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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ug 16. 2020

호사다마 [好事多魔]

마을행사에서 집단감염..

# 호사다마


"복날을 맞아 어르신들 몸보신시켜드리겠다고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으니 정말 호사다마란 말이 딱 들어맞아요."  -명달리 이장-     


코로나 19 청정지역인 양평군 서종면의 한 마을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지난 9일(일) 복날을 맞아 마을에서 어르신들에게 보양식을 대접하는 복달임 행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어제(15일) 아침 회사로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양평 서종면 명달리 마을의 집단감염 사태는 내가 텍스트로 접하는 수많은 기사 중 하나였다.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싶은 그런 얘기였다.     


그런데 오전 10시쯤 부장단 아침 편집회의가 끝나고 갑자기 총을 맞게 됐다.

(용어설명 / 총 맞았다 : 기자가 자기 출입처 기사가 아닌 다른 출입처 아이템 등을 취재하게 될 때 '총 맞았다'는 표현을 쓴다. 본인이 취재한 아이템이 아니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아이템인 경우에도 '총 맞았다'고 말한다.)     

나는 총을 맞고 일단 양평으로 이동했다. 달리는 고속도로는 내 마음처럼 앞뒤가 꽉 막혀있었다. 하늘에서 비는 하염없이 쏟아지고,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과연 오늘 안에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양평군 보건소, 병원 등 전화를 돌렸고 인터넷과 페이스북 지인 검색 등을 통해 양평 쪽 연고자를 찾아봤다. 검색 끝에 집단감염이 발생한 장소였던 '숲 속 학교' 운영자가 마을 이장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작은 단서를 갖고 숲 속 학교 측에 전화를 했다. 그냥 감으로 "이장님?"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정말 이장님이 답했다. 본인도 확진 판정을 받고 앰뷸런스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 지역 병원 원장도 감염


"우리 마을에는 암 환자분들이 200분 정도 와서 지내요.

물과 공기가 깨끗하다 보니 우리 마을에서 자연치유를 하면서 회복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 마을에서 병원을 하시는 원장님이 어르신들 기운 내시라고 복날 행사 비용을 댔어요.

그런데 원장님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원장님도 황당하실 것 같아요."


"황당하지. 자기가 코로나 전문 치료사인데. 본인이 진료하고 소독하고 왔다가 잠깐 (주민들) 보고 갔는데도 그렇게 되니."


"원장님이 확진된 거면, 거기 진료받은 분들은?"


"그래서 오늘 거기에 임시진료소를 하나 더 설치했어요. 암 환자분들이니까 심각하잖아요. 저항력이 워낙 없는 분들이니까..."


"아, 그러면 암 환자분들이 거길 주로 다니셨던 거예요?"


"여기 동네 주민은 100% 암환자예요."


"그러면 정말 심각한 것 같아요. 원장님이 걸린 거면 다른 진료 환자에게도 전파가 됐을 것 아니에요."


"입원진료병원이니까 다른 병원처럼 매일 환자를 접하진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염려되는 건 한 두 명이라도 나오면..."   



정말 호사다마였다.

마을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그분들이 코로나19로 시내에 큰 식당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어 마을 안에서 식사대접을 한 게 집단감염으로 이어졌고, 병원장인 본인도 감염됐다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또 마을 이장은 본인이 감염된 사실도 모르고 행사 이틀 뒤인 11일(화) 서울 삼육병원 장례식장에서 1박을 하며 마을 주민 어머니의 발인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서울지역 2차 감염이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회사에 보고를 했고, 오후 편집회의 내용이 바뀌었다.

현장 스케치 리포트가 아니라, 중계차를 보낼 테니 현장에 계속 있으라는 거였다.

(아니, 스케치만 잠깐 하고 오라고 해서 노트북도 안 가져왔는데. 위험한 곳이어서 정말 잠깐 있다 가려했는데..)     


그 사이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 발표했고, 집단 감염된 마을에서 영상 스케치를 마치고 카메라 기자 선배와 오디오맨, 회사 차량을 운전해주시는 형님(*기자들은 회사 차량 운전기사 분들을  '형님'이라고 부른다.) 모두 차 안에 갇혀있었다. 마을 주민들 전체가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어서 마을 내 식당이나 슈퍼마켓도 들어갈 수 없었다. 중계차가 올 때까지 어디 들어가서 기다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     

 

마스크에 장갑을 끼고 원거리서 주민 취재를 했고, 기사는 모바일로 작성해 전송했다.

중계팀은 5시쯤 도착해 세팅을 했고, 8시 뉴스데스크에 라이브로 연결해 방송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카톡이 여기저기서 날아왔다.      


"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기자님, 부서 바뀌었습니까?"


정말 긴 하루였다.                 




# 긴장, 그리고 두려움


취재진은 제때 점심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서종면에서 패스트푸드점을 검색했더니 24km가 나왔고, 편의점을 검색했더니 차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가평 인근에 한 곳이 나왔다. 오후 4시쯤 가평의 편의점에 도착해 삼각김밥과 컵라면 등을 먹는데, 영상기자 선배가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먹어 본 라면 중 제일 맛있다.

내가 사츠마리(사회부 경찰 취재 기자) 할 때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을 취재했거든.

근데, 그때도 먹는 건 오늘보다 나았어.

여긴 곳곳이 2차 감염 우려가 있으니 겁이 나서 아무 데도 들어갈 수가 없잖아..."


그제서야 나도 긴장이 풀렸는지 말문이 트였다.


"저는 사실 동일본 대지진 터졌을 때 체르노빌 원전 취재 간 이후 처음으로 현장 취재가 겁이 났었습니다. 혹시라도 취재 과정에서 2차 감염돼 제가 전파자가 될까 봐요. 집에 어린 딸아이도 있으니..."


처음 숲속 학교에 도착했을 때 마을 이장이 격리 공간을 나와 취재진 쪽으로 다가왔었다. 취재진은 놀라 큰 소리로 "나오시면 어떡해요!"라고 외치며 달아났고, 이장님은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셨다.


불안한 마음에 보건소에 문의했다.

확진자와 1~2미터 거리를 두고 마주했고 서로 94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고 했다.

혹시라도 모를 2차 감염이 걱정된다고 했다. 역학조사관은 말한다.


"선생님, 야외에서 2미터 간격을 두고 지나치고, 서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으면 감염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증상이 있으신 게 아니면 검사를 해드릴 수 없어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광복절 휴일 근무 이후 예정됐던 1박 2일 여행 일정은 모두 취소했다. 아이는 함께 여행을 계획했던 언니네 집으로 보냈고,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현장에 답이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 이번 취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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