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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May 05. 2020

정녕 너의 정의가 정의롭다 정의할 수 있는가

PC게임 <또 다른 지식의 성전3 -비전속으로->


  전반적으로 무난한 소년이었다. 크게 말썽을 일으키거나 반항한 적도 없고 이성교제는 전무. 공부는 적당, 친구들과도 그럭저럭, 선생님과는 딱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교복을 줄이거나 늘려 입지도 않았고 크게 왕따를 당하지도 않는 극도로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정보화 혁명에 발맞추어 구입한 486 컴퓨터 덕분에 PC게임이라는 신세계에 눈을 뜬 1995년의 어느 날, PC통신 속의 <게임제작동호회> 라는 곳에 발을 들였다. 누가 공대생들 위주 아니랄까 봐 너무나도 직설적인 동호회 이름답게 게임을 좋아하고 사랑하다 못해 결국엔 직접 만드는 경지에까지 도달한 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펼쳐 보이는 공간이었다. 다들 열정적이긴 해도 퀄리티 자체만 놓고 보면 함량 미달이거나 취미 이상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영웅은 그 진가를 드러내는 법. 고만고만한 게임들 중에서 말도 안 되게 높은 조회수와 다운로드 수를 자랑하고, 개인적으로도 인생작으로 손꼽는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또 다른 지식의 성전> 시리즈였다.



  <또 다른 지식의 성전>, <다크메이지 실리안 카미너스>, <비전속으로> 이렇게 3부작으로 구성된 시리즈였지만 세 작품을 모두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가장 최근작인 3편 <비전속으로>만 다운받아 플레이하기로 했다. 압축된 용량은 500킬로바이트 남짓. 핸드폰으로 찍은 셀카 한 장만 해도 수 메가에 달하는 2020년에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초라한 용량이다.

  작은 게임인지라 VGA 16컬러 640x360의 그래픽은 투박하기 그지없다. 캐릭터도 단순해서 젓가락이 움직이는 듯했고 대부분의 행동과 전투, 상황 묘사는 글자로 표시된다. 이 정도로 텍스트가 흘러넘치는 게임도 처음인데 그 텍스트가 모두 한글이라 제대로 읽고 내용을 음미할 수 있는 정통 RPG 게임도 처음이었다.


  ‘광산에서 일하는 나는 퇴근길에 관리소장이 창에 찔려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살인 현장을 발견한 최초 목격자일 뿐인데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수감 생활이 두 달쯤 지났을까? 성의 영주인 로드안은 내게 제안을 한다. 다른 종족들이 인간을 적대시하며 공격하기 시작했으니 오크, 트롤, 코볼드 이런 야만족을 제압해야 한다. 우발적인 살인사건 이전에는 용감한 전사로 인정받던 그대라 들었으니 짐의 명을 받아 다른 종족들을 절멸시켜라. 그리하면 사면은 물론 보상과 명예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모험은 시작된다. 동료들과 힘을 합쳐 트롤과 오크 같은 괴물들을 제압한다. 힘겹지만 하나하나 무찌르고 로드안에게 돌아가면 노고를 치하받고 보상도 듬뿍 얻는다. 마을 사람들도 점점 나를 알아봐 주고 일개 광부였을 땐 느껴보지 못한 존중과 예우마저 받는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충실한 삶이다. 로드안의 명에 따라 괴물의 거주지를 찾아다니며 쑥대밭을 만드는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그들의 말과 글을 배우게 된다. 언어를 모를 때는 그저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울부짖음으로 들렸던 괴물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이가 좀 있는 오크는 내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50년 가까이 농사만 지었소.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고 인간에게 밉보일 짓도 하지 않았소.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 마을을 짓밟고 동족들을 죽이려는 것이오?” 다른 젊은 오크도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 다급하게 외친다. “분명 우리 오크 중에도 질 나쁜 자가 있어 지나가는 인간 여행자들을 위협했던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대부분은 선량한 오크들이라오.”

  지금까지는 아무런 고민 없이 칼을 휘둘러왔는데 말이 통하기 시작하자 칼끝이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들이 정말 우리에게 큰 해가 되는 존재들이 맞나? 멸망시켜야만 하는 괴물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곧이어 등장하는 [죽여버린다 / 살려준다] 의 선택지 앞에서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절대권력 로드안을 향한 충성심과 인간의 번영을 위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눈앞의 오크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들의 품을 뒤져 몇 푼 안 되는 금붙이를 전리품으로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다음 목표인 트롤 족을 멸하기 위해 떠났다. 어렸을 때부터 트롤 마을에서 자라 그들의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사람에게 트롤의 말을 배우고서 그들의 터전으로 진입했다.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들을 물리치기 위한 숭고한 성전을 치르기 위해 돌진한 건데 그들은 외쳐댔다.

  “인간이다! 모두 도망쳐!”

  “침략자!”

  “부디 우리에게 자비를!”

  뭐지? 이런 건 선량한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주로 듣는 대사 아닌가?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충격적인 얘기를 하는 트롤도 있었다. “당신네들이 우리 광산의 금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마약을 주사했잖소, 몸에 좋다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중독되어 이제는 많은 트롤들이 인간에게 금을 갖다 바치고 있소!” 인간이 트롤을 착취하기 위해 마약까지 이용했다고? 실제로 근처에는 금단증상에 손을 벌벌 떨며 약을 구걸하는 트롤들이 보였다.

