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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인간 Jul 23. 2020

다이어터의 자존감에 대하여

다이어트를 하는 당신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어요.

다이어터에게 '자존감' 무엇인가?

산산히 부서졌던 나의 멘탈이 이제야 어느정도 수습되어 내 스스로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입밖으로 꺼내어 본다. 내 자존감은 붕괴되었었다. 자존감의 붕괴라 함은 내 자신의 초라함에 세상과 담을 쌓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피해 온 요 근래의 내 모습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어가야 하는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관관계를 메신저에 의존했고, 누군가를 대면할 기회는 가능한한 최소화했다. 직장에서도 가능한한 사석모임이나 개인적인 식사약속은 잡지 않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대인기피증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에 ‘자존감’과 ‘대인기피증’은 큰 상관관계가 있었는데, 전자가 무너지니 후자가 뒤따라오는 형식으로 찾아왔다. 자존감에 관한 공부를 깊게 해보진 않은지라, 내 마음대로 주절주절 늘어놓기 조심스럽지만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왜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라는 생각은 꽤 오랜세월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 만년 다이어터로서 나의 자존감은 '외모'라는 이슈와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때문에 내가 이 글을 통해 기재하는 '자존감'의 영역은 나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나에게 묻는다.  어때?

나는 나의 외모가 싫었다. 인생을 살아온 3n년 중에 내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고 보면된다(쌍커풀 수술을 하고 스스로가 조금 예뻐보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 적이 아주 잠깐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어쨌든 간에 정확하게 나의 자존감 상태가 어느정도인지를 설명하려 내 스스로 자존감 저하의 원인으로 꼽았던 이유들을 생각나는대로 끄집어내본다. 나의 최대 신체 컴플렉스는 무릎 한뼘 위부터 아랫배 까지의 구간이다. 사지말단부(손, 발)와 목 위(얼굴)를 제외하고는 살집이 있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조금 전 언급한 신체 중심부(똥배, 엉덩이, 허벅지)가 특히 자신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패션은 언급한 부위를 가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모던하고 심플한 패션이 취향이었지만, 정작 항상 원피스와 긴 상의에 내 몸을 감추려 노력해왔다.


나는 일찌감치 부터 다이어트에 관심을 쏟았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초등생 시절부터 내 신체불만부위가 생겨났고, 중학교 졸업 시즌 즈음 부터는 항상 외모에 대한 열등감 속에 살아왔다. 그러나 그 때부터 근래 까지도 그냥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름 아둥바둥 다이어트라는 방법속에 내 자신을 밀어넣으며, 때로는 조금 살이 빠졌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통통했다가, 그렇게 살아왔다. 내 기준에서 아주 못봐줄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었을까? 물론 이따금씩 불만의 강도가 참기 어려운 정도로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왔다(그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 찰리채플린 -

그러면 왜 유독 근래에 들어 자존감이 붕괴상태에 이르렀던 것일까? 첫번째는 올해 초부터 유독 점점 버거운 숫자로 느껴지는 내 나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리고 두번째, 글로는 기록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몇차례의 사건들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참 하찮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또 그만큼 처참하고 비참한 것이 없는 에피소드 들이었다. 직접적인 나의 사례를 예로 들기는 부끄러우니 가상의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타인으로부터 뚱뚱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보다 예쁘다고 생각되는 다른 이성에 관심을 갖는 것을 알고 상처를 받는다거나 등등. 아마 이러한 예들이 우리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발점이 되는 참 하찮으면서도 웃어넘길 수 없는 상황들이 아닐까 한다. 그런 상황들에 왜곡을 더하고 또 생각을 얹다보니 그 하찮은 것들이 더이상 하찮지 않게, 큰 눈덩이로 불어났다. 그리하여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들 속에는 항상 주인공인 나는 피해자 역할이었다.


처음에는 살을 빼고 지금보다 아름다워진 업그레이드판 내 자신이 되면, 자존감은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붕괴된 자존감 때문에 나는 다이어트를 할 수가 없었다. 당장, 급하게, 빠른 시일내에 이뤄내지 못하면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자존감이 무너졌는데 맛있는것도 먹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매일매일이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일밤이 배달음식 파티였다. 체중계의 수치는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을 제외한 모든 항목이 계속 우상향했다. 배달음식을 먹는 10분의 즐거움이 간절했던 걸까? 맛있는걸 먹으면서도 괴롭고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느 날 퇴근 길,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됐다. 따뜻한 봄날씨였지만 으슬으슬 추위가 밀려왔고 내가 아는 누구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피해자인 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러이러한 연유로 내 자존감이 붕괴되었고, 그래서 나는 어떤 상태이고 등등.


