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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ug 17. 2020

폭탄 테러 현장에서..

"5분만 빨리 도착했어도.."

#우연한 만남


지난 15일, 양평 서종면에 회사 중계차가 도착하고 스텝들이 숲속학교 앞으로 오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나 오늘 중계차 첫 근무인데, 또 만났네!"


중계 카메라 감독으로 온 K선배였습니다.


K선배와의 첫 만남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2000년도 무렵 MBC 러시아 통신원 활동을 할 때 였습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시사교양국의 와! e 멋진세상 등 프로그램에서 러시아 관련 소식을 전하고, MBC 출장자가 있으면 현지에서 코디처럼 통역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K선배와는 시베리아에서 만났고 그때 선배는 PD였던 A와 함께 출장을 왔었습니다. 시베리아 집안에서 곰을 키우는 아저씨를 섭외해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상황을 촬영하는 데, 아이템을 찍는 내내 쉽지 않았습니다. 키가 2, 3미터쯤 되는 곰들이 집 안팎에서 움직일 때마다 안전을 살피며 촬영을 했으니 얼마나 조심스러웠겠습니까.

며칠에 걸쳐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각각 서울과 모스크바로 헤어지게 됐습니다.   


요즘 핫한 '싹쓰리' 멤버 중 비룡이 "우리 회식은 안 해요? 그래도 밥은 한번 먹읍시다" 했던 것처럼, 저도 그때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까지 6시간 넘게 날아와 몇 날 며칠을 고생했는데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못 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장기간 출장에 식사도 촬영 협조해준 곰 아저씨 집에서 거의 해결했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마지막 날에서야 정말 제대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K 선배가 광복절 날 중계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날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 러시에서 나한테 'A, 저분 왜 저래요?'라고 물었잖아. 내가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 회사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많이 창피했어."

   

요는 출장 내내 밥값 등 출장비를 아끼고 아꼈던 사람이 본사에 돌아가서 영수증 처리할 게 없으니 환전소 앞에서 환전 영수증 여러 장을 챙기고, 공항에서 티켓 영수증 등 남이 버리고 간 영수증까지 주섬주섬 줍고 있던 모습이 저에게 포착돼 제가 K선배께 '저분 왜 저래요?'라고 물었다는 겁니다.

      

18년 전 일이지만 저도 그날 영수증 줍고 있던 A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K선배가 몹시 당황하셨고, 부끄러워하셨던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K선배는 당시 저에게 "한국 나오면 꼭 연락 달라. 미안하다. 맛있는 것 사주겠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2003년 여름인가, 잠시 한국을 다녀갈 때 K선배는 반포 인근의 큰 킹크랩 전문점에서 제일 비싼 랍스터를 사주셨습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맛본 랍스터, 어찌 그 맛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후로 사실 K 선배와의 연락은 끊겼었습니다. 저도 귀국 이후 언론사 시험 준비한다고 바쁘게 지냈고, MBC 입사 이후엔 '연락 한번 드려야지' 하다가 세월이 갔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2월쯤인가. 아침 뉴스 PD를 하면서 잠깐 아침방송에 출연을 했는 데 첫 출연 날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감독님이 저를 보고 "혹시, 러시아?"하고 물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K 선배였습니다.

      

"어, 나 오늘 이 프로그램 촬영 처음 나온 날인데. 러시아에 사는 줄 알았어. 한국엔 언제 나온 거야!"

    

"제가 우리 회사 다닌 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연락을 못 드렸네요. 2006년에 기자가 됐고, 2011년 경력 공채로 MBC 입사해서 보도국에 있습니다."

    

그리고 3월 말쯤 병가로 업무를 몇 달 쉬다가 법조팀으로 업무 복귀를 했는데, 총 맞고 주말근무 파견 나온 현장에서 또 K 선배를 만난 겁니다.      


참, 우연치고는 정말 신기한 인연이지요. K선배와의 만남은, 오래전 내 기억들을 소환해냈습니다.

          



# 뮤지컬 극장 인질극..푸틴, 독가스 살포

     

2002년 10월은 저도 뮤지컬에 흠뻑 빠져있었을 때입니다.

'호랑이를 그리면 고양이라도 나온다'는 편에서 소개됐던 Y언니 덕분에 뮤지컬의 매력을 알게 됐습니다. 그 무렵 저는 동생과 기숙사를 나와 서울로 치면 송파지역쯤에 아파트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 사람들이 뮤지컬에 열광하자 러시아는 ‘노르드 오스트’라는 러시아 뮤지컬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열광하자 티켓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당시 동생에게 "누나가 이 작품을 안 보면 병이 날 것 같다. 같이 보러 가자. 같이 보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동생을 설득했는데 동생은 무대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동생에게 '같이 보자'라고 했던 그 기간에 뮤지컬 극장에 인질극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MBC 시선집중입니다. 한국시간으로 내일 새벽 전화 연결 가능하신가요. 현지 상황을 좀 자세히 전해주세요."  

