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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Aug 21. 2020

세상이 조각나도 이어 붙이려는 그대들 있음에

PS4게임 <데스 스트랜딩>


몇 년 전이다. 추석을 얼마 앞둔 9월, 민족 대명절을 맞아 고마운 분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택배를 통해 오고 가는 시기가 찾아왔다. 배송 물량이 늘어난 만큼 사고도 잦아 물건이 깨지거나 파손된 상태로 배달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회사로도 제보가 많았다. 그래서 실제 택배 상하차 작업장에 누구 한 명이 위장취업을 하여 그 안에서는 어떤 식으로 택배 물품을 다루는지, 규정은 지켜지는지, 운송과정의 문제는 없는지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그 한 명은 바로 나로 선정됐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택배.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만 한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하며 영업소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오전/오후/야간 등 다양한 근무 시간대 중 가장 하이라이트인 야간 타임에 투입됐다. 방송은 화면이 꼭 필요하기에 고시생 느낌의 뿔테 안경 몰카를 착용했다. 작업반장은 간단한 주의사항과 함께 ‘중간에 도망치면 일당 못 받아요’ 라며 이죽댔다. ‘육체노동의 끝판왕’ 이라는 택배 상하차 알바, 시작이다.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하차, 짐을 트럭에 싣는 상차, 바코드를 찍어 지역별로 나누는 분류. 이렇게 세 작업으로 크게 나뉜다. 바코드 작업은 주로 짬밥이 좀 되는 분들이 맡았고 트럭에 택배박스를 싣는 작업도 거의 테트리스 급의 노하우가 필요하기에 나 같은 초보 알바생들은 그저 죽어라고 짐만 나르는 수밖에 없다.


저녁 7시. 웅장한 소리를 내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기 시작하자 박스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헬름 협곡을 향해 꾸역꾸역 밀려드는 오크 군대를 바라보는 아라곤의 심정이었다. ‘이 전투… 이길 수 있을까?’ 5일째 아침 해가 떠오르면 돌아오리라는 간달프를 기다리는 반지원정대의 마음으로 해가 뜨면 퇴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은 채 작업에 돌입했다.



일도 일이지만 원래의 목적은 취재인 만큼 틈틈이 주변 근무자들을 안경에 녹화했다. 확실히 택배 박스를 소중하게 다룬다는 느낌은 없었다. 휙휙 던지거나 대충 밀어젖혔다. 대부분의 박스에는 ‘던지지 마세요, 취급주의, 파손주의’ 같은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지만 그걸 읽는 사람은 없었다. 어지간한 택배 같으면 충분히 내용물이 깨지고도 남을 상황이 눈앞에서 이어졌다.


‘쯧쯧. 이러니 물건이 성할 리가 있나! 조심 좀 하면서 일들을 해야지 말이야.’

나도 주문한 택배 물건이 부서져서 도착한 적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며 직업윤리와 고객만족, 택배업계 전반의 서비스 개선 방향 같은 거대담론을 생각하며 일을 시작한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어느 틈엔가 비 오듯 쏟아지는 땀도 못 닦고 숨을 헐떡이며 택배 상자를 냅다 집어던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물건들은 계속 쏟아져내린다. 이걸 잽싸게 들어서 영등포구, 강서구, 송파구, 노원구 등으로 나눠 구별로 쌓고 다시 컨베이어 벨트로 돌아와서 다음 물건을 집어 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여유 있게 처리하면서 왔다갔다 할 틈은 없다! 정말 미친 속도로 물건이 내려오니 박스의 송장만 보고 곧바로 그 구역 쪽으로 집어던질 수밖에 없다. 이 정도 스피드가 나지 않으면 전체 작업이 다 밀리게 되고 계속 로드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휴식은커녕 물 한번 편하게 마실 틈도 나지 않는다.


물건들은 또 어찌나 무거운지. 기껏해야 셔츠 몇 장이나 로션, 라면, 책 같은 거나 택배로 받아본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추석 특수라서 그런지 몰라도 과일박스나 쌀가마니(20kg)가 정말 많았는데 얘네들은 한 번 들었다 놓으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대용량 생수(20L)도 헉소리 날 정도로 무겁고 밀가루나 세제 같은 분말 친구들도 녹록지 않다. 자동차 타이어가 택배로 배송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고 (이건 들지 않고 굴릴 수 있어서 좋았다) 한창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이 부치는 순간, 덤벨이나 케틀벨처럼 수십 킬로에 달하는 트레이닝 용품 수백 개가 위풍당당 다가올 땐…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제발 운동은 그냥 동네 헬스장 가서 하시죠! 택배 시키지 말고!



