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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pr 10. 2021

기자 사용 설명서

'우물 안 개구리'를 조심

#우물 안 개구리


중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다른 학교에서 한 친구가 전학을 왔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서 전학 온 친구라 그 친구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전교 몇 등을 했고, 무슨 과목을 잘하고.. 소문이 금세 났지요.      


하루는 수학 시간인데 이 친구가 다니던 학교 진도와 우리 학교 진도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에 자기 앞자리 앉은 저에게 수학 공식을 물어보기에

저는 이전 시간에 배운 것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내 자리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다른 친구가 저를 조용히 복도로 불렀습니다.  

   

"좀 전에 그 친구에게 뭘 알려준 거야?"

"**공식을 안 배웠대. 그래서 설명해줬어"

"아니, 넌 지금 생각이 있어 없어? 곧 시험기간인데. 네가 그거 설명해줘서 걔가 시험 한 문제 더 맞음 어떻게 하려고?"

"...... 모르는 건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똑같이 배운 상태서 시험을 봐야 그게 진짜 시험이지"

  

그날 복도에서 같은 반 친구와 나눴던 대화 장면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제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 학생끼리 한 문제 더 알고 더 틀리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친구가 모르는 걸 물어봤을 때 알려준 게 왜 잘못인지. 시험이란 의미는 똑같이 배운 상태에서 공정하게 봐야 하는 것 아닌지... 당시 제 머릿속이 참 복잡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자 사용 설명서


기자가 되고 보니 기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각자의 경험과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요.

기자가 전문직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자를 하면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보이는 게 있더라고요.      


한 번은 경찰청을 출입할 때 일입니다.  

   

"기자님, 아무개 선배는 경찰대학 몇 기 선배신데. 그렇게 잘 나가시면서도 자기밖에 몰라요. 후배들은 안 챙기고, 윗분들에게만 잘 보이려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그 선배란 분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떻게 살았고 조용히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선배님이 보니까 조직 내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최고 에이스던데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경대 출신, 간부후보생 출신, 순경 출신... 경쟁이 워낙 치열하잖아요. 그 시절이면 경찰대학 막 생긴 지 몇 년 안돼 조직에 들어왔고, 그 당시엔 누구 하나 끌어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자리를 개척하다 보니 아마도 주변 후배를 잘 못 챙기셨던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제가 선배님께 주변 후배들 좀 챙겨주십사 말씀드릴게요."



기자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는 크게 두 부류인데 취재 잘하는 기자와 기사 잘 쓰는 기자가 있습니다. 아는 건 많아도 정리가 안돼 기사를 못 쓰는 경우, 아는 건 별로 없는데 야마(주제)를 잘 잡아서 정리를 잘하는 기자.

연차가 낮을 땐 전자가 더 인정받고, 점점 데스크의 영역으로 올라가면서는 후자가 더 인정을 받게 됩니다.     


저는 지금 딱 낀세대 마냥, 끼어있는 연차입니다.


현장을 뛰는, 취재 역량이 너무나 중요한 기자이면서, 이제 현장을 떠나 데스크로 일할 날을 준비해야 하는?      

그렇다 보니 요즘 저는 마음이 좀 급합니다. 제가 기자생활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취재 환경이 더 안 좋아졌고, 사람을 만나 취재하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 같이 일하는 후배들에게 무턱대고 '이것 확인해와'라고 압박하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기자 초년병 때 제일 불만이었던 게 취재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무턱대고 확인 지시만 시키는 선배들이었습니다. 기사에 담을 내용도 아닌데, 시시콜콜한 디테일까지 물어보며 후배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면서, 결국 기사엔 그 내용이 하나도 담기지 않는. '나잘난' 기자님들을 보면서

'나는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겠다' 늘 다짐하곤 했지요.     


세월이 흘러 지금은 현장에서 띠동갑 후배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는 늘 고민합니다.     


