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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Mar 13. 2021

삼육구, 삼육구

기자 슬럼프


 #.  언어 슬럼프


모스크바 유학 시절 언어 슬럼프를 겪었다. 처음엔 스펀지처럼 단어를 흡수하고 재미를 붙였다가도, 어느 날 내 생각을 마음껏 전달하지 못할 때 느껴지는 좌절감이 있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러시아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지. 이 정도 하는 것도 대단한 거야.’     


마치 주문을 외우듯  자신을 다독였지만, 마음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먼저 유학 온 언니가 말한다.     


“나도 슬럼프가 왔었어. 처음엔 뭣도 모르고 공부를 했는데, 1년쯤 되니까 힘들더라고. 그리고 3년, 5년 때도 슬럼프가 오더라. 근데 사람들이 슬럼프를 겪는 주기는 비슷한 것 같아. 보통 2~3년에 한 번쯤은 다들 슬럼프가 오는데, 그걸 잘 극복하면 3년, 6년 9년이 금방 지나갈 거야.”     


'1년, 3년 5년이라고?

그럼 그 시기만 잘 극복하면 3년 6년 9년은 잘 버틸 수 있는 거구나!'

     

그렇다. 버틴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내가 선택한 유학이었고, 내가 좋아서 떠났던 나라였지만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았다. 늘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지냈다.     


토요일마다 기숙사에서 요리를 했다.

먹고 싶은 한국 음식 재료를 러시아어로 수첩에 적어서 시장으로 갔다.

물건 값을 깎고, 새로운 단어를 듣게 되면 발음을 한글로 받아 적고 돌아와 사전으로 찾아봤다. 그러다 보면 책으로 배운 러시아어가 아닌, 살아있는 러시아어를 접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돼지고기 목살 0.5kg 주세요!”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인의 질문이 훅 들어온다.


“뼈가 붙어있는 고기로 줄까요? 아님 뼈를 제거하고 줄까요?”     


잉... 원래 모든 고기는 그냥 바로 사서 손질 없이 구워 먹는 거 아닌가?     


그랬다. 러시아에 가면 고기를 살 때 꼭 확인해야 하는 게 이 부분이다.     


가격표만 보고 저렴하게 고기를 산 줄 알고 그냥 들고 집에 왔다간,  돼지고기, 소고기에 뼈 손질하느라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손에 힘이 다 빠진다.     



# 극한직업 기자      


기자생활에도 슬럼프가 있다.      

기자 3년 차 땐 광우병 촛불집회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경찰 기자로 현장을 챙기면서 경찰이 쏜 물대포도 맞아보고, 명박 산성 앞에서 최루가스에 눈물범벅 콧물 범벅이 되면서 겪었던 그 시절 현장 모습은 지금도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초년병 기자가 조선일보 부장을 구하다>


하루는 집회 시위 현장에서 밤 11시쯤 여의도로 행진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날 밤 11시까지만 커버하고 현장에서 빠지는 롤이었다. 굳이 여의도까지 행진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금은 포시즌 호텔이 들어선 자리 맞은편쯤 사람들이 백여 명쯤 모여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다.

    

“뭐? 우리가 폭도라고?”


“이 사람이 우리한테 폭도라고 했고, 폭도들이 전경버스를 탈취하고 있다고 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어요!”


“맞아. 뭐 우리가 폭도? 당신 뭐야. 진짜 기자 맞아? 기자 사칭하는 거 아냐?”     


어떤 남성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시민을 폭도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흥분해  남성을 에워싸고 “기자면 신분증 내놔” “이름이 뭐야!” 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좀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무리 사이로 들어가 기자를 사칭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를 받는 분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나는 암행어사 마패를 보여주듯 기자 신분증을 꺼내 들고 얘기했다.     


“잠시만요! 저는 강남경찰서를 출입하고 있는 ooo인데요. 잠시 흥분을 멈춰보세요.

여러분들이 정말 폭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사람을 둘러싸고 그러시면 안 되죠. 이렇게 하시면 정말 폭도가 되는 거예요. 제가 이분이 진짜 기자가 맞는지 확인해볼게요. “     


꿀 먹은 벙어리 같던 남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선일보 ooo 기자였다.      


“여러분! 이분 기자 맞습니다. 조선일보 기자예요. 제가 지금 조선일보로 전화해서 확인도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분 가던 길 가시게 해요. 기자 사칭 아니잖아요.”     


그런데 시민들 반응이 엇갈렸다. 이대로 그 사람을 보내면 내일자 신문에 폭도들이 전경버스 탈취라고 기사를 쓸 것이라는 반응부터, 확인했으니 돌려보내자는 반응까지..     


“여러분! 여러분이 바라시는 게 뭡니까? 여러분들 누구 지시받고 여기 나오셨어요? 아니라면 이 집회가 평화 집회고, 평화 시위가 맞다면 이건 아니지요. 만약 내일 조선일보 기사에 폭도가 전경버스 탈취했다고 기사가 나오면 사실이 아닌데 기사가 나온 거겠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여기서 폭력을 행사하시면 그럼 그 기사가 팩트가 되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변호사인가? 어떤 남성 한 분이 격하게 동의를 해주셨다.      


“맞아요. 기자 얘기가 맞네요. 조선일보 기자인 것 확인했으니 돌려보내 줍시다.”     


하지만 흥분한 일부 시민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생처음 본 조선일보 부장급 기자를 조선일보 사무실 쪽으로 같이 동행해서, 근처 작은 호프집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 확인하고 술집 앞에서 시민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당시 상황을 일부 매체에서 보도하기까지 했다.

3년 차 기자가 조선일보 부장을 구했다는...

미담 기사고 마치 영웅담 같지만, 사실 그때 나도 무리 지어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얘기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또 한 번 오지랖이 발동한...

    

얼마 후 난 산업부 출입(전자, 통신, it, 정부부처 등)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기업 쪽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질문을 받았다.


“그때 기자님이 구해준 조선일보 기자, 이번에 부동산 팀장 됐던데요. 고맙다고 연락은 한번 왔나요?”

         



#기자 슬럼프


기자생활은 참 쉽지 않다.


20대 땐 모르는 처음 보는 출입처 사람과 만나 웃으며 얘기하고 밥 먹는 게 불편한 줄 몰랐다. 그저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마흔이 넘고 연차가 쌓이니 그게 안 된다.


밥은 편한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과 먹어야 한다는 생각?...     


처음 검찰을 출입했을 땐 명함 들고 인사 갔다가 문전박대당하고 나오는 게 어색하지 않았는데

이제 차장이 되고, 1진 됐는데도 누군가의 방 앞에서 망설이다 걸음을 돌려야 할 때 그 마음을 감당하기는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늘 마음속에 삼육구, 삼육구를 곱씹는다.     


삼육구를 버티니 15년을 넘어 기자 16년 차가 된 것 아닌가!

취재가 어렵다는 법조에서 아직도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그래. 아무리 마음이 힘들어도 오늘 하루를 넘기진 말자.      

... 그러고 주 중에 고량주를 물처럼 마셨다가 내상이 주말까지...(흑흑)     


참 힘든 시기에 중요한 출입처를 나가고 있다. 어쩌면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버티는 힘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 주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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