면 최후의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설산에 도착한다. 눈보라 속을 헤치며 몸은 점점 얼어붙고 의식 또한 멀어지지만 이는 결국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떠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주인공. 이내 새파랗게 맑은 하늘을 향해 두둥실 몸이 떠오르면서 시작되는 황홀한 비행. 빛의 산 최정상에 도착해 스스로가 한 줄기의 빛이 됨으로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구도의 완성. 빛줄기는 지금까지 걸어온 순례의 여정을 거슬러 되돌아간다. 게임의 첫 출발지였던 사막에 다다르자 아래에 보이는 건 이제 막 순례의 여정을 떠날 채비를 마친 초보 방랑자 한 명. 험난한 길이 기다리는 그를 자애롭게 굽어보며 빛은 저 멀리로 멀어져 간다. 아름답고 처연한 마무리.


<저니>는 서둘러 진행하면 두어 시간 남짓으로도 엔딩을 볼 수 있는 짧은 작품이다. 이렇게 얇은 볼륨의 타이틀임에도 플레이어 저마다의 마음속 호수에 작지만 오래 남을 파문을 안긴다.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한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 소중한 가치를 찾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여정 도중에 만난 누군가와의 짧은 동행이 눈에 밟혀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게임 쇼핑몰인 스팀의 이용자 후기를 보면 대부분 ‘이 게임은 그래픽이 어떻고 조작감이 저렇다’ 같은 테크니컬 한 평가들이 많다. 하지만 <저니>에 달린 코멘트는 좀 다르다. IT와 디지털을 신봉하는 냉철한 파워 게이머들이 분명할진대 그들의 가슴속에 이런 몽글몽글함이 남아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스쳐 지나간 인연과의 소회를 안타까움과 고마움이라는 두가지색 펜으로 꾹꾹 눌러 써내려간 사람들.


- 함께해서 고마웠어. 잘 살아. 다음에 또 만나자

- 누군지 모를 당신 덕분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 사막에서 바늘을 찾아낸 것처럼 우연히 만난 이와 여행을 하다가 또 어느 순간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듯 헤어지게 되더라

- 네가 못하는 걸 내가 하고 내가 실수한 걸 네가 바로 잡아줬지

- 내가  게임을 가끔씩 다시 하게 되는 까닭은 혹시 누군가 나처럼  사막을 홀로 천천히 걸으며 외롭지는 않을지. 내가 너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언젠가 떠나보낸 네가 아쉬워서. 다시 만난다면 인사하고 싶어서

- 오늘 다시 만난 네가 어제의 너와는 다를지라도 이 사막에서 네가 기다려지는 까닭은 결국 나도 외로워서인가보다. 너와 내가 이별하는 순간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직전에 펼쳐진 광활한 비행을 한 번 더 했을 텐데. 글로 전할 수 있다면 너에게 ‘고마워, 사랑해, 잘 가’ 꼭 얘기해 줄 텐데


함께 정동진을 여행하던 꼬맹이 셋은 이제 중년의 아저씨들이 되어 한 사람은 4인 가정을 예쁘게 꾸린 뉴욕의 디자이너, 한 사람은 홀로 담담히 삶을 관조하는 서울의 회사원, 다른 한 명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몇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고 생사도 불분명한 우리들. 하지만 3시간 동안 고난의 눈길을 함께 걸으며 티격태격하다가도 ‘우와 저기 바다에 불빛 봐! 오징어배 정말 예쁘다’ 며 같이 감탄하던 그날의 강릉 밤바다는 무척 아름다웠고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옆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과 사랑의 애틋한 함수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