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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Nov 15. 2020

검찰의 '오보' 대응에 관하여

"A 씨의 법적 조치는 없었다"

   


 


# 서초동과 여의도   


만약 기자들에게 ‘서초동(법조팀) 취재가 더 어렵냐 여의도(정치부) 취재가 더 어렵냐?’라고

물으면,  서초동이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전자는 말을 안 해주는 데 취재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이고, 후자는 말의 홍수 속에 취재를 해야 하는 환경이라 그렇습니다.

      

10년 전에도 서초동에서 취재를 했고, 지금도 서초동에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요즘, 정말 기사 쓰기가 힘듭니다.


10년 전 서초동 기자들이 기사를 쓰던 문법과 전혀 맞지 않는, 어쩌면 여의도 문법에 가까운 기사들이

더 많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7월 초, 다시 서초동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행사했습니다.


이어 계속되는 수사 검찰 심의위원회의 결과 등을 지켜보면서 법조 기사가 사건 관련 내용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메시지의 의미를 분석하고, 친절하게 해석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차라리 수사 속보 기사를 쓰면 수사 ‘개시 -> 압수수색 -> 출국 금지 조치 -> 검찰 출석’이란 순서대로

타임 라인 안에서 흐름을 따라가면 되는데, 지금 상황은 수사와는 별개로 어쩌면 정치적인 이슈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래서 참 기사 쓰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주로 사회부 법조, 경찰기자를 오래 했지 정치부를 출입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짧은 몇 달 동안 다시 서초동에 와서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정치부 출입 기자들 정말 대단하다!...”


법조기자로 서초동에서 '말의 홍수'를 경험했더니, 이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고, 기사를 쓰기조차 힘들 정도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게 힘들었습니다.



     

# A 검사장의 법적 대응 예고      


요즘 저는 서초동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검찰 내부에도 여, 야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나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이 사람은 누구 라인인지, 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파악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게 됐고, 또 저는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못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1일.


라임 사건 수사 속보를 보도하고, 퇴근해 집에서 쉬고 있는데 밤 10시가 넘은 시각.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오보 대응’ 메시지가 왔습니다.     


A 검사장이 “저는 이 사안과 어떤 식으로든 전혀 무관하다”면서 “저에게 어떤 확인조차 없이 제 실명을 악의적으로 적시한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참고>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959497_32524.html



A검사장의 메시지를 보고 처음엔 황당했습니다.


방송이 나간 지 2시간 만에 대검찰청이나, 서울 중앙지검, 법무부에서 공식 문자 풀이 온 것도 아니고, 기사에 언급된 A 검사장이 직접 기자단에 문자 풀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좀 놀라웠고, 왜 본인에게 확인을 안 했냐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아, 추가 보도를 막기 위해서구나!’     


그날 밤.


저도 개인 SNS에 바로 공개 답변을 했습니다.     


“늦은 밤 뭐가 그리 급하셨던 건지. 보도된 기사 내용은 제대로 읽어보고 문자 풀을 하신 건지도 의문입니다”....                                     -SNS 공개 답변 중 일부-          


저는 A 검사장이 그렇게 말했다고 쓴 게 아닙니다. 라임 사건에 등장하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A 검사장을 통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길 들었다는 전언의 전언을 보도한 것입니다.


전언의 전언을 보도한 기자에게 “당신이 나에게 직접 확인을 안 했으니 법적 대응하겠다”는 것은

제가 알고 있는 법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분이 법적 대응을 예고한 지 보름이 지나도록 어떤 소식도 없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A 검사장님 관련 보도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성역 없는 수사, 성역 없는 취재      


2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현직 경찰청장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화이트리스트에 관여했다는 내용을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그때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었던 모 부장검사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경찰청장은 서면으로라도 조사하셨나요? 왜 구속되어있는 전 서울청장만 계속 불러 조사하세요? 당시 청와대 근무 기록을 따져보면 화이트리스트 문건 작성 시기가 경찰청장이 BH(청와대)에 있었을 때와 더 맞지 않나요?”     

부장검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래도 현직에 계신데 저희가 어떻게 불러요. 상당히 조심스럽죠.”     


그날, 저는 그 부장검사님께 말했습니다.     


“수사에 성역이 어디 있습니까. 현직이라 못 부르고 전직은 불러 조사하면,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경찰청장 곧 퇴임하면 바로 부르시겠네요.”     


