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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ug 12. 2020

자리에 대한 착각

고인 물은 썩는다

# 착각     


어제 점심에 서초동에서 팀 후배들과 함께 취재원을 만났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후배들과 취재원을 만날 때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앞으로 저보다 10년은 더 현장에서 일할 기자니까요. 잘 기억해주세요."

"저야 곧 출입처를 떠날 사람이지만, 여기는 온 지 얼마 안 돼 오래 있을 것입니다. 잘 챙겨주세요."     


후배들의 반응은 늘 한결같습니다. 이 힘든 출입처에 오래 있으라고? 경험이 한 번이면 족하지 또 오라고? 그때마다 저는 웃으며 말합니다.


"나도 내가 이 출입처에서 오래 일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런데 한번 오면 꼭 다시 오게 되더라."


사실 그렇습니다.

내가 인사권자가 아닌 입장에서 내 인사를 좌지우지할 능력도 없고, 인사 민원으로 자기 인사를 냈던 사람들치고 끝까지 잘 풀리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장기를 둘 때 장기판에 말들이 스스로 자기 위치를 결정할 수 없듯, 결국 인사는 인사판을 짜는 인사권자의 몫이겠죠.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직업이다 보니 사람을 만나면서 인생을 배웁니다.


처음 기자가 되고 출입처를 나갔을 때는 "기자님~"이란 호칭이 참 어색하게 느껴졌었지요.

나이 지긋한 분들도 꼭 '님~'자를 붙여서 예우를 해주셨습니다. 기업을 출입하면 임원이나 대표를 만났고,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 장관이나 차관, 국실장급 이상 분들을 주로 만나서 현안 등을 질문하다 보니 마치 내가 1급 공무원, 혹은 기업 CEO쯤 되는 사람인 줄 착각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내가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출입처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사실 기자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그 기자가 속한 조직을 보고 그 조직을 대표한 사람으로서 예우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나 자신이 대단서 혹은 당연히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신문기자들은 회사에서 '님'자를 안 붙입니다. 부장님께도 '부장!'이라고 부르고, 국장님께도 '국장!'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엔 그게 참 낯설었는데, 장이란 글자에 이미 높이는 뜻이 있기 때문에 '님'자를 빼는 게 맞다는 말도 금방 수긍이 됐지요.      


그리고 또 하나. 기자는 대통령을 만나든 누구를 만나든 국민을 대표해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직업인데, 상대에게 '님'자를 붙이면 스스로를 낮춰서 같은 눈높이에서 질문하기 어렵기 때문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긴 사실 선배들이 기자 초년병 때 경찰서를 처음 출입하게 된 날 경찰서장실 방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갔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은 ‘라떼 is horse(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분들께나 어울리지,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얘기였습니다.


한참 젊은 기자가 갑자기 나타나 '김 장관!' '김 국장!' '김 사장!'하고 부른다면 상대방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각하겠죠. '젊은 친구가 많이 아픈가 보군...'

     

그래서 말합니다.

내 뒤에 있는 조직과 나를 착각해선 안 된다.

내 자리는 나에게 잠시 맡겨진 자리일 뿐이다.



#inter + view      


인터뷰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질문이죠.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터뷰가 나오니까요. 인터뷰이에 대해 얼마나 공부하고 고민했느냐에 따라서 질문의 질이 달라지고, 인터뷰의 질이 달라지니까요.  인터뷰할 때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inter + view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과도 폭탄주 몇 잔만 마시면 마치 오래된 우정을 자랑하듯 '친한 척'을 할 수 있는 게 기자 기도 하니까요. 기자들이 출입처에서 만난 사람들을 '취재원'이라 부르고, 그 취재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는 기자의 또 다른 능력으로 평가받곤 합니다.      

가끔 후배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선배는 취재원 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내가 누구를 관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답은 멀리 있지 않더라고요.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사람보다는 좌천되고, 어려운 사람을 먼저 돌아본다.     


꿈 많던 어린 시절, 가끔 세상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저는 주먹을 쥐고 가만히 손등을 바라봤습니다.

주먹 위에 울퉁불퉁 능선처럼 연결된 끝자락을 만지면서 생각했습니다. 인생이란 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 올라갈 때는 내려갈 자리를 준비하고, 내려갈 때는 오를 길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취재원은 기자에게 큰 자산입니다. 자신이 그동안 들여온 시간과 땀방울, 소중한 인연들이니까요. 돈으로, 눈에 보이는 가치로 맞바꾸거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취재원들을 후배들과 함께 만나고 공유하는 이유는 나에게 잠시 맡겨진 자리를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요. 물은 쉼 없이 흐를 때 더 강한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 물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자신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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