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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Dec 30. 2020

2012와 2021

말하는 대로


2008년 10월 30일 장미란 선수와 잠실에서 가을  야구를 관람한 날.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2008년 9월.      


장미란 선수가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를 들어 올린 감동의 순간이 생생하던 당시 이야기다.


 장미란 선수는 태릉선수촌에서 다시 평소처럼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지?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010-****-2012     


“네, 임** 입니다.”

“언니, 저예요. 미란이.”

“어? 미란아. 번호가 다른데?”

“저 핸드폰 번호 바꿨어요.”

“왜? 갑자기?”

“이제 베이징 올림픽이 끝났잖아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려고 2012로 바꿨어요.”



그랬다.

장미란 선수는 목표가 뚜렷했다.

미란이는 올림픽이란 큰 무대가 끝나면 휴대전화 뒷 번호를 그다음 대회가 열리는 해로 바꾼다고 했다. 그렇게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목표를

마음에 다시 한번 세우고 기억하는 것이었다.

역시,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빛낸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동안 휴대전화 뒷자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았던 나로서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나는 늘 생일이나 기념일 뒷자리, 어린 시절 우리 집 전화번호 뒷자리나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추천해주는 번호를 써왔는데...     


얼마 후.

나도 휴대전화 약정 기간이 만료되어 폰을 바꿔야 했다. 대리점으로 갔다.

통신사만 갈아타는 게 아니라 번호까지 바꾸면 약정 할인 혜택이 더 컸다.      


“뒷자리‘2012’번호로 바꿀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그날, 나도 2012 번호로 바꿨다.

새 번호가 개통된 직후 미란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미란아, 언니야.”

“어? 이 번호는 뭐예요?”

“나도 미란이처럼 바꿨어. 2012로.”

“하하하..”

“언니도 2012 런던올림픽 때 미란이 응원하려고.

또 지금은 남자 친구가 없지만, 2012년엔 서른둘이니 결혼도 해야겠지? “     


한 번은 미란이, 미령이 자매와 일본을 갔는데 나리타 공항에서 환승을 하느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와 미령이는 라운지에 앉아있었고, 미란이가 잠시 어딜

다녀온다고 했는데, 미령이 핸드폰으로 국제전화 발신이 찍혔다.     


+82-10-****-2012     


“어? 누구지? 국제전화인데 받아야 하나요?”

“미령아, 2012 번호는 미란이 번호야. 나도 미란이 따라서 2012로 바꿨어.”

“아, 우리 언니 번호가 2012에요?...”     


3년 뒤 나는 MBC로 이직을 했고, 생에 처음 내 명의가 아닌 ‘법인폰’을 쓰게 됐다.     


“제 번호 그대로 옮길 수 없을까요?”

“법인폰이라서 안될 것 같은데요.”

“그럼 2012 번호라도 좀 살려주심?...”

“끝자리 2012번이 남는 게 없어요. 다른 번호를 고르셔야 합니다.”

“음... 그럼 2021번으로 할게요.”     


2021년이면 내 나이 마흔한 살이니, ‘결혼을 했다면 아이가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15년 넘게 기자로 살았으면 중견기자에 접어들어 여유가 좀 생겼으리라 믿고도 싶었다.                




# 2012년.     


미란이는 나이 서른에 런던올림픽에 출전했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여러 차례 부상을 극복했다. 장미란 선수는 비록 아쉽게 4위에 그쳤지만 얼마 후 3위였던

아르메니아 선수가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사실상 3위나 다름없었다.     


나는?     

런던올림픽이 끝난 직후, 결혼을 했다.

그해 1월부터 7개월 동안 긴 파업을 했고, 런던올림픽 개막 직전 업무에 복귀했으며, 9월쯤

결혼했다.  2008년에 미란이도 나도 각자 뜻한 바는 달랐지만 나름의 ‘2012’ 번호의 의미를 이뤘다.          


2012년, 여의도 MBC 앞에 있던 장미란 선수 응원 사진.


#2021년을 앞두고     


나는 여전히 기자로 현장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이번 주엔 휴가를 냈고, 가족과 함께 작은 쉼을 얻었다.

아이는 3월에 초등학생이 되고, 나는 ‘학부형’이 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2021 번호를 만들었을 때

그 마음처럼, 기자로서도 엄마로서도 하루하루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다.     


미란이는?

뜻한 바가 있어 미국에서 3년 넘게 유학 중이다.

가끔 내가 야근하는 날 보도국 모니터로 애국가를 보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장미란 선수가 역도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면, 그 시절 미란이와의 추억이 생각나 보이스톡으로 미국에 안부 전화를 할 때가 있다.     


“미란아, 방금 언니는 화면으로 널 봤다. 애국가에 나왔어. 공부하느라 힘들지? 밥은 잘 챙겨 먹니? 아픈 데는 없고.?”     


언니의 질문 폭탄이 쏟아질 때면 미란이는 말한다.      


“언니, 저는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주변에 교회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요.”     


미란이를 처음 알게 됐을 때, 미란이 부모님을 보고 참 대단하다 느낀 적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운동할 때 건강식을 먹어야 한다며 햄이나 소시지 같은 건 안 주셨고, 라면도 사골 국물에 면만 삶아 먹거나, 양파껍질로 끓여서 양파 물을 주시고 하셨던 부모님. 내가 막상

부모가 되고 보니 지극정성으로 자녀를 키우고 돌보는 그 삶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더 깊이 느껴진다.     


이제 두 밤 자면 2021년 1월 1일이다.      


2021년에 휴대폰 약정기간이 끝나서 번호를 바꿀 계획이 있는 사람들은, 장미란 선수처럼

끝자리에 의미나 목표를 담고 번호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말하는 대로      


겨우 40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 거창하게 이런 말을 하면 좀 웃기지만.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말하는 대로 바뀌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사춘기 때 매일 아침 떠올리며 생각을 조심했던 말이다.

작은 생각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사실일까? 싶었지만, 적어도 내 경험칙 상으로는  맞는 말이다.     


늘 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 어려웠던 시기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내 마음을 바꾸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 같다.     


2021년엔 거창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작은 바람’ 한 가지가 있다면?

휴대폰 뒷자리는 못 바꿔도, 집 현관문 비밀번호라도?...     


2016년 브라질 올림픽이 끝나고 장미란 선수가 선후배 동료들을 위해 준비했던 행사. <리우에서 돌아온 우리들의 밤> 당시 나는 취재부서도 아니었는데 미란이 초대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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