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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Jul 13. 2020

시간과 사랑의 애틋한 함수 관계

PC게임 <페르시아 왕자>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연 것은 1년간의 유학 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12월의 어느 추운 밤이었다. 일본 니이가타 대학 유학 시절, 함께 사진부 활동을 하면서 출사도 다니고 암실 작업도 하며 친해진 여학생이 있었다. 태어나서 연애 한 번 안 해본 그녀가 내게 고백을 한 것이다. 연상의 외국인 남자, 게다가 곧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 고마운 마음이긴 했지만 정확히 30일 후면 유학을 마치고 이곳을 완전히 떠나버릴 텐데 이런 타이밍에 연애를 시작하는 게 맞는 걸까?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로 한 것이다. 의견은 정확하게 반반으로 갈렸다. 낭만주의자들은 주로 이랬다. “형 저는 한 달이 아니라 3일 후에 떠난다고 해도 사귈 거 같아요. 서로 분명히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곧 끝날 거라고 해서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건 너무 겁쟁이 아니에요? 나중에 많이 후회할 걸요?” 사랑지상주의자들답게 고민할 시간 1분 1초도 아까우니 한시라도 빨리 연애를 시작하라고 등 떠밀었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의 말도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직장인들이라면 또 모를까 학생들이 국제연애를 어떻게 해요. 화상통화도 하루 이틀이지 오빠 한국에 돌아가서 취업 준비하고 바쁘다 보면 서로 연락 뜸해질 거고 그러다 보면 서로 서운해서 실망하다가 헤어질 텐데. 마음이 좀 아프더라도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둘한테 좀 더…” 시작하려면 진작 했어야지 영화 끝나기 5분 전에 상영관에 들어가서 뭐할 거냐는 리얼리스트들의 촌철살인도 일리가 있었다.


그밖에 국제연애 부럽다, 일본 여자랑 한국 남자는 성격 잘 맞는다더라 같은 영양가 없는 소수의견들도 있었지만 별 도움은… 아무튼 처음엔 당연히 거절할 심산이었다.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분에게는 이게 인생 첫 연애인 건데 한 달짜리 시한부 연애가 웬 말인가. 곧 있으면 바람처럼 떠날 뜨내기가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사람, 항상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얘기도 많이 나누며 따뜻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랑을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는 않았고 어영부영 고민하던 중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애는 시작되어 버렸다. 원래부터 베프였으니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연인만 아니었지 단둘이 영화도 보고 주말 쇼핑도 같이 하는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타임 리미트가 걸린 연인 사이’로 관계가 진전되자 뭔지 모를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한 달이지 서로 아르바이트나 전공 수업, 학과 모임을 빼고 나면 만날 시간도 별로 없었다. 밤에 잠깐 보거나 주말 정도에야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둘의 머릿속에는 ‘이제 남은 날이 앞으로 며칠이구나… D-XX’ 같은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며칠 안 남았으니 더 잘해줘야지, 내일 데이트는 진짜 완벽해야 돼, 조금이라도 실수해버리면 만회할 기회가 없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스러움과는 점점 멀어졌다. 과한 배려에 매몰돼 이도 저도 못한 채 우왕좌왕. 실수하지 않겠다는 강박에 둘 다 잔뜩 긴장하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이 우리를 보면 연인 사이가 아니라 채용담당자와 함께 도보 면접을 보고 있는 취준생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던 두 사람이었기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런 부분이 잘 맞아 단짝이 된 거였는데. 째깍째깍 줄어드는 시간으로 인한 초조함은 예상보다 강력했다. 능숙한 사랑꾼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현명하게 잘 대처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1시간, 1분, 1초… 그녀를 바라보기보다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는 빈도가 더 잦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목을 졸라 오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사랑을 잠식한다. 결국 우리는 여유가 있어야지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서툰 청춘들이었다. 마음의 여유, 돈의 여유, 시간의 여유. 그러다 보니 불현듯 어렸을 때 했던 게임이 하나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니던 남자.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60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60분이 지나버리면 사랑은 되찾을 수 없다. 시간이라는 늪은 그 어떤 운명적인 사랑도 깊고 깊게 침잠시키는 수렁이었다.






먼 옛날. 페르시아 왕국의 국왕이 원정을 떠난 사이 궁정 마법사 자파는 공주를 차지하고 스스로 국왕의 자리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공주는 단호히 저항했고 이에 분노한 자파는 1시간 후에 공주가 죽게 되는 저주를 건다. 그녀의 앞에 놓인 마법의 모래시계. 공주의 연인인 주인공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지하 던전을 지나 왕궁으로 달려야 한다. 함정과 적들로 가득한 미로를 헤쳐 나가며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대모험.


1989년에 출시된 PC게임 <페르시아 왕자>. 올타임 레전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추억의 명작이다. 정확히는 페르시아의 ‘왕자’라기보다는 페르시아의 ‘사위’가 더 맞는 표현이지만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당시의 조악한 컴퓨터로 실행했음에도 말도 안 될 만큼 부드러운 주인공의 움직임에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껏해야 감자가 통통 튀어 다니거나 갤러그가 뿅뿅거리는 것만 보던 사람들에게 로토스코핑 기술을 한껏 발휘한 이 작품은 참으로 유려했다. 그저 왔다 갔다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놀라는 사람들이 속출했을 정도로.



