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것이 어찌 이리 서글플까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창비, 2021.
이 소설은 참 모르겠다. 이번이 두 번째 읽는 것인데, 여전히 모르겠다. 한 2년 전인가에 어느 지방에서 올라오던 기차에서 처음 읽고 나서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는데, 이제 두 번째 읽은 뒤에도 가슴에 무언가 얹힌 듯한 기분이 든다.
지리적으로는 서울에 접해있지만 수도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곳에 살던 고등학생 친구들이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서로 떨어져 살면서도 우정을 이어가는 이야기인데 왜 읽을 때마다 서글픈 감정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려오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에 비극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나기는 하고 그 사건이 큰 무게감을 가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전체를 잠식하는 것도 아닌데, 어떤 거대하고 막막한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갈등과 위기에 짓눌려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나'와 친구들의 전반적으로 평범한 삶을 엮어 만든 이야기일 뿐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서글픈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독자가 원망하고 정세랑도 인정했듯이 이 소설은 '아픈 이야기'다. 인물들 중 누구도 아프다고 절절하게 호소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다 읽고 나면 독자는 아프다. 읽는 내내 외딴 교외, 예를 들자면 파주의 어느 황야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맞는 느낌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흘러가는 이야기 아래에 서글픔과 쓸쓸함이 짙게 깔려 있다.
중반부에 말 그대로 소설에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일어나고 이후 전개에도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이끌어가는 크고 일관된 줄거리는 없다. 다양한 시간대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겪고 느끼는 소소하거나 때로는 중대한 사건과 느낌과 감정과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소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닮은 얼굴 뒤의 거의 다르지 않을 이야기들"을 말한다(123쪽).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기쁨, 그와 함께 하는 쓸쓸함, 그리움, 떠나보냄, 외로움, 환멸, 아쉬움, 슬픔을, 살아가는 내내 이만큼 가까이 있는 그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고 이토록 서글픈 감정이 든 것이겠구나. 여기, 기쁜 순간만큼이나 서글픈 때도 이만큼 가까이 네 곁에 있다고 말하는 소설을 읽었으니. 그것도 두 번이나.
소설 속 인물들은 기쁜 순간에도 기쁨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움부터 느낀다. 언제든 불운이 습격할 것을 알고 헤어질 것을 알고 사라질 것을 알고 소중했던 것과 멀어질 것을 알기에 담담해져 버렸다. 이미 담담해졌기에 크게 슬퍼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상실감 때문에 몸부림치지도 않고 그리움 때문에 무너지지도 않는다. "이른 포기의 달콤한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지"(226쪽) 않은 채 또 나름 잘 살아간다.
소설은 인간이 잘못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소중한 것을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225쪽). 하지만 그런 말을 한 인물도 다른 등장인물들도 설계 상의 결함을 이겨내고 살아간다. 또는 삶이 살아진다. 이만큼 가까이 있던 것들을 잃고 상실해도 살아진다.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사실 소설을 읽으며 내 무의식이 직감한 것은 아닐까. 소설 속 친구들은 서로라는 버팀목이라도 있지만, 내게는 그마저도 없을 것이라고. 소설보다 무겁고 진한 서글픔과 쓸쓸함과 외로움이라는 현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무의식이 고개를 내밀어 말한다. "내가 끝내 다다를 결말 역시 불운"(130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언젠가는 완전한 침묵과 철저한 외로움이 찾아올 것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준비하고 있다지만, 무의식은 속일 수 없다. 그렇다. 나는 그때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렇게만 써 놓으면 너무나 무겁고 우울한 소설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세랑이라는 작가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서글픔을 삶의 소소한 기쁨과 잘 버무려서 그리 우울하지 않게 쓰는 데 탁월한 작가다. 하긴 실제 삶이 그러할 것이다. 서글프고 우울하고 외롭고 쓸쓸한 순간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니까. 중간중간 쉬어가듯이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도 있으니까. 그래서 사실 막상 읽다 보면 막 그렇게 우울해지고 그러진 않는다. 다른 상황, 다른 마음가짐에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어떤 감상을 가지게 될까.
아무튼, 두렵다고 한들 달리 방도가 없다. 잘못 설계된 존재로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 기쁜 순간에도 그리움부터 느끼는 종자로 태어났으니 별 수 없다. 이만큼 가까이 와 있는 서글픔과 쓸쓸함을 껴안고 함께 살아가야지. 아직 이 삶에는 견뎌내야 할 긴 밤이 수없이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