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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Oct 09. 2020

추모와 취재 사이

자식 잃은 슬픔보다 더 큰 슬픔 있을까

# 천년을 산다는 주목

  

어제 아침, 서울 남부지검을 찾았습니다.

상습적인 상사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고 김홍영 검사의 추모행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울 남부지검은 김 검사가 마지막까지 근무했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 김 검사의 부모님과 법무부 장관이 추모 행사를 갖게 된 것입니다.    


10시 45분쯤. 김 검사의 부모님은 남부지검 화단에 심어진 추모 나무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 추모 나무로 심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故김홍영 검사 추모, 당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김 검사의 아버지, 어머니는 비석에 세워진 아들의 이름을 계속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날 저는 추모행사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만 봤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 무슨 질문을 던질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다 혹시라도 부모님께서 한 말씀하시면,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 내적 갈등    


기자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직업입니다.

늘 ‘왜’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자의 권리이자 의무 앞에서 내적 갈등을 겪게 되는 취재의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취재를 할 때입니다.     


14년 전쯤, 기자 초년병 때 장례식장 취재 지시를 받고 마치 지인인 척 장례식장을 방문했다가 기자 신분을

밝히자마자 쫓겨났던 경험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쫓겨나는 게 당연합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내가 유족이라도 기자가 반갑지 않을 겁니다.    


요즘 사회부 기자들은 장례식장 취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예전과는 취재 문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화면으로 실시간 상황을 지켜보는 가운데 배가 침몰하자, 그 상황을 막지 못한

죄책감이 느껴졌고,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이가 없던 상황이라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 괴로움보다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같이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막상 부모가 되어보니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심경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또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제, 남부지검에서 열린 추모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가해자의 사과를 언론보도를 통해 접해야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추모 행사를 통해 김 검사의 부모님들께서 마음에 맺혔던 부분이 조금은 풀어졌다고 하시니, 작은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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