자정이 가까워오자 무릎 손목 척추 요추 경추 어디 한 군데 안 아픈 곳이 없었고 새벽 무렵에는 체력이 한계에 달해 물류센터의 회색 담장을 뛰어넘어 자유의 바깥세상으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땀으로 온몸은 다 젖었고 ‘추석 맞아 택배 파손 늘어’ 같은 취재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내 앞으로 오는 박스는 그냥 냅다 집어던졌다. 뭐? 택배가 부서져서 왔다고? 포장 제대로 안 한 너네가 나쁜 거 아니냐?! 뾱뾱이 많이 써! 둘둘둘 잔뜩 감아서 보내라구!


이렇게 상품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속도에 박차를 가하는데도 컨베이어 벨트에 택배가 쌓이다 못해 결국 정체가 빚어지는 구역이 발생하자 작업반장이 신속하게 출몰해 육두문자를 날려댔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과 휴학생 청년, 나이 차별 없이 아주 공평하게 이 새끼 저 새끼 니들 때문에 라인 전부 다 늦어지는 거 안 보이냐며 모욕을 당했다.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눈앞의 택배박스를 어찌 존중할 수 있을까. 당일배송, 로켓배송은 누구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인가. 택배를 집어던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갇힌 노동자들과 비교해 나는 뭐가 잘났다고 ‘택배 파손 이대로 좋은가’ 같은 공자님 소리나 읊으려고 이곳에 온 건가.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살짝 찌그러져서 와도 괜찮다. 그렇게 중요한 거면 내가 직접 가서 사 오면 되는 거지 뭐. 우리는 다 투쟁 같은 삶을 가까스로 견디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 아니던가.

우리, 같이 좀 살아요.






(아래에는 <데스 스트랜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세상은 갑자기 멸망으로 치닫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뒤엉켜 산 자와 망자의 시공간이 겹치고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유령은 인간들을 난폭하게 잡아끌어 죽음의 바다로 이끈다. 하늘에선 ‘타임폴’ 이라 부르는 이계의 비가 내리는데 이 비를 맞으면 시간이 급속도로 빠르게 흘러 수풀과 나무는 급속도로 성장하다 못해 금세 늙어 말라 비틀고, 사람이 맞으면 빗물이 닿는 신체 부위에 급격한 노화가 진행된다. 생존자들은 비를 피해 삼삼오오 지하 공간이나 개인 셸터에서만 생활하고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아 서로 만나거나 교류할 수도 없기에 세상은 점점 단절과 종말로 치닫는다. PS4게임 <데스 스트랜딩> 속의 비극적인 풍경이다.


저 세상의 비, 회색빛 타임폴이 하염없이 내린다. 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 또한 이 비를 맞으면 시간이 가속된다. 쇠로 만들어진 물건은 급격히 녹슬고, 다리나 건물 같은 거대 철골 구조물과 차량 또한 비를 맞다 보면 어느새 부식돼 망가진다. 유령에 비에 무법자들까지 설쳐대는 세상이라 사람들은 꽁꽁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물건이 필요하다. 의약품, 생필품, 식료품. 이런 것들을 등에 한가득 싣고 직접 가져다주는 일, 쉽게 말해 택배 배송! 바로 <데스 스트랜딩>의 주인공 샘이 하는 일이다.



수백 킬로의 짐을 허리가 끊어져라 짊어지고 산으로 바다로 들로 뛰어다니는 배송 게임. 대폭발로 인해 모든 연결이 끊어진 미국 대륙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 샘은 물건 배송과 함께 끊어진 통신망 복구 작업도 해야 한다. 때문에 ‘쿠팡맨 게임’ 이라느니 ‘KT인터넷 설치기사 체험’ 같다느니 하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정작 게임에 돌입하면 세기말 느낌 가득한 풍광 묘사와 함께 한없이 고독한 분위기 속 비장감, 적절한 순간에 감정을 뒤흔드는 유려한 음악들로 인해 우스꽝스럽다거나 유치한 감정 같은 건 전혀 느낄 수 없다.


다양한 사이즈의 각종 화물을 효율적으로 잘 싣고서 (여기서도 테트리스가 중요하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사히 가져다준다. 냉장유통이 필요한 생물 배송도 있고 물에 젖으면 안 되는 화물도 있다. 폭탄은 충격에 민감해서 극도로 조심해야 되고 당일배송처럼 시간제한이 있는 화물은 동선과 날씨도 체크해야 한다. 위험요소가 가득한 지역에선 사람까지 짊어지고 나른다. 욕심부린답시고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버거워하는 샘의 모습에 안쓰럽기 일쑤. 키를 훌쩍 넘겨 등 한가득 화물을 싣고 일어날 때는 ‘끙차!’ 하는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경사진 산길에서는 균형 잡으려 뒤뚱거리다가 와장창 짐을 쏟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런 험지까지 짐을 가져다주느라 고생 많았다는 고객들의 감사 인사 한 번에 피로가 눈 녹듯 풀려버리기도 하니… 이런 게 바로 배송인의 보람인가 보다.



