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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절뚝절뚝 동행

산티아고 북쪽길 | 속도를 잃고서 얻은 하루

by 이끼레몬소르베

바야흐로 속도, 효율, 가성비의 시대다. 요즘은 심지어 쉴 때에도 이런 가치들을 고수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마저 맴도는 듯하다. 그럴수록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가치가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4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를 대표하는 장소이다. 2019년 여름, 나도 그 빛에 이끌려 길 위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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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하면 어떤 심상이 떠오르는가?

삶의 전환점을 찾거나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저마다의 이유로 걷는 사람들, 끝없이 펼쳐진 자연 속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경험, 하루의 끝에서 와인 한 잔으로 피로를 씻으려 모여 앉은 순례자들 사이로 무르익는 저녁의 대화...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6년 전의 내게도 순례길은 기대 이상의 경험들을 선사해 준 특별한 곳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똑같다는 말을 증명하듯, 세속적인 면모들을 종종 마주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현대인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경쟁도 포함된다.


달리기나 등산을 할 때 반드시 듣는 말이 있다. "자신의 페이스를 따라가라". 본질적으로 장거리 하이킹 코스인 순례길에서도 통하는 진리다. 빠르든 느리든 각자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내고, 동시에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포용의 길. 여기에 종교적 성지다운 경건함 한 방울이 순례길 특유의 매력을 더한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의 침대 경쟁이 꽤 치열하다. 각 알베르게의 침대 개수는 제한적이어서 목표한 마을에 도달했을 때 그곳 알베르게의 침대가 다 차버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당장 밤에 잘 곳이 없어지는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다.


이런 사정은 가기 전부터 대충 알고 있었다. 난 여러 갈래의 순례길 코스 중 가장 유명한 프랑스길이 아닌 바닷길을 따라 걷는 북쪽길을 선택했는데, 인파로 인한 경쟁을 좀 피하고 싶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북쪽길의 출발지인 이룬에 도착하니 뭔가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순례자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대다수가 야생의 산길이 보도블록보다 익숙하다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힘든 코스인 만큼 고수들이 모여드는 코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예감은 다음날 어느 정도 사실로 판명됐다. 난 일부러 일찌감치 길을 나섰지만, 출발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그게 헛된 노력이 되어감을 감지했다. 나보다 한참 뒤에 출발한 사람들조차 나를 사뿐히 따라잡고는 이내 유유자적 시야에서 금세 사라져 버리곤 했다. 토끼들 사이에 낀 거북이가 된 기분이었다. 초반에는 '저 사람들은 다리가 길어서 그래'라며 합리화를 시도했지만, 내게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는 본인 몸통만 한 나무 지팡이를 짚으며 성큼성큼 나를 앞질러 산을 오르시던 아르헨티나에서 온 아담한 70대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가는 만년 꼴등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오기가 생겨 그 순간 이후로는 매일 힘껏 속도를 냈다.


엄밀히 말하면 순례길은 사서 고생하러 가는 길이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오로지 개인적인 충족과 만족을 위해 걷는 길이다. 언제든 훨씬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시간을 전혀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사치스럽기도 한 여정이다.

하지만 막상 그 길에 서니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도착해서 쉬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게 아닐까?' 하는 계산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래서 내 매일의 목표는 어떻게든 목적지에 빨리 도달해서 침대를 차지한 다음, 남은 시간을 최대한 여유롭게 보내는 것이었다. 사실 도착하고 하는 일들은 뻔하다. 씻기, 놀기, 먹기, 정리하기, 자기로 요약될 수 있는 단순한 일정이다. 야심 차게 들고 간 해드폰을 쓸 여유도 없을 정도로 오버 페이스를 하면서까지 속도를 높였던 이유는, 순전히 뒤처지기 싫다는 승부욕과 한가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미처 떨치지 못한 침대 경쟁의 긴장감도 더불어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나타났다. 순례길에 들어선 지 일주일 만에 발목이 고장 나버렸다.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욱신거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지나가다 마주친 순례자들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첫날부터 나를 은근히 챙겨주셨던 프랑스인 아주머니께서 건넨 따뜻한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무의미하게 겉돌기만 했다.


