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단 May 05. 2020

그때 내가 열어버린 것은 활활 타오르는 지옥문이었나니

PC게임 <둠>

  

  1995년 당시만 해도 개인용 PC는 어마어마한 물건이었다. 몇 년의 투쟁 끝에 가까스로 부모님께 구입 허가를 받아냈고 486DX2-50MHz 라는 어마어마한 하이 스펙으로 견적을 뽑았다. 구입처에서는 집까지 용달차에 컴퓨터를 싣고 와 설치까지 해주었다. 침대나 소파를 구입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여드름 자국이 남아있던 젊은 직원은 안방 구석에 PC를 설치하고 (말이 좋아 설치지 전원 코드 연결하고 파워를 켰을 뿐이다) 내게 자리를 내줬다.


  무사히 부팅이 되는지, 부탁한 게임들은 제대로 설치가 되어있는지, 하드 용량이나 메모리, 모뎀, 사운드카드 등 원래 주문한 스펙보다 저급의 부품을 쓰는 식으로 눈탱이 맞은 건 없는지 매의 눈으로 체크하는 나를 두고 어른들은 거실로 나가 잔금을 치렀다. “아드님 마우스 움직이는 솜씨가 여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허허, 컴퓨터 박사 되겠어요” 같은 낯 뜨거운 덕담을 주고받으며 쿨거래 완료.

  이내 부모님은 외출했고 홀로 남은 밤, 막 구입한 따끈따끈한 컴퓨터로 가장 처음 실행한 게임, 뜻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강렬함이 느껴지는 4글자의 알파벳, 바로 <둠(DOOM)>이었다.    


  ID소프트웨어에서 1993년 발매하여 PC게임사에 전무후무할 정도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게임 둠. 셰어웨어라는 구입 방법을 소비자에게 처음으로 각인시켰고, 흉내가 아닌 진정한 3D 게임의 시조새라고 봐도 무방하며, 이후에 우후죽순 등장하는 1인칭 액션 게임의 틀을 정립한 파천황…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과하지 않은 명작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사정을 알 리 없었고 그저 신나는 총싸움이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c:\>game\doom\doom.exe 를 실행시키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질지.



  권총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있는 군인, 둠가이는 화성에서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고 싶다. 하지만 공간이동 실험의 실패로 이곳은 이미 온갖 악마들이 득시글대는 지옥으로 변했다. 기지에 먼저 진입한 동료들은 악마들에게 찢기고 뜯겨 너덜거리는 시체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화성의 하늘은 어둡고 음침해 핏빛으로 보인다. 기지는 전투로 불타고 무너져 고대 문명의 폐허를 방불케 하고 조명 상태도 좋지 않아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전등 빛은 불길함을 더한다. 문 하나를 앞에 둘 때마다 긴장감에 온 몸이 떨린다. 이 문을 열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두려움과 함께 게임이 시작된다.    


  원래는 끈끈한 동료였을 해병대원들, 악마로 인해 좀비가 된 그들은 총질을 하며 나를 반겼다. 인간이라기엔 기괴하고 거친 호흡을 내뿜으며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는 이들까지는 그래도 상대할 만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악마들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드러내자 멘탈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짐승 같은 털빛에 온몸에는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있고 시뻘건 눈에 불을 내뿜는 임프가 등장하자 공포감은 극을 향했다. 시각적 자극은 그럭저럭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지르는 세상 처음 들어보는 울음소리는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소름이 돋으면서도 총을 쏘며 계속 달렸다. 살아보겠다고.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목덜미의 털이 쭈뼛 서는 괴성과 함께 카코데몬이 등장했다. 새빨갛고 둥그런 구체형의 가시투성이 악마가 공중에 둥둥 떠서 날 노려보더니 피에 젖은 입을 활짝 벌리며 다가왔다. 입을 여닫을 때마다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형용키 어려운 괴이한 소리가 났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앉은자리에서 펄쩍 뛰면서 컴퓨터 코드를 잡아 뽑아버렸다…!   



