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자서전>

외계인도 지구인도 모두 외롭다

by 황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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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김지원 옮김, 은행나무, 2025


『외계인 자서전 』의 주인공 아디나는 지구인을 조사할 사명을 띠고 파견된 외계인이다. 성장한 채로 파견된 것은 아니다. 아디나는 지구인 여성에게서 평범한 인간 아기처럼 태어나 지구인 아이와 지구인 청소년을 거쳐 지구인 성인처럼 살아간다. 초록색 피부에 눈이나 팔, 다리가 여러 개 달리거나 촉수가 붙어 있지도 않다. 완전히 지구인과 같은 모습이다. 아디나가 인간과 다른 점은 딱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팩스 기계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사'들과 소통하며, 때때로 꿈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사들을 만나 소통한다는 것뿐이다.


아디나는 지구인에게서 태어나 지구인 사이에서 자라났기에 지구인과 무언가 파격적으로 다르지 않다. 지구인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아디나는 도대체 왜 지구인은 영화관에서 조용히 있을 것을 요구하며 정작 지구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음식인 팝콘을 먹는 것인지 의아해한다), 전반적으로 지구인 사회에서 큰 문제없이 지낸다. 지구인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고 어쩌다가 친구가 되기도 하며 일자리도 구하고 연애도 한다. 그러나 아디나는 외롭다.


아디나가 단순히 외계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디나는 지구인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외롭다. 수십 억에 달하는 같은 종과 같이 살고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인으로 사는 것 자체가 외롭고 고달픈 일이기 때문이다.


아디나가 상사들에게 전하는 지구라는 곳은 전반적으로는 그럭저럭 살만해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가지지 못한 자, 주류에 끼지 못하고 가장자리에 머무르는 자, 여성 등 약자에게는 다양하게 미시적 폭력이 작동하는 곳이다. 기회가 마치 파이처럼 크기가 제한되어 있어 누군가 가진다면 다른 누군가는 가지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기회라는 파이를 가진 사람은 아닌 척하며 자신이 가진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는 곳이다. 삐걱거리는 바퀴처럼 불평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전부 얻는 곳이다. 조용히 참으며 인내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곳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의 리스트를 읊으며 마치 자신도 가난한 척하는 곳이다. 남성의 자아가 폭주하며 위협하는 곳이다. 오노 요코라는 여자만 아니었다면 비틀즈가 더 많은 앨범을 냈을 것이라는 등의 잡담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며 "유일무이하고 섬세한 몸들이 매일같이 상처받고"(319쪽) 있는 곳이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따위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실상은 말을 사람을 위한 것인 진부한 위로를 쏟아내며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모욕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403쪽). 많은 지구인은 깊은 슬픔을 품고 달랠 길 없는 외로움과 고독함에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기에. 시끄럽게 불평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마리-헐린 버티노가 아디나를 통해 전달하는 비판은 그렇게 독창적이거나 참신하지만은 않다. 굳이 먼 우주에서 아디나라는 외계인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지구인이라도 느껴보고 알 법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은 어떤 행동이나 대응을 촉구하는 강한 외침이 아니라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 개개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들여다보기 위한 방법이다. 소설은 통렬한 비판보다 대체 어떻게 하루를 견뎌내는지 알 수 없는, 보잘것없고 나약하고 연약한 몸을 태어난 사람들(330쪽)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날 선 비판을 드러내는 대신 소설은 아디나만큼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홀로 됨에 서글퍼해 본 사람에게 말을 건다. "당신이 외롭다고 느낀다면, 정말 외로운 거예요. 제가 그 어두운 곳에 당신과 함께 있어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404쪽) 이 외로움을 통렬히 깨달으려면 외계인이어만 한다.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주위에 얼마나 많은 지구인(이든 무엇이든)이 있는가가 아니라,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존재가 얼마나 있느냐이므로. 많은 지구인은 자신과 같은 호모사피엔스종에 속하는 생명체 수십 억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누군가를 찾지 못해 외롭다. 외계인 아디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구는 은하계의 너무나 변방에 처박힌, 아무도 찾지 않는 행성이기에 전우주적으로는 극히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지구에 관한 정보는 딱 한 단어, "무해함" 뿐이다. 그나마도 정보가 '개정'된 이후에는 "대체로 무해함"으로 평가가 하락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우리가 사는 사회가 '대체로' 무해하기라도 할까. '대체로'라는 부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지키고 있을까. 이 행성 위에서 지구인으로 태어났어도 외계인과 다를 바 없이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이 많은 행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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