    

그때 며칠 동안 시선집중에서 노르드 오스트 인질극 사건을 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이 보내준 원고와 손석희 진행자가 물어보는 내용이 달랐고, 방송을 며칠 해보니 '질문지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지요. 라디오로 소식을 전하면서, 동시에 무음으로 러시아 1번 채널(한국의 KBS)을 틀어놓고 자막에 반영되는 사망자 속보 등을 전달했습니다.      


9백여 명이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었고, 공연 중간에 체첸 군들이 진입해 관객들을 인질로 잡아서 러시아를 협박했죠. 체첸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고, 체첸의 독립을 보장하라는 등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푸틴과 협상을 원한다였는데, 당시 푸틴 대통령은 며칠 시간을 벌더니 관객 3백 명 가까이 인질로 있던 극장 안에 독가스를 살포해 체첸군도 관람객들도 모두 숨지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동생이 말하더군요.

누나가 너무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데, 자기도 고민이 됐지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고.        

 



# 모스크바 도심 폭탄테러 2003년 12월 9일      


2003년12월 9일 MBC 뉴스데스크

2003년 하반기엔 모스크바 통신원 자리를 내려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초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되어있었고, 캐나다에서 졸업논문을 마치려고 모든 시험을 앞당겨서 보던 시절이었는데요.     


후임으로 통신원을 맡은 언니가 하루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서 아주 까칠한 분이 오셨어. 강재형 아나운서라고 알아? 이 양반이 모르는 게 없어. 전문가 수준이야. 그래서 자꾸 말문이 막히는데. 크렘린을 가보고 싶대. 근데 내가 크렘린 안을 잘 모르잖아. 네가 딱 하루만 도와줘라."

     

저는 2001년 모스크바에서 IOC 총회가 열렸을 때, 삼성전자에서 이건희 회장 수행 요원으로 발탁돼 3개월 가까이 크렘린과 러시아 문화 유적지 등에서 매일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크렘린 내부에 무기고나 보석박물관 등 시설 곳곳이 눈에 훤한 사람이니... 도대체 강재형 아나운서가 어떤 사람이길래 '똑순이' 같은 언니를 긴장하게 했나 싶기도 해서 만나봤습니다. *(똑순이 님은 러시아어도 잘하지만 영어 어학점수도 거의 만점이었거든요.)

     

그날이 바로 2003년 12월 9일이었습니다.     

강재형 아나운서와 저는 크렘린을 가기 위해 모스크바 남쪽 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크렘린 인근 레닌 도서관 앞에서부터 갑자기 도로가 꽉 막혀버리지 않겠습니까. 차 안에서 5분, 10분 앉아서 기다리면서 '걸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방송이 나옵니다. 크렘린 앞에서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했다고.

       

강재형 아나운서는 당시 김석진 모스크바 특파원께 연락을 했습니다. 우리 위치와 상황을 전했고, 강 아나운서 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캠코더로 시민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폭탄테러가 벌어진 내셔널 호텔 앞쪽으로 갔습니다. 크렘린 앞에 위치한 호텔이고,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상징적인 호텔이었습니다. (레닌이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로*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길 때에도 머물렀던 곳입니다.)     

크렘린궁에 다 와서 길이 막혔을 때는 속으로 택시 아저씨를 원망했는데, 아저씨가 5분만 빨리 도착했어도

우리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날 강재형 아나운서가 우리말로 질문하면, 옆에서 통역으로 물어보고 답해줬던 사람이 접니다. 우리가 땄던 시민 인터뷰는 그날 저녁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됐고, 자막에 '강재형 아나운서' 이름이 올라갔죠.      

같이 죽을 고비를 넘겼던 강재형 아나운서. 그때 MBC 차장대우였나 차장이 적힌 명함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제가 MBC 차장이 됐으니 세월 참 빠르죠.

 



# 체첸, 취재를 준비하다      


MBC 통신원 시절 'PD 수첩' 팀에서 연락을 받고 체첸 출장을 알아보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당시 이우환 PD께서 체첸 지역 상황을 물어보셨고, 몇 주 동안 현지 사정 등을 알아보고 일정도 어느 정도 픽스가 됐는데, 막판에 캔슬이 됐습니다. MBC 내부에서 간부들이 너무 위험하니 취재 일정을 불허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긴, 체첸은 시장에서도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지나가는 자리 곳곳이 지뢰밭이라고 했으니 안전이 염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2017년 파업 때, 하루는 이우환 선배랑 점심을 먹는데 이 선배께 여쭤봤습니다.     


"선배, 그때 몇 연차 PD 셨어요? 아이는 몇 살이고요?"    


저는 가족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위험한 지역 취재는 정말 고민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근데 그때 그 시절 이우환 선배는 젊은 혈기에 열정으로 일할 때였고, 안전보다는 아이템이 우선이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약, 지금 제가 '2002년 러시아와 체첸의 상황'을 취재해야 한다면, 지금의 저는 쉽게 손들고 가겠다고 할 용기가 없습니다. 솔직히 기자이기 이전에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나의 안전이 곧 자녀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 망설여질 것 같습니다.     


모처럼 쉬는 휴일, K선배와의 만남으로 소환된 'MBC와의 인연'이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자를 꿈꾸던 한 학생이, 지금은 MBC에서 현장을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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