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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Dec 14. 2020

이름을 사칭했냐고?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를 읽고

# 뭐? 이름을 사칭했냐고?     


2018년 6월 28일 아침 8시 헌법재판소 입구.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지는 날, 아침부터 오후까지 현장에서 중계차를 타야 했다.     


헌재는 검찰, 법원처럼 기자실이 없기 때문에 기자 출입증도 없고

중요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면 임시로 마련된 기자실을 이용해야 했다.     


1층 정문 입구에서 신분증으로 방문증을 교환하려고 등록된 출입 기자

명단을 체크하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게 아니겠는가!


신분증 한번 보고, 내 얼굴 한번 보고, 다시 신분증 한번 보고 또 내 얼굴 한번 보고..     


"저 MBC 임현주 기자인데요. 무슨 문제 있으세요?"    

"흠.. 진짜 MBC 임현주 씨 맞아요?

내가 아침에 뉴스투데이를 챙겨보는데 얼굴이 달라서요. 달라도 너무 다른데?"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MBC에 임현주가 두 명입니다. 아침 뉴스 앵커는 아나운서 후배고요.

저는 이렇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입니다. MBC 아침 뉴스 챙겨봐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 사칭한 사람 아니고, 확인하고 싶으시면 헌법재판소 직원분들께 전화 한번 해주실래요?..."



     

# 너 지금 어디야?     


한 번은 오후에 회사에서 열심히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데 반가운 P 선배께 전화가 왔다.     


"너 지금 어디야? 녹음실에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와?"

     

잉?.. 녹음실?...     

방송 기자들은 기사 송고가 끝나고 부장의 데스킹이 끝나면, 목소리를 녹음하러

혼자 오디오실에 간다. 누군가와 같이 녹음할 일이 없는데... 녹음실?     


"아, 선배 저 보도국 임현준 데요."


"아... 현주 씨. 미안해요. 우리 아나운서국 임현주한테 전화를 건다는 게."


어디 전화뿐이겠는가.


우편물이 잘못 배달되는가 하면, 이메일까지 종종 잘못 들어오곤 했다.


같은 직장, 같은 이름 임현주를 알아가고 더 싶었다.           




# 입사 축하드려요!     


2011년 여름. 순화동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당시 근무하던 신문사에서 신문과 방송 통합 공채 1기를 뽑는다면서, 신입사원 채용이 진행됐다.

심사위원으로 다녀오신 편집국 기자 선배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현주 씨랑 이름 같은 친구가, 아나운서로 지망했더라?

그래서 점수 잘 줬어. 꽤 열심히 살아온 친구 같더라고."

     

뭐, 현주는 교과서에서도 많이 나온 흔한 이름이니...


학창 시절 같은 반에 김현주, 이현주.. 뭐 같은 현주가 한 둘이겠는가.


근데 성까지 같은 친구가 신입사원 면접을 봤구나.     


그리고 얼마 후. 기자 아나운서 부분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고 신문 1면에 이름이 실렸다.


그날 내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임 기자님, 축하드려요!"

"네? 축하요? 제가 축하받을 일이 뭐가 있죠?"

"아나운서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 봤어요!"

"아... 저 아닌데. 동명이인이에요. 축하는 감사한데, 그런데 얼굴을 좀 보고 말씀하세요~

객관적으로 제가 아나운서 할 외모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나는 기자가 좋아요."

     

그렇다. 그 임현주가 내 인생에 들어온 시간을 따져보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얼마 후 나는 MBC 경력 기자 공채로 입사를 했고, 2년 후 신입사원 명단에서 그 임현주를 봤다.

이쯤 되면 인연인 건가?  




#2017년 가을


3년 전 MBC가 총파업에 들어갔던 날이다. 문화부 출입 시절 취재원에게 전화가 왔다.     


"임현주 기자, 고생이 많아. 근데 현주 씨랑 옆에 나란히 앉았던데. 서로 알아?"

"아. 얼굴만 알지 잘 몰라요."

"임현주, 괜찮은 친구야. 같이 한번 봅시다."

    

그해 가을 어느 날.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가 취재원과 임현주를 같이 만났다.      

첫 만남부터 고깃집에서 빠른 속도로 폭탄주를 돌려 마시는 '현주 언니'를 보고 현주 동생은 얼마나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까.     


"이모~ 여기 카스처럼요.!" (요즘은 테슬라로 바뀜)

     

영화 공범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큰 현주는 소폭을 열심히~ 작은 현주는 맥주 한 잔을 마셨다.

그렇게 현주와 처음 만났다.     




# 엄마, 엄마! 안경 낀 이모도 임현주래!     


한 번은 퇴근했는데, 우리 딸이 말한다.      


"엄마, 엄마 회사에 엄마 말고 임현주가 또 있어!"

"응. 엄마랑 이름 같은 이모 있어."

"안경 낀 이모 맞지? 근데 그 이모도 엄마처럼 딸 있어?"