이 작품 속 생존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실과 아픔을 갖고 있다. 행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뿐인 자신의 아이를 잃은 사람, 출산 순간에 아이가 유령화 되어버렸는데도 차마 놓아주지 못하는 어머니, 아가를 인류 구원을 위한 실험체로 제공한 아버지, 도시를 구하기 위해 맨살로 타임폴에 뛰어들어 몸 전체가 늙어버린 여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게 아니라 줄기세포로 만들어졌기에 영혼이 없는 남자, 은인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그 은인을 자기 손으로 처단할 수밖에 없는 남자.


하나같이 기구하고 절절한 사람들이 이미 정해진 세상의 멸망을 한 번 막아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잡아 끈 이는 ‘하트맨’ 이라는 이름의 과학자다. 대폭발에 휘말려 아내와 딸은 물론 수술 중이던 본인까지 셋다 목숨을 잃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해변’에 도착한다. 큰 폭발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목숨을 잃어 모두 터벅터벅 저승을 향해 걷는 행렬 속에서 부인과 딸을 발견한다. 죽은 뒤의 세계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때문에 일단은 가족과 함께 하고자 마음먹고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 공교롭게도 이승에서 이뤄진 심폐소생술이 성공해 그는 살아남아 버리고 처자식과는 멀어진다.



하트맨은 망자들의 해변 어딘가에 있을 부인과 딸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죽어야 한다. 죽은 다음 경계 주변을 샅샅이 살피다 혹시 가족을 찾아낸다면 기쁜 마음으로 심장을 멈춰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히 함께 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경계는 너무나도 넓고 광활하다. 모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아주 많은 곳을 다녀봐야 한다. 때문에 21분에 한 번씩 인위적으로 심정지를 일으켜 자신을 죽게 만들고 해변 수색 3분 후에는 제세동기가 자동으로 작동돼 살아나게 세팅한다. 부활이다. 그리고 21분 후에는 또 죽어서 이번에는 다른 경계, 다른 해변으로 가족을 찾아 헤맨다. 24분을 한 사이클로 하루에 60번씩 죽었다 살아나는 남자다.


대폭발 이후 10년이다. 무려 10년 동안 이렇게 죽고 살기를 반복해 이번이 218,549번째 사망인 그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아내와 딸을 다시 만나 함께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샘이 처음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심장제세동기의 충격으로 벌떡 죽음에서 부활한 하트맨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번에도 두 사람을 못 찾아내고 비겁하게 혼자만 살아 돌아온 미안함이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야. 내 삶이고. 모두의 사후 세계가 각각 다르다면? 난 그게 참 무섭다고 생각해. 영원을 혼자 보내야 한다니. 그래서 나는 가족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거야. 죽음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 혹시 대화가 급하게 중단된다면 미안해. 해변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아이를 찾아봐야 하거든. (…)
혹시 책 좋아해 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나는 바쁘게 지내는 걸 좋아해. 음악, 텔레비전 쇼,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단편 영화와 소설 컬렉션이 있지. 전부 21분 안에 볼 수 있는 것들이야. 하지만 솔직히 내가 여기서 보내는 21분은 전부 준비 시간일 뿐이야. 해변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지. 내 몸은 여기 있어도 영혼은 해변에 있어. 난 이미 죽은 상태라고…


모든 게 끊어진 세상. 그러기에 더욱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버둥 치는 사람들. 주인공이자 ‘전설의 배달부’인 샘을 중심으로 내용은 흘러가지만 하트맨도 프래자일도 심지어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조연들조차 모두 자기만의 슬픔과 사연을 꾹꾹 그러안고 앞으로 나아간다. 외롭고 힘들어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누구는 망자가 된 가족들을 찾아 중간계를 헤매고 누구는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짐가방을 들쳐 멘다.



단절된 세상이지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 서로 다가서야 한다는 소통에의 욕망을 화려한 필체로 그려낸 작품 <데스 스트랜딩>. 일반적이지 않은 형식에 듣도 보도 못한 ‘택배 게임’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렸지만 스타일리시하게 잘 빠진 SF 단편을 한 권 읽는 기분이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에 치이다 보면 깊은 두메산골에서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무슨 생존의 달인도 아니고 일반인에게 완전한 자급자족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럴 때 필요한 물건을 바리바리 싸든 샘 같은 사람은 헉헉대며 눈앞에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맨발로 달려 마중 나가겠지. 고독한 세상 속, 서로를 이어주는 소중한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러니 우리, 택배에 흠 좀 있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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