  방에는 적막이 흘렀다. 형광등의 전류 흐르는 소리만 나지막이 들렸다. 심장박동은 어마어마하게 빨랐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건 분명 시각과 청각 자극뿐일 텐데 어디 먼발치에서 피 냄새와 고기 탄내가 풍겨오는 듯했다.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게임을 중학생이 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발매 당시 미국에서조차 잔혹한 표현과 고어적인 연출로 의회 청문회까지 열렸고 그 결과 ‘오락소프트웨어 등급위원회(ESRB)’가 창설되는 쾌거(?)를 이룬 게임이었음을 상기해본다면 순딩이 중학생이 플레이를 하다가 경기를 일으킨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공포영화를 일절 안 보던 것도 아니고 심약한 온실 속의 소년도 아니었다. 그저 처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만으로 두려움의 한 복판에 들어간다는 것이.    




  예능프로그램에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번지점프를 하는 이벤트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도저히 못 뛰겠다며 울며불며 PD에게 읍소하는 개그맨, 눈물로 화장이 다 지워지는 여배우, 결국 실패하여 미안한 표정으로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거나 <I believe I can fly>가 흘러나오며 슬로모션의 억지 감동 연출과 함께 떨어진다거나… 다양한 바리에이션은 있지만 큰 맥락은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장면을 보면 항상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안전장치도 다 되어있고 줄도 칭칭 동여맸으면서 뭐가 저렇게 무섭다고 호들갑들이람… 쯧!’


  회사원이 되고 나서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중에 번지점프가 있었다. 인생 첫 번지. 높이는 대강 10미터 남짓? 적당하고 아담한 사이즈의 번지였다. 동기들 중에는 훌쩍 뛰어내리는 이도 있었고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포기하는 이도 있었다. 차례가 되어 번지점프대 앞에 섰다. 약간의 스릴은 있었다. 낭떠러지 앞에 홀로 선 기분이랄까? 그래도 아직 여유로웠다. 저 멀리 산도 보이고 뺨을 스치는 야영장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이제 뛰어내리라는 조교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17번 교육생, 번지!"

  …출발 신호는 분명 떨어졌는데 발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누가 본드 붙여놨나?! 왜 발이 꿈쩍도 않지? 당혹감에 얼굴이 굳어갔다.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놀이기구는 사실 어렵지 않다. 무슨무슨 익스프레스든 수직으로 떨어지든 하늘로 솟구치든, 꽤 박력 넘치고 중력가속도도 심하게 걸리긴 하지만 이 친구들은 일단 ‘기계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 는 게 포인트다. 난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얘들이 지지고 볶아준다. 이 얼마나 마음 편한 수동적인 삶인가.

  그런데 번지는 달랐다. 순전히 내 의지와 행동만으로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는 게 정말 엄청나게 어려웠다. 튼튼한 줄이 몸을 묶고 있다는 걸 분명 알고 있는데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건 레포츠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거라고, 한순간의 짜릿함이라고 뇌를 향한 설득작업을 계속했지만 뇌는 요지부동, 두 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주저하면 동기들 사이에서 겁쟁이로 불릴 위험성까지 있기에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여 어버버 한 자세로 뛰기는 뛰었다. 하지만 뒷발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다. 사다코가 튀어나오든 제이슨이 전기톱에 시동을 걸든 나는 집이나 영화관 의자에 포옥 파묻혀서 보기만 하면 된다. 깜짝깜짝 놀라긴 하지만 보이는 정보값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게임은 좀 다르다. 자기의 손과 눈을 부단히 움직이며 능동적으로 상황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는다. (머지않아 다리까지 이용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만큼 더 강하게 감정이입이 된다. 비슷한 형태의 괴물이 튀어나와도 영화에서의 그것과 게임에서의 그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충격인 것이다.

  어느 것이 더 고상하다거나 수준이 높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다. 게임도 얼마든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집중하지 않고 핸드폰이나 보면서 나태하게 플레이한다면 영화를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극 정도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감수성 높고 대상에 깊게 빠지는 타입의 사람이 게임에 집중할 때의 몰입감은 그 어떤 매체도 감히 따라올 수 없다.    


  책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문학소년은 둠가이한테 너무 격정적으로 감정이입을 해버렸던 거다. 덕분에 게임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전원까지 꺼버리는 쫄보스런 추억으로 아로새겨졌던 컴퓨터와의 첫날밤. 이제는 세상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어떤 공포 특급을 봐도 별 감흥 없이 심드렁한 아재가 됐지만, 리부트 되어 요즘에도 꾸준히 나오는 둠 시리즈를 볼 때마다 그날 밤의 기억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 짓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녕 너의 정의가 정의롭다 정의할 수 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