"아니, 이모는 결혼 안 했어."

"신기하다. 엄마랑 회사도, 이름도 같네."

    

심지어 우리 딸도 신기해했다. 이쯤 되면 임현주를 따로 만나야겠지?     


몇 번 자리가 있었다.

술 한잔 기울이며, 저녁을 하고 이런저런 살아온 날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2011년 면접관으로 가셨던 모 선배 말이 딱 맞았다. 참 열심히 살아온 친구였다.      


공대에 진학하고, 어느 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워싱턴 대사관에 공식 문의를 해, 있지도 않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들어 일을 시작했던 것부터 지금 MBC 아나운서로 일하까지..     


'현주를 응원해야겠다'

   

그동안은 이름도 같고, 직장도 같은 후배였다면, 임현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가게 된 순간부턴 임현주의 팬이 되어 응원하게 됐다.    

 

안경 낀 앵커로 시작해 많은 이슈의 중심에 서고,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 시간을 견뎌내는 현주 후배를 보면서 그 속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임현주는 페미니스트 아니냐? 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페미니스트가 뭔데? 어떤 것을 기준으로 페미니스트라 판단하는 것이지?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임현주는 '페미니스트'라는 한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닌데?..     


15년째 기자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는, 포털에 올라온 내 기사의 댓글은 거의 보지 않는다.


기자 초년병 때 남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이후, 댓글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기사를 쓸 때,  인터넷 댓글이 아닌 후속보도나 동종업계 반향으로 기사의 가치나 의미를 판단하지, 댓글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같은 이름, 같은 직장 후배도 댓글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겪었으니, 나처럼 '읽지 마라' 조언해주고 싶다.



     

#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현주가 책을 냈다.

기획 단계부터, 집필에 몰두할 당시 과정도 중간중간에 들었던 터라 너무너무 기대를 많이 했다.

그리고 지난주, 회사에서 현주를 만나 저자 사인이 있는 현주의 에세이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를 선물로

받았다.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면서 워싱턴 이야기가 나올 땐 망원동에서 현주 씨와 와인 한잔 마시며 들었던 그 이야기를 떠올렸고, 엄마 이야기가 나올 땐 코끝이 시렸다. 아침 앵커로 임현주가 아침을 열 때 '현주는 이런 고민을 했구나', 안경을 끼고, 노브라로 방송을 진행해보고, 유뷰브를 하다가 북튜브를 하게 된 사연까지...  

임현주의 진솔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보는 현주 씨의 도전에 응원의 메시지를 아낄 수 없었다.     


젊은 아나운서로 뉴스 앵커를 맡았을 때 고민들, 말 많은 방송국에서 그 말 때문에 고생했을 시간들..

어쩌면 다른 직군으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그랬을 수 있겠다 싶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접하니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현주가 마흔을 넘어,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의 속편을 쓴다면?

그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을지도 기대가 됐다.



# 말 한마디


기자도 말을 다루는 직업이다.

그런데 늘 말 때문에 상처 받고 말 때문에 힘들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가려서 만나기 시작했다.


뒤에서 말하지 않고, 앞에서 말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난다.


발 없는 말이 참 신기하게도 멀리, 빠르게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말 때문에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일은 힘든데,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의 말 한마디, 격려의 말 한마디면 얼마나 좋을까.     


현주 씨의 책을 읽다가 문득 몇 년 전, 후배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당시 후배는 선배들에게 혼나고 깨지느라 '죄송하다'는 말이 자판기 커피처럼 자동으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oo아, 잘 생각해봐. 네가 죄송해야 할 일이 아니야. 네가 뭘 잘못했는데? 열심히 했잖아. 그럼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선배 책임이지. 네가 죄송한 게 아니야. 죄송하다는 말을 줄여봐."

    

사실 위 이야기는 내 경험에서 나온 얘기였다.     


신문기자 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방송기자로 전향을 했는데, 첫 일진을 잘못 만났다.


후배를 늘 깨기만 하고, 아이템 발제를 하면 취재할 시간을 안 주고, 자기가 해야 할 자잘한 일만 시키는 선배.

그 밑에서 점점 나는 나다운 자신감을 잃어갔고, 주눅(?)이 들어 회사에 올 때면 어깨에 힘이 빠졌다. 늘 욕먹고, 깨지고.. 그래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마와리는 열심히 돌았는데..       


어느 날 라인 조정으로 일진 선배가 바뀌었다.


첫 아침 보고를 하는데 새 일진 선배가 말했다.     


"현주야. 너 왜 이렇게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해? 네가 뭐가 죄송한데? 열심히 마와리 돌면서

라인 챙기고, 잘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주눅이 들어있어. 그러지 마. 잘 생각해보면 네가 죄송할 일이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다 챙겨. 빠진 게 있음, 다시 확인하면 되지."


선배의 말 한마디에 나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실감했다.

그리고 나도 그 선배처럼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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