다행히 아킬레스건에 이상이 생겼던 날에 머무른 마을에서부터 다음 목적지인 빌바오까지는 10km밖에 되지 않았다. 큰 도시인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미술관 등 볼거리도 많다고 해서 빌바오에서 2박을 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속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알베르게가 아닌 일반 호스텔을 예약하고 나니 잠잘 곳을 확보했다는 안정감이 생겨서 다음날은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쉬고 싶더라도 쉬는 시간만큼 손해 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3km만 더 가서 쉬자’ 라거나 ‘저 언덕만 넘고 쉬자’라며 스스로를 다그쳤을 테지만, 그날은 쉬고 싶으면 냅다 앉아서 쉬어버렸다. 많으면 한 시간에 대여섯 번이 넘게 쉬어가기도 했다. 나를 지나쳐서 가는 순례자들을 보면서도 이전에 보였던 조급함과 경쟁심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사와 응원을 보내줄 수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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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언덕의 오르막 초입에 다다랐을 무렵, 나처럼 절뚝거리는 한 순례자 할머니를 마주쳤다. 호주에서 온 멋진 은발의 할머니는 자신을 카렌이라 소개하시곤 내 걸음걸이를 보시더니 환한 얼굴로 말하셨다.


“오 너 걷는 거 보니 내 동행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 다른 젊은이들은 모두 자신을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며. “다들 너무 빨라 그렇지 않니? 뭐가 그리 바쁜지”라는 푸념 섞인 한 마디를 하셨는데. 내용과 달리 그 말엔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나도 마주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절뚝거린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친해졌다. 친해지는 데 필요한 공통분모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웃긴 이유로 친구를 사귄 것은 처음이긴 했다. 우리는 오르막길은 게처럼 옆으로 걸어 올라가고,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이 나오면 동시에 한숨을 쉬고, 평탄한 길이 보이면 함께 환호하며 즐겁게 그 낮은 언덕을 천천히 넘었다. 동행하는 동안 우리는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느려진 만큼 주변의 풍경을 더 자세히, 넓게 관찰할 수 있다. 카렌 할머니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게 많으셨는데, 이따금 걸음을 멈추시고는 식물을 조금 채집해 나에게 냄새를 맡고 손으로 문질러보게 하셨다. 초파리를 채집하고 씨앗에서 싹을 틔워보며 자연을 배우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새삼 자연이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에 얼마나 무심하게 지내왔는지를 상기하며 카렌의 착실한 일일 학생이 되었다. 아이 같은 기분이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카렌 선생님은 이미 알던 것들에도 새로운 경이를 찾아낸 것처럼 자신이 설명하는 것들을 더 신기해하며 말씀하셨다.


“이런 건 빠르게 가는 사람들은 절대 발견하 지 못하는 것들이야.

느리게 걸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지 않니?”


발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느림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느려진 속도로 길어진 시간만큼의 깊이가 여정에 더해지고 있었다.


한나절은 이어질 줄 알았던 오르막은 의외로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야트막한 꼭대기의 벤치에 앉으니, 올라온 방향의 반대편에서 빌바오의 전경이 보였다. 불과 일주일 만에 보는 도시의 풍경이 오래된 친구를 본 것처럼 반가웠다.


신기하게도 발목 상태에 속도를 맞춰 느리게 걷다 보니 언덕을 내려갈 때쯤엔 내 발목도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흙과 돌들이 마구 굴러다니는 내리막 비탈도 과감히 걸을 수 있게 된 내 모습을 보던 카렌은 ‘네 속도가 달라진 것을 보니 헤어질 때가 되었나 봐. 난 천천히 갈 테니 넌 네 속도로 가렴.’이라며 작별의 악수를 청하셨다. 그 손을 마주 잡은 후, 경쾌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도시를 맞았다.


별다른 조치 없이도 나은 발목으로 빌바오의 골목골목을 누비는 일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내일까지는 순례자로서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홀가분했다. 순례길을 찾은 것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나 내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일인데, 그것조차도 일상이 되면 휴가가 필요해진다는 게 우습긴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젤라또가게에 들어갔다. 젤라또를 들고 가게 바깥의 좌석에 앉아 숟가락을 놀리던 중 문득 어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내 옆으로 첫 일주일 동안 만났던 모든 친구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뱃삯을 대신 내주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던 영국인 크리스 아저씨와 틈만 나면 팝송을 합창하며 흥 많은 스페인 소녀들이 짓는 미소가 빌바오의 거리 풍경에 녹아들어 사진처럼 각인됐다. 나는 그들에게 화답하는 동시에, 막이 내려오는 내 순례길 여정의 첫 번째 단락을 향해서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짐을 갈무리한 나는 친구들이 사라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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