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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당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무게를 찾는 법

산티아고 북쪽길 & 고비사막 | 짊어져 봐야 내려놓을 수 있다

by 이끼레몬소르베

배낭여행은, 어쩌면 삶에 받아들일 물건들의 기준을 확립하는 여정이다. 평소에 메고 다니는 가방은 하루마다 내용물을 쉽게 넣고 뺄 수 있지만 장기 여행자의 배낭은 그 자체로 주인의 생활을 압축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특히 반드시 지녀야 하는 물건이나 생필품이 아닌 물건의 목록은 그 사람에 대해 잘 말해준다.


배낭 여행객들 사이에서 짐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좋은 이야기 소재다. 배낭만 봐도 그 주인의 성격이나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순례길에서 만난 어떤 한국분은 등 뒤의 큰 가방과 더불어 앞쪽으로도 뚱뚱한 책가방을 메고 계셨는데, 그 안에는 대용량 라면수프부터 멀티탭, 요가매트까지 웬만한 생활용품들이 다 들어있었다. 그만큼 다리에 무리도 자주 오고 속도도 느려졌지만, 그럴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는 “뭐 포기 못한 제가 감당해야죠”라며 의연하게 요가매트를 꺼내어 흙바닥에 놓고 스트레칭을 하곤 하셨다.

대학교 산악동아리의 한 선배는 음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데, 능선을 올라가 봉우리 몇 개를 넘어가는 힘든 산행 중간중간에 배낭에서 드립커피와 아이스티를 꺼내어 동료들에게 나눠주셨다. 한 번은 배낭에 설치한 아이스백에서 아이스 망고를 크게 한 봉지 꺼내기도 했는데, 그 순간 모두의 입에서 숨길 수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칸 여행에서는 2년이 넘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방문한 나라마다 배지를 모아 들고 다니는 미국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배지 파우치가 꽉 차버려서 최근에는 옷에 붙이는 패치로 종목을 바꿨다며, 여러 나라에서 산 패치가 바느질되어 있는 청자켓을 보여줬다. 어디에도 없는 하나뿐인 그 재킷은 입는 사람의 여정을 오롯이 담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미니 프로젝트는 나도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다.


내 경우에는 생필품을 챙긴 다음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기록하는 용도의 공책과 간단한 필기구들, 그리고 해드폰을 꼭 챙기는 편인데, 배낭여행을 몇 번 해보고 만든 맞춤형 목록이다. 이 목록을 만들기까지는 몇 차례의 실험이 필요했다.


순례길을 걸을 때 몇 리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 등판을 다 덮고 해드는 뒤통수에 닿는 정도 크기의 배낭을 멨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난 몸집에 비해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메는 축에 속했다. 배낭을 멘 채로 뛰어다니고 턱걸이도 할 정도로 체력이 넘치던 독일인 얀은 처음 만나던 날 나에게 “너 가방 너무 커! 왜 이렇게 큰걸 매고 왔어?”라며 짐은 가벼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10분 동안이나 이어가기도 했다. 처음 혼자 떠나보는 배낭여행에 장기여행이라 어떤 게 필요하고 필요 없는지를 잘 몰랐던 시절이어서 일단 재밌고 멋있어 보이는 건 다 챙겼다. 게다가 핸드폰 분실을 대비해 엄마가 쓰시던 공기계, 인스타그램이 뇌리에 박아 넣은 로망을 실현할 수채물감 세트에다가 순례길 직전 프랑스 여행에서 산 옷들까지 꾸역꾸역 밀어 넣고 다니다 보니 여유 공간도 거의 없었다. 배낭을 메는 순간부터 고역이었지만 특히 산길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만날 때면 죽을 맛이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만큼의 중량에 배낭의 무게가 더해지자 몇십 분 동안 바벨 스쿼트를 계속해서 하는 기분이었다. 승모근이 뭉치다 못해 납작해지는 듯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짐을 지고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등 뒤가 조금만 더 가벼웠더라면 더 빨리 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진짜 자주 했다. 아마 첫 주에 발목에 무리가 간 것도 어느 정도는 무거운 배낭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시 모를 여러 상황에 대비해 이것저것 챙겼지만 막상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잘 쓰던 물건들은 한정적이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공기계를 쓸 일이 없었고, 물감은 꺼내보지도 못했다. 하다못해 속을 꽉꽉 채운 필통 안에도 한 번도 쓰지 않은 볼펜들이 대다수였다. 여행 중 멋을 내고 싶을 때 입으려고 챙긴 펑퍼짐한 카디건은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 그동안 한 번도 안 입은 게 아까워서 꺼내 입었던 게 다였다. 걷는 중 배낭이 발걸음을 붙들어 맬 때마다 그 속에서 부피만 차지하는 여러 물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슬라이드 쇼처럼 끝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백패킹을 할 때는 손에 들린 작은 물건 하나도 피로감을 배로 주기 마련인데, 그 물건들은 배낭 속에서도, 머릿속에서도 끊임없이 내 체력 풍선을 바늘로 툭툭 건드려 힘이 빠지게 만드는 듯했다. 막상 당장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지는 못해서, 애초에 꼭 필요한 것만 챙겨야 한다는 것을 매일매일 온몸으로 깨우치고 있었다. 틈만 나면 들고 다니던 수첩에 ‘다음 배낭여행 때 챙길 짐 목록’ 같은 것들을 정리하며 깨달음을 복습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었다.