근데 그건 네 욕심때문인거 같은데?

동생한테 뼈맞았다. 사실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내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A씨(내 머릿속에 이미지화 된 이상적 몸매의 그녀 - 구릿빛 피부의 탄탄한 몸매, 터져나갈듯한 가슴과 11자 복근이 살짝 돋보이는 납작한 아랫배와 잘록한 허리, 한껏 업된 엉덩이, 쭉 뻗은 다리를 가짐)와 나를 비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A씨)는 내 머릿속에서 이미지화 된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타인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까. 결국 A씨와 내 자신을 비교선상에 올려놓은 것은 최종적으로 내 자신이다. A씨가 가진 그러한 것들을 갖지 못한 내 자신의 욕심과 열등감이 내 자존감을 무너뜨렸던 것이었다. 그럼 아까 말했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들 속으로 돌아가보자. 결국 피해자도 나지만, 가해자도 나였다.


이제 욕심을 내려놓고 자존감을 집어들자.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자존감이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꽤 꾸준히 자기최면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나로서도 충분히 매력있다' 등등의 예쁜말, 고운말도 있었지만, 비교적 도움됐던건 현실직시와 충격요법이었던 것 같다. '이미 3n년을 살아온 마당에, 이렇게 생긴 내 자신이라도 내가 예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자포자기의 심정. 3n년을 누군가와 비교하고, 내 자신을 미워하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은 아니니까 양보할 건 양보하고 고칠 수 있는 것부터 고치는거다.


자신없는 부위일수록 왜곡없는 영상(우리가 사랑하는 소다나 스노우 같은 최첨단 프로그램 말고)으로 사실적인 관찰을 해보는 현실직시 충격요법도 도움이 된다(나는 그랬다). 꾸밈없이 영상으로 찍은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뱃살이 많았고, 엉덩이와 허벅지에 붙어있는 셀룰라이트는 성형외과 의료잡지에서나 볼법한 것이더라. 그리고 내 생각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팔뚝살과 등살도 생각보다 울룩불룩해서 놀랐다. 꼼꼼하게 구석구석을 관찰해봤다. 충격적이었지만 자기혐오를 더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나아질 일만 남았으니까.


다이어트, 자존감 그리고 속도의 상관관계

혹시 무너진 자존감에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에 땅에 떨어진 자존감은 일단 집어들라고(추켜 세우진 못하더라도).


자존감이 붕괴되면, 다이어터는 속도제어 능력을 잃는다. 절박함과 조바심에 초기의 목적도 잃게 된다. 무너진 자존감의 상태에서는 초반 레이스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끊임없이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예뻐하진 못하더라도 혐오하지 않아야만 이 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다.


오늘은 이끼소녀라는 가명을 뒤집어 쓰고 마음을 돌보는 다이어트를 시작한지 46일차다. 나는 이제서야 내 페이스에 맞춘 다이어트를 하고있다. 아직도 머릿속엔 보석같은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탄탄한 몸매의 그녀(A씨)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더이상 나의 비교대상이 아니다. 나는 똑같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같은 DNA를 가지고, 피부색과 점의 위치, 얼굴 생김새와 머리통의 크기가 같은 46일 전의 나와 함께 거울앞에 선다. 46일 전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꽤 고마운 비교대상이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46일 전의 나 또한 볼수록 꽤 귀엽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인간미 없는 A씨 처럼 되어버릴까봐 아주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 안녕하세요 이끼소녀 입니다 :) 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틈틈히 스스로를 돌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이어트를 하고자 노력하고, 좋은 습관성형을 위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소소하게 이런 저의 삶을 기록하고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제 글에 인연이 닿은 분들께 정보와 즐거움, 위로를 드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울러, 인스타그램을 통해 기록하는 식단일기와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직장인 다이어터의 수줍은 브이로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인스타그램 식단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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