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장>

'혁명'이라는 두 글자에 담기지 못한 거대한 비극

by 황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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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문학동네, 2025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주 접하는 단어들이 있다. 혁명, 개혁, 구체제 전복, 신질서 수립 등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 이 단어들은 현실을 추상화하고 개념화해 시대와 지역마다 서로 달랐을 사건들을 한 범주 아래에 넣는다. 추상적 개념어에는 인간의 다양하고 직접적인 경험은 담겨 있지 않다.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는 지워진다. 추상적 개념어로 지칭되는 사건은 마치 인간과는 무관하게, 인간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채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저 혁명이 일어났고 구체제가 전복되었으며 새로운 체제가 수립되었을 뿐이다. 이 간단한 서술 어디에서도 이 사건들을 겪었던 사람들의 경험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어떤 규범과 질서가 당연했던 체제가 혁명으로 붕괴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되어 과거 규범과 질서가 부정될 때, 구체제의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모든 기반이 무너지는 엄청난 충격을 경험한다. 분노, 박해, 탄압, 배척, 숙청, 처벌, 척결, 제거 대상이 된다. 과거의 삶 그 자체가 죄목이 되어 삶을 살았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어떻게든 그 격랑을 살아남은 사람에게 과거는 단죄의 근거일 뿐이다. 무자비한 박해와 탄압을 경험한 사람에게 과거는 그저 상처와 고통의 원천일 뿐이다.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망각 아래에 묻어야 한다.


혁명은 어떤 체제의 억압자와 피억압자 사이의 위계를 전복하는 것이기에, 혁명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엄밀히 구별되지 않는다. 구체제의 부조리 위에서 특권을 누렸다는 점에서 혁명의 피해자는 구체제의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지만, 구체제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는 신체제의 폭력성에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피해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혁명' 두 글자 아래에 감춰지고 망각된 사건들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쉽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더 비극적이다. 무고한 피해자라는 보호막 뒤에 숨을 수도 없다는 인식은 과거를 더 고통스러운 것으로, 그러니 반드시 망각해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


팡팡은 그렇게 혁명이라는 단어 아래에 연매장되었던 개인의 삶을 파헤친다. 땅을 팔 때 겉면부터 파듯이,『연매장』은 한 사람의 역사를 가장 가까운 과거부터 파 들어간다. 그렇게 파고 들어가 다다른 가장 깊은 곳에는 충격적이고 비참한 과거가 묻혀 있었다. 도저히 멀쩡한 정신으로는 직면할 수 없는, 삶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이 묻혀 있었다. 다시 기억되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 묻혀 있었다. 소설은 묻는다. 이런데도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호기로운 선언이 과연 항상 옳고 정당하냐고. 유디트 샬란스키가 "모든 것을 잊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듯이(『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17쪽), 어떤 '진실'은 차라리 잊히는 편이 낫다.


장례는 죽은 자보다 산 자를 위한 것이다. 산 자는 죽은 자에게 충분한 예를 갖춤으로써 애도하고,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이별을 받아들이고 죽은 자가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준비한다. 그러나 연매장은 합당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죽은 자를 묻는 것이다.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별은 산 자에게 평생을 괴롭히는 죄책감을 남긴다.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를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거를 망각하려 해도, 과거가 남긴 상처는 생생하게 현존하는 실체다. 과거를 망각하려고 한다는 것은 곧 과거가 망각을 바랄 정도로 끔찍했음을 가리킬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언어가 얼마나 빈약하고 부족한가. 수많은 삶이 짓이개지고 망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 망각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을 그저 '혁명'이라고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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