한편으로는 끝까지 꿋꿋하게 아무것도 안 버리고 무게를 짊어진 채로 완주한 덕에 한국에 돌아왔을 땐 체력이 단번에 비교가 될 정도로 좋아졌다. 중반쯤만 올라도 숨이 찼던 학교의 오르막도 끝까지 속도를 유지하면서 오를 수 있게 됐다.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반가웠지만 어깨를 물론 온몸의 근육을 저릿하게 하는 배낭의 무게는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평소 학교나 카페 등을 갈 때는 보부상처럼 노트북과 아이패드부터 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 다니는 보부상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지만, 짧게 여행을 가거나 할 때는 최대한 평소 들고 다니는 책가방 하나에 모든 짐을 챙기려고 했다. 장기여행을 한 번 해보니 꼭 필요한 것과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을 더 쉽게 분류할 수 있게 됐다. 정확히는 더 잘 포기할 수 있게 됐다. 4박 5일 정도의 짧은 해외여행에도, 친구들과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갈 때도 항상 들고 다니는 책가방 하나면 충분했다. 심지어 겨울 여행에서도 가방의 크기를 키우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 가짓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세면도구는 올인원으로 간소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많은 것들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만하면 짐을 미니멀하게 잘 싸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스스로 여겼다.


하지만 짐을 잘 싸는 것과 준비성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작년 고비사막 마라톤을 할 때는 출국이 일주일가량 남았을 때부터 부랴부랴 필수 장비들을 쿠팡과 네이버 쇼핑으로 되는대로 주문해 가며 급하게 짐을 쌌다. 대회에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구비할 수 있었지만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디테일에서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직접 식량을 포함한 모든 짐을 지닌 채 달려야 하는 대회인 만큼 모든 장비들을 경량화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난 차를 이끌고 느긋하게 하룻밤 캠핑을 떠나온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필수 장비 중 하나인 맥가이버 칼조차 텐트메이트들이 가져온 것들에 비해 거의 두 배 크기인 것을 본 텐트메이트 리사 아주머니는 “넌 여기 사냥하러 왔냐?”라며 농담을 던졌다.


20240628_064145.heic 다른 참가자들과 내 짐의 차이를 한번에 나타내는 사진이다


내 장비는 그들의 눈에 보일 때마다 애정 어린 질타와 오지랖의 대상이 되었다.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들 자체가 웃음기 담긴 대화로 이어지곤 해서 싫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들을 소유하려는 마음이 사라져 식량으로 들고 다니던 건망고나 육포 같은 것도 다른 참가자들이 보이면 나눠주곤 했는데,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찰나에 그 망고가 너무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을 땐 많이 챙겨 온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텐트 바깥에서도 대회 참가자 중 배낭 무거운 애로 유명해지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특히 부피가 커서 배낭 뒤편에 달고 다니던 동계 침낭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어서 “침낭만 더 가벼운 걸 썼어도 훨씬 가벼웠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하지만 사막의 얼어붙는 밤마다 추위에 뒤척이던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난 그 침낭 덕에 너무도 아늑하게 꿀잠을 자서 전혀 후회 없다. 마지막날에는 침낭이 너무 아늑해서 텐트 생활이 끝나간다는 것이 아쉽기까지 했다. 물론 마라톤이 진행되는 낮시간동안 무거운 짐들은 작렬하는 몽골 초원의 태양과 더불어 날 힘들게 했고, 날이 갈수록 식량이 줄어든 만큼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도 실감 나게 느끼진 못했지만, 완주했을 때의 뿌듯함은 버텨온 무게만큼이나 컸다. 짐을 무조건 가볍게 하는 것만이 더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날들이었다. 비록 기록은 좀 뒤쳐지졌지만 가벼웠으면 얻지 못했을 이야깃거리와 추억들을 더 쌓아왔다.


두 번이나 짐 조절에 실패했던 시행착오들 덕분에 최근 두 달간의 발칸 여행에서는 짐을 32리터 가방과 슬링백 하나에 다 들어갈 만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20250430_080729.heic 두달동안의 발칸 여행을 떠날 때 짐의 양


짐이 많아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짐의 무게에 짓눌리고 휘청거려 봐야 비로소 그것을 감당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덜어낼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의 적정선을 찾아서 나에게 최적화된 배낭을 꾸릴 수 있었다. 호스텔을 옮겨 다니거나 숙소에서 짐을 정리할 때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줄어든 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었고, 이동 중 어깨가 좀 무겁게 느껴져도 배낭에 든 것들이 꼭 필요한 것들 뿐이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거추장스럽거나 버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낭이 너무 작아 기념품을 살 때 제약이 있었던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여행이 끝나고도 시간이 꽤 흐른 이 시점에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낭 속 짐처럼 공간에 쌓인 짐도 때때로 삶의 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내 방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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