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님은 박근혜 정부 시절 불법적인 정보 수집으로 정치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됐고, 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당시 저는 경찰청장 관련 사건을 취재하면서 내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2017년 4월부터 석 달 정도 짧게 경찰청을 출입했던 적이 있었고, 출입 기자로서 인연이 있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취재 영역에서 기자가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 친분에 따라 어떤 사건에 대한 취재는 덮어버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분인데, 출장에서 돌아오는 귀국 길, 공항에서 인터뷰를 들이대며 취재를 해야 했고, 그 보도 이후 저도 한동안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했습니다. 제 안에서는 ‘취재에 성역이 있으면 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습니다.
# 검찰의 오보 대응에 관하여
서초동에서 한 사건을 길게는 몇 달, 몇 년에 걸쳐 취재를 하는 경우도 습니다.
지난달 보도됐던 박덕흠 의원 관련 보도도 그랬습니다.
2018년 초, 박 의원 관련 채용비리 사건에 대해 취재를 했었고, 채용비리로 의심되는 명단이 20여 명이었기 때문에 당시 검찰에서 하는 금융권 채용비리보다는 규모도 작고, 또 당시엔 시청자들도 ‘박덕흠이 누구인지’ 잘 몰랐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관련자들 인터뷰를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취재를 중단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는 상황이어서, 해당 사건을 우선 적으로 취재했습니다.)
귀인 한 명은 경찰이 단순 살인사건으로 넘긴 것을 검찰이 재수사를 해서 청부살인으로 밝혀냈다는 내용을 듣고, 2017년도 경찰에서 검찰에 넘긴 살인사건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다 확인된 게 탤런트 송선미 씨의 남편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것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였던 김 모 씨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어렵게 귀인의 사무실을 수소문해 찾아갔습니다.
귀인은 저를 보자마자 싸늘하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혹시, 기자님이신가요? 기자시면 여기서 나가시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 이명박 사건을 풀게 해 준 귀인이라고 들었는데요. 김** 님을 도와주고 계신다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사실이 아닙니다. 나가주세요.”
“검찰에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직접 말씀 주시기 힘드시다면 김**님이라도 만나게 도와주실 수 없으신지요.”
“제 말 안 들리세요? 나가세요.”
귀인이 ‘나가라’는 말을 세 번 했을 때, 이미 내 발은 자동으로 문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귀인의 눈빛, 목소리, 카리스마.. 당장 안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귀인을 만났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느낌이 싸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청부살인이 벌어졌던 그 사무실이었습니다.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했습니다.
귀인을 찾기까지 과정은 참 의미가 있었는데, 귀인 설득에 실패한 입장에서 뭘 어떻게 보도한다는 말인가. 이후 보도가 아닌 취재 후기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법조 기사는 기사 자체가 정말 오보인 경우도 있지만, 사안에 따라서 추가 확산 보도를 막기 위해 검찰이 오보 대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취재 환경 속에서, 그래도 힘이 들 때마다 위로가 되는 사자성어가 바로 수락석출입니다. 물이 빠져서 밑바닥 돌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될 것이란 말을 믿고, 양심에 따라 묵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