이후 저는 검찰청 캐비닛 문건에 화이트리스트 관련 보고가 올라간 날짜와 내용 등을 특정해 보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보도 직후 검찰에서 ‘오보 대응’ 문자 풀을 했습니다.     


부장검사에게 “수사에 성역이 어디 있냐”는 말 까지 하면서 취재했던 내용인데, 바로 오보 대응으로 이어지니 참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관련기사 참고>

https://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627939_30181.html



그리고 1년 후.


제가 취재해 보도했던 경찰청장과 관련된 기사가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청장님은 박근혜 정부 시절 불법적인 정보 수집으로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됐고, 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당시 저는 경찰청장 관련 사건을 취재하면서 내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2017년 4월부터 석 달 정도 짧게 경찰청을 출입했던 적이 있었고, 출입 기자로서 인연이 있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취재 영역에서 기자가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 친분에 따라 어떤 사건에 대한 취재는 덮어버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분인데, 출장에서 돌아오는 귀국 길, 공항에서 인터뷰를 들이대며 취재를 해야 했고, 그 보도 이후 저도 한동안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했습니다. 제 안에서는 ‘취재에 성역이 있으면 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습니다.     



# 검찰의 오보 대응에 관하여    


서초동에서 한 사건을 길게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취재를 하는 경우도 습니다.      


지난달 보도됐던 박덕흠 의원 관련 보도도 그랬습니다.


2018년 초, 박 의원 관련 채용비리 사건에 대해 취재를 했었고, 채용비리로 의심되는 명단이 20여 명이었기 때문에 당시 검찰에서 하는 금융권 채용비리보다는 규모도 작고, 또 당시엔 시청자들도 ‘박덕흠이 누구인지’ 잘 몰랐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관련자들 인터뷰를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취재를 중단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는 상황이어서, 해당 사건을 우선 적으로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박덕흠 의원 관련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자, 2년 반 전에 만났던 취재원들을

다시 접촉해서 일주일 넘게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참고>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931448_32524.html




어떤 경우에는 취재를 했지만 당사자 설득에 실패해 보도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사가 아닌 취재 후기로 썼던 아래 글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두 명의 귀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


그때 정말 귀인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귀인 한 명은 경찰이 단순 살인사건으로 넘긴 것을 검찰이 재수사를 해서 청부살인으로 밝혀냈다는 내용을 듣고, 2017년도 경찰에서 검찰에 넘긴 살인사건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다 확인된 게 탤런트 송선미 씨의 남편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것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였던 김 모 씨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어렵게 귀인의 사무실을 수소문해 찾아갔습니다.


귀인은 저를 보자마자 싸늘하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혹시, 기자님이신가요? 기자시면 여기서 나가시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 이명박 사건을 풀게 해 준 귀인이라고 들었는데요. 김** 님을 도와주고 계신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사실이 아닙니다. 나가주세요.”


“검찰에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직접 말씀 주시기 힘드시다면 김**님이라도 만나게 도와주실 수 없으신지요.”


“제 말 안 들리세요? 나가세요.”     


귀인이 ‘나가라’는 말을 세 번 했을 때, 이미 내 발은 자동으로 문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귀인의 눈빛, 목소리, 카리스마.. 당장 안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귀인을 만났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느낌이 싸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청부살인이 벌어졌던 그 사무실이었습니다.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했습니다.


귀인을 찾기까지 과정은 참 의미가 있었는데, 귀인 설득에 실패한 입장에서 뭘 어떻게 보도한다는 말인가. 이후 보도가 아닌 취재 후기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관련 취재 후기>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4584915_29123.html          



그리고 6개월 뒤.


한겨레 신문 1면에 내가 만났던 귀인 얘기가 기사로 나왔습니다.


그 보도 직후, 서울 중앙지검 한동훈 3 차장은 문자를 통해 기자단에게 오보 대응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사실 오보가 아닌데. 취재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기사는 오보일 수가 없는 기사였습니다.               



<한겨레 신문 1면 보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4851.html




# 水落石出 : 수락석출 (물이 빠지니 돌이 드러난다)


법조 기사는 기사 자체가 정말 오보인 경우도 있지만, 사안에 따라서 추가 확산 보도를 막기 위해 검찰이 오보 대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취재 환경 속에서, 그래도 힘이 들 때마다 위로가 되는 사자성어가 바로 수락석출입니다. 물이 빠져서 밑바닥 돌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될 것이란 말을 믿고, 양심에 따라 묵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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