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하는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민음사, 2023
공유된 고립이라는 역설
우리 모두 죽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고독사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미래는 예단할 수 없다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앞으로도 이런 삶이 큰 변동 없이 이어진다고 가정할 때, 나는 매우 높은 확률로 고독사할 것이다.
고독사할 운명은 피할 수 없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고독사하는 과정이다. 보다 건강하게(?) 고독사에 이를 방법을 고민하고 단련하고 선택할 수는 있다.『고독사 워크숍』의 등장인물들이 그렇듯이.
고독사를 예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살아생전에 이미 고독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을 두려워하고 견디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우리의 가족과 이웃에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다(26쪽). 연락을 끊고 침잠하면 관계망에서 단절되어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어딘가에 연결되고 어딘가에 내 자리를 확보하고 나의 쓰임을 인정받아 관계망 내부에 존재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립되지 않으려 하다 보니 깨닫고 인지하지 못할 뿐, 사실 우리가 "잠시 멈추고 증발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아닐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가능한 인간"(26쪽) 아닐까? 사람과의 연결망에서 경험하곤 하는 온갖 부정적 감정과 경험, 따돌림, 가학, 폭력, 조롱 등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관계의 시도가 실패하고 상처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고립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억지 연결보다는 차라리 고립을 건강하게 견뎌내는 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고독사 워크숍을 기획한 조 부장은 사람들에게 고립을 느끼게 함으로써 고립을 단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 증발하더라도 누구도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자신의 삶을 시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떠날 때가 되면 홀연히 가뿐하게 떠날 수 있도록.
역설적이게도 고독사 워크숍의 인물들은 고립되어 있되 고립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고독사 워크숍이라는 플랫폼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시시한 일상을 공유하며, 상대의 시시한 일상을 지켜보며. 분명히 치이고 쫓겨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고독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읽다 보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누군가의 시시한 짓거리에 기꺼이 동참하며 같이 시시한 짓거리를 한다.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연대('고독사'라는 개념과 같이 쓰일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랄까. 조 부장의 말대로 이들 사이에는 "공유된 고립"이라는 역설적 상태가 존재한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은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고독사 워크숍 참여가 그들에게 자신들의 고립을 되돌아보고 마주하고 받아들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그대로 남겨 두었더라면 속을 파먹어가며 마음을 망가뜨렸을 상처와 고립감과 고독을 근원까지 파고 들어가고, 자괴감과 자조와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대신에 냉철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샅샅이 파헤치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이 겪은 피해만큼이나 자신이 가한 피해도 응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엄청난 용기 앞에서 고립감과 고독이 역설적이게도 고독사하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삶을 이어갈 동력이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느꼈던 모순의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고독한 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되 그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결말은 결말이고, 과정은 과정인 것이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이다.
고독사하는 아름다운 삶
끝이 정해져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어차피 뭘 해도 끝은 바뀌지 않을 테니 자포자기하는 것, 또는 어차피 뭘 해도 끝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삶의 부담은 조금 내려놓고 아무리 사소하나마 지금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것. 『고독사 워크숍』의 인물들은 후자를 택한다. 그들은 고독사하는 삶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삶의 끝에 남는 건 고독사뿐"이라 하더라도 좌절하는 대신에 "더 많은 기쁨과 더 많은 행복한 춤"(227쪽)을 선택한다. 고독하게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어떤 열망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라고 믿는다(255쪽).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와 내일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다 포함"하는 "대체로 나아지고 있다"라는 말에 의지해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256쪽). 과거에 대한 후회, 회한, 슬픔에 몸부림치며 고독사하더라도 "우리가 만들어 놓은 슬픔을 지우기 위해 더 오래 애써 살아" 내기로 다짐한다(284쪽). 그들에게 고독사하는 삶은 역설적이게도 "회복해 가는 과정"(318쪽)이다. 포기가 만들어내는 의지가 소설 곳곳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외롭고 상처 입은 인물들의 이야기임에도 소설 전체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의 서술은 다소 난잡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의 심리나 상태를 이해하기 어렵다(공감하기 어렵다기보다는, 정말 무슨 상태이고 무슨 감정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고 아리송한 서술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기대하지 않게 내게 위안이 되었다. 외로움과 고독도 잔잔한 행복과 평온과 공존할 수 있다. 나는 고독사하겠지만, 고독사하기 전의 삶도 충만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도,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