꼬마 시절이었는데도 다른 게임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알록달록 원색에 자극적인 표현, 쾅쾅거리는 효과음 일색이었던 타 작품들에 비해서 이 게임은 굉장히 차분했다. 음악조차 없고, 미궁 속은 한없이 어둡고 적막하다. 장식적인 요소나 군더더기는 일절 없다. 이곳을 숨결이 채 얼마 남지 않은 연인을 구하기 위해 헤쳐 나간다. 신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냉정하게 앞만 보고 서둘러 나아간다. 왕자가 뛰는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역동적이다. 방향 전환을 할 때도 감속이 아니라 온 몸을 그대로 비틀어 가속을 최대한 살린다. 1분 1초가 아깝기 때문에. 사랑이다.


14인치 흑백 모니터 화면 속, 몇 개의 도트만으로 표현된 왕자인데도 그의 초조한 기분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달리다 보면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 다리가 무너지고, 바닥에서는 가시가 돋아나며, 단두대처럼 서걱대는 칼날 문도 통과해야 한다. 해골 병사도 물리쳐야 하고 마지막에는 자파가 만들어낸 나 스스로의 분신, 그림자와도 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씩 스테이지를 정복하다 보면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공주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화면 아래에는 야속하게도 저주 발동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

[9 MINUTES LEFT]



시간이 얼마 안 남을수록 초조해지는 가운데, 어느 순간에 이르면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함정에 봉착하게 된다. 앞에 놓인 철창이 열리질 않는다. 분명히 해결 가능하도록 개발자들이 만들었을 텐데 아무런 방법이 안 보인다. 그 순간 화면 저 편에서 정말 깨알만 한 하얀 생쥐가 꼬물꼬물 나타나 멀리 있는 작동 발판을 꾹 눌러준다. 공주의 부탁으로 주인공을 도와주러 온 그녀의 반려 생쥐다. 무너져 내리는 하늘 속에서 가느다란 노끈이 한 가닥 내려오면 이런 기분이겠지.


그렇게 사랑을 향해 숨차게 달리고 달렸지만 사실 나는 한 번도 엔딩을 보지 못했다. 늘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어설픈 공간지각력과 순발력으로는 이토록 기기괴괴한 미궁을 파훼하기 어려웠다. 정확한 길을 모르다 보니 이미 한 번 갔던 길을 또 가기도 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중간에 나오는 적들과의 칼싸움도 녹록지 않았고 서두르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적도 많다. 그러다 보면 60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화면 아래에선 카운트가 시작된다.

[5… 4… 3… SECONDS LEFT]


60분이 지나면 게임은 그 즉시 멈춘다. 그리고 공주의 방을 보여준다. 아까까지만 해도 간절하게 주인공을 기다리던 그녀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모래가 모두 쏟아져 움직임을 멈춘 커다란 모래시계만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렇게 동화는 끝난다. “공주님은 악당 자파의 저주로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답니다. 간발의 차이로 그녀를 구하지 못한 남자는 하얀 늑대가 사는 동굴에 들어가 100일을 내리 울었고 101일째 되는 날 동굴 밖으로 나온 그의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변해버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게임을 개발한 조던 메크너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꼬맹이 시절 사랑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플레이를 할 때마다 항상 시간이 안 맞아 배드엔딩만 보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스며들었다.

‘사랑이란 것은 결국 타이밍이구나. 서둘러도 안 되고 늦으면 더 안 되는…’

적당한 타이밍이란 이 얼마나 어려운가. 군 입대를 앞두고 고백받는 남자.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여자. 청첩장을 주고받는 자리까지 와서야 10년 전에 차마 못다 한 진심을 전하는 사람들… 빙빙 돌고 돌다 한참이나 지각한 고백들과 그런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이들의 회한 가득한 한숨.


<페르시아 왕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이다. 그리고 나처럼 몇몇 엉뚱한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철학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게임에서 배드엔딩을 보지 않으려면, 즉 사랑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고, 길을 헤매도 안 되며, 의미 없이 상처만 서로 입게 되는 싸움은 사실 피하는 게 낫다. 잘 찾아보면 지름길도 있고 꼼수도 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외나무다리 한복판에서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상대와 정면 승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진심을 다해 전력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멈칫거리거나 뒤돌아보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페르시아 왕자>가 내게 알려준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책으로 배운 연애’ 가 그러하듯 ‘게임으로 배운 사랑’ 또한 실전과는 달랐고 현실은 언제나 변수 투성이었다. 젊은 날의 연애는 매번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시간에 쫓기고 떠밀리다 결국 서로의 타이밍이 살짝씩 어긋나 있었음을 깨달으며 돌아서던 나날. 아쉬움 가득한 일본에서의 연애도 그렇게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얼까. 스타일과 템포가 완전히 다른 연주자 둘이 만나 힘든 조율 과정을 거쳐 조금씩 아름다운 화음을 쌓아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번 연주자는 왠지 느낌이 좋은걸?' 기대에 가득 차 공연을 시작해보지만 대개 서로의 박자는 미묘하게 어긋나기 마련이라 실망으로 끝이 난다. 인생이란 나와 잘 맞는 파트너 연주자를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


운이 좋아 모든 게 잘 맞는 상대를 단번에 찾아내는 행운아도 있긴 하고, 호흡은 그다지 안 맞지만 최대한 상대의 템포에 맞춰가면서 삶이라는 기나긴 콘서트를 꾸역꾸역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으며, 몇 번의 실패 끝에 파트너와 함께하는 듀엣 공연은 완전히 포기한 채 무대 뒤편에서 악기를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감상자로만 남기로 결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스쳐 지나갔던 인연이 문득 희미하게 떠오르면 씁쓸한 웃음 한 번 지어보겠지. 그런 게 바로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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