  머리가 아파왔다. 이럴 리 없다. 거짓말이다. 자유와 정의의 깃발을 든 우리 인간이 그런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을 리 없다. 하지만 트롤 감옥에서 만난 ‘인간’ 들은 내 의구심에 쐐기를 박았다. “용사님께서 구출하러 와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아, 마약 말입니까? 마약 만들기는 어렵지 않아요. 그걸 트롤에게 팔아서 한동안 정말 짭짤했는데 막판에 이렇게 잡혀버리는 바람에…”    

 

  진실은 단순했다. 내가 ‘선’이라고 믿는 것이 반드시 ‘선’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15살의 꼬마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세상이란 이런 곳이었나? 정의가 승리하고, 진실은 밝혀지고, 노력하면 성공하고, 진심은 통하고, 우정 사랑 희망 용기로 가득 찬 세계가 아니었단 말인가? 교과서에 이런 말은 없었는데…

  15년간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감쪽같이 속았다. 부모에게, 세상에게, 담임에게, 로드안에게. 하지만 속임수의 결과는 달콤했다. 일개 광부에 불과했던 내가 이제 명품 갑옷과 칼로 치렁치렁 무장하고 왕국의 모두에게 존경과 인정을 한 몸에 받는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신분상승이고 앞으로의 부귀영화도 보장된 탄탄대로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뭐, 따지고 보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오크나 트롤은 인간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게 사실이고 꼭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큰 화로 다가올 수도 있다. 실제로 접경지역에서는 인간들과 트러블도 좀 있었다지 않은가.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희생은 불가결한 면도 있다. 그런 의미라면 내가 애국자나 영웅으로 불려도 이상할 건 없지… 라고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거짓과 허위로 쌓아 올린 케이크란 얼마나 달콤한가. 아예 맛을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미뢰 가득 퍼지는 달짝지근함을 알아버린 상태에서 다른 종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게 가능할까? ‘정의 구현’ 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정복자의 야욕은 예쁘게 포장될 수 있는 건가? 아무 죄 없는 타 종족은 악으로 몰려 비참하게 죽어가도 되는가. 인간 이외의 모든 종족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피로 물든 칼을 든 파괴자에 지나지 않잖아.


  고민의 나날이 계속되던 중 ‘베리언트 피플즈’ 에서 민초들의 반란이 일어났으니 서둘러 진압하라는 로드안의 명령이 하달됐다. “나에 대한 반역이자 선에 대한 도전이다. 폭동을 제압하면 너에게 공작의 작위와 성을 하사하겠노라” 어마어마한 보상이다. 일개 평민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결국에는 성주가 되다니… 상상도 못 할 신데렐라 스토리 아닌가.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도착한 베리언트 피플즈에는 결기 어린 표정의 남자가 혈혈단신으로 앞을 막아섰다. 그는 이 반란의 총지휘자인 카미너스였다. “우리는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로드안의 말을 그대로 믿어왔지요. 당신이 지금까지 한 일은 절대 정의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꼭 우리의 편에 서주시기 바랍니다”



  14인치 삼보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거대한 결정은 내려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김밥천국에서 점심 메뉴나 골라봤지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뀔 선택이라니. 키보드 위의 내 손은 움직임을 멈췄고 고민은 아주 오래 이어졌다. 고작 컴퓨터 게임 나부랭이지만 이 순간의 선택이 실제의 내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느낌마저 어렴풋이 들었다.

  약간은 비겁하고 찜찜하지만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실리를 추구하느냐,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가치를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사람들과 함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가시밭길로 한 걸음 내딛느냐.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발길을 돌리기로 결심하고 반란군들과 함께 ‘로어성’ 으로 향했다. 수많은 병사와 마법사를 대동하고 기세 등등하게 나타난 로드안, 피폭풍이 몰아치는 처절한 전투 끝에 로드안의 가슴팍에 칼을 찔러 넣는 것으로 길고 긴 싸움을 매조지었다.

  얼마 후 성에서는 새로운 군주의 즉위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바로 나. 사람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로드안처럼 선하고 강직한 사람조차 거부하기 힘든 욕심에 휩싸여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나라고 다를 것인가? 나는 부패하지 않을 거라, 변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나? 새 시대의 영웅을 향한 시민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어딘지 개운치 못한 찜찜함만을 잔뜩 느끼며 게임은 끝났다.


  그때부터였던가? 선생님의 말, 9시 뉴스의 말, 권위자의 말, 책과 신문에서 하는 말, 미국 대통령의 말…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게 됐다. 정답이라고 여겼던 것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도 했고, 기준과 규칙은 힘 있는 자의 입맛에 따라 바뀌었으며, 정치인들은 경솔히 뱉은 말을 다음날 다시 주워 담기 바빴고, 법률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기 일쑤였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사랑합니다 고객님” 해사하게 말을 건네지만 기업은 절대 ‘또 하나의 가족’ 이 아니다. 소비자를 사랑하기는커녕 언제든지 골수까지 빨아먹을 준비가 돼있다. 의심 투성이 반사회적인 청소년으로 자라났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일단은 거리를 두고 반대편에서 먼저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 세상에 절대 선이란 없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그때그때의 정의가 존재할 뿐이다. 중학교 2학년 소년에게 약간은 버거울 수도 있었지만 당시 정립된 카오스적인 세계관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으니… 잘 고른 (혹은 잘못 고른?) 게임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 그때 내가 푹 빠져서 한 게임이 <또 다른 지식의 성전>이 아니라 <멍뭉이와 함께 즐거운 동네 산책♪> 이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밝고 명랑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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