한 번은 모 후배가 묻더라고요.     

"선배는 취재원을 어떻게 관리하세요?"

    

사실 관리랄 게 없는 게 저는 기자생활 16년 동안 삶과 업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있던 사람입니다. 퇴근 후에도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에도 취재원들과 등산도 가고, 시간을 보내는?


그렇다 보니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업무적으로 전화 오는 기자들보단,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눈 기자 전화는 받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제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후배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떤 사안이 터지고 취재원에게 전화를 하잖아? 그럼 상대방도 내가 어떤 용건으로 전화했는지 훤히 다 알아.

만약 그 사람 입장에서 업무상 사실관계 확인하려고 오는 전화라면, 굳이 받고 싶을까? 근데 평소에 현안 없을 때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만난 사람들은 전화를 받더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왜, 우리가 운전할 때 보험을 들잖아. 만약 보험을 꾸준히 들어놓은 사람은 사고가 났을 때 보험에서 처리되는 부분이 있는 것과 비슷한?..."

  

적절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아서 보험을 설명했는데

기자들이 보험은 안 들고 보험금만 노린다고 했더니

후배가 확 와 닿는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후배에게 설명하면서도 맞는 말인지, 내 생각이 잘 전달된 것인지 싶었지만, 제 생각은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름의 원칙? 이 있습니다.


1. 녹음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설득해 전화 인터뷰나 오프라인 인터뷰 자리에 앉히지 못했다면, 몰래 녹음한 녹음 파일은 결국 송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당사자간에 녹음한 거니 아무 문제없다고 해도 굳이 몰래 녹음하면서까지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설득되면 전화 인터뷰 동의받고 녹음합니다.)


2. 기사냐, 사람이냐?


 사람을 먼저 택합니다. 기사 한 줄로 오랜 인간관계가 끝날 것 같은 상황이라면 사람을 택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경우라면. 그땐 기사를 택하겠지요.      


3. 연락처 공유


 기자를 비롯해 PD나 작가들에게 취재원 연락처는 정말 중요합니다. 일단 상대방과 연락이 닿아야 출연을 물어보든지 사실관계를 파악하겠죠. 그런데 유독 '미안한데. 내 취재원이라 알려주기 좀 그래.'라고 말하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게 좀 충격이었어요. 아니 나만 아는 취재원이 어디 있고. 굳이 같은 회사 사람끼리, 연락처 공유 조차 못할 관계인가?     

 

그래서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고 연락처를 잘 공유해주는  편입니다.

학창 시절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꼈던, 복도에서 조용히 나를 불러내 '생각이  있냐 없냐' 물었던 그 친구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요.


같은 회사, 같은 출입처에서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신뢰조차 없다면, 이른바 '나 홀로 단독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은 겁니다.          




# 뒷 통수 조심  

    

요즘 회사생활하면서 느끼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선배들이 참 많습니다. 선배가 한 창 잘 나갈 때 혼자만 잘 나갔고, 주변을 전혀 챙기지 않은 사례들이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고,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후배들은 그런 선배들을 보고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저 또 한 후배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스스로 돌아봤을 때 나 혼자 빛나기 위해 누군가 뒷 통수를 치고, 누군가를 밟고 일어선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기자 말년에 나랑 함께 맥주 한잔 기울여줄 후배는 있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지난달, 학부형이 되고 깨달은 것인데. 어린 시절.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 아이가 부모 보단 친구를 더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조직 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 눈엔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선배, 후배보단 선배들 눈치만 보는 선배가 분명히 구분되겠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내 직장생활 말년에 함께 밥 먹어주고 얘기 들어줄 사람은 선배가 아닌 후배라는 것. 그래서 후배가 중요하고, 후배가 회사에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도 사람입니다. 기사는 사람이 쓰는 겁니다. 기사냐 사람이냐, 선택의 순간에서 기사보단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택하는 그런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진설명 : MBC 보도국 밖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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