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짚어준 국어다운 수업의 가치

by 가장귀해하고

007 시리즈가 스파이라는 직업을 음침하고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자신감 넘치고 관능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듯이, 흑백요리사 시리즈는 요리사의 모습에 마치 스포츠 스타처럼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덕분에 나도 그간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았던 요리사의 숨은 노력과 직업 환경에 대한 여러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 그런데 요식업계를 찾다 보니, 의외로 국어 교사의 길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백 요리사와 흑 요리사


흑백요리사에는 두 가지 요리사의 모습이 나온다. 우선 백은 요리 분야에서 오랜 기간 수련하고, 치열한 업계에서 살아남아 화려한 매력을 뽐내는 쉐프들이다. 파인 다이닝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식당은 한 끼에 수십 만원을 호가하지만, 사람들은 가고 싶어 아우성이다. 신선한 재료, 기예에 가까운 조리, 예술적 감각을 갖춘 모양과 공간 자체의 멋진 분위기 페어링까지 총체적인 미학 경험을 제공하는 일종의 우아한 테마파크 설계자가 된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은 그런 파인 레스토랑도 폐업률이 높다는 점이다. 가격이 높더라도 워낙 들이는 공이 많다 보니 마진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흑이다. 백이 파인 다이닝이라면, 흑은 프랜차이즈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어떤 표준화된 공정을 개발하여 가맹점에 보급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요식업 프랜차이즈를 성인 메가스터디에 비유하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요리 전공자도 있겠지만, 퇴직 후 제2의 직업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요식업 기업들은 경력자든 일반인이든 단기간 내에 일정한 수준에 균등하게 도달시켜서, 고객들이 일상 속 한 끼를 괜찮게 채울 수 있게 만든다. 물론 흑백요리사 시리즈에서는 요리사 개인의 서사와 실력을 더 조명하기에, 이런 부류의 노력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백 국어교사와 흑 국어교사


교과 교사도 창작 욕구를 가지고 자신만의 수업을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교사로서의 정체성에서 교과는 생각보다 비중이 크다. 전직이나 전과할 때 더 나은 조건과 대우가 있어도 고민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일종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에 나 역시 패기 만만하던 시절에는 내 수업은 다를 거라는, 근거 없는 인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다른 과목과 통합 수업을 꾸려보고, 주어진 교과서 대신 믹스테이프마냥 모은 지문들로 재구성도 해봤다. 단순한 내용 정리를 벗어나, 종합적인 형태의 경험을 제공해보고 싶었다. 수행평가로 낸 과제에 주몽신화에서 밟고 지나간 물고기(어별지교)라고 하며 학생이 냉동생선을 들고 왔을 때에는 교무실 냉장고에 넣어두며 내심 흡족했었다. 하지만 이는 동료 교사나 학생에게 재미있는 접근, 특이한 시도 정도로만 받아들여지고, 그다지 큰 반향은 못 일으켜 살짝 시무룩하곤 했다.


현실에는 거의 모든 교사가 시험이라는 강력한 말뚝에 밧줄로 매어 있다. 날아가는 새는 못 떨어뜨려도, 비행기는 못 내리게 할 수 있는 수능은 학교 현장 전반에 그늘을 드리운다. 수업과 평가의 대부분이 수능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고 나도 항상 염두에 두지만, 동시에 너무 시험 일변도로 준비하는 것에는 반발심을 느낀다. 한번은 국가 단위 시험 출제에 재검토위원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작년 수험생 출신의 다른 재검토위원들과 하루 종일 토론하다가 깨달았다. 이들에게는 화자의 의도고 문학적 맥락이고를 떠나, 기계적인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20문제를 20분 안에 풀어야 하니 다른 도리가 없다. 게다가 수능과 달리 교육과정도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니, 학원 강사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수험생들에게 문학과 언어의 정수가 어떻고 하는 얘기는 공염불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직장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새로운 도전을 위해 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투박한 이해와 설명이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오겨냥


국어교사로서 지향해 온 길이 백의 신념이라면, 학생, 학부모를 비롯해 현장에서 더 많이 원하고 인정해주는 건 흑의 효능이다. 사실 요리 쪽도 보통은 돈을 더 많이 버는 건 흑이긴 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니 당연하겠다. 유명 쉐프들의 집이 생각보다 소박한 것도 그런 세상 이치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혼동했던 듯하다. ‘백’스럽게 들인 시간과 노력이 별로 빛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 있었다. 애초에 흥행을 바라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 투입하고 보니 성과와 보상이 없다는 허무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걸 바랄 거라면 차라리 헌신적으로 ‘흑’을 지향했어야 했다. ‘백’스럽게 공들이면서 만족이 남기를, 아니면 허무하지 않기를 바란 건 일종의 오(誤)겨냥이었던 걸까.


숱한 폐업에도 파인 다이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로 많은 요리사들이 자아실현을 꼽는다. 남들에게도 보이지 않을 미세한 실수를 줄이고, 여러 층위를 쌓아 미각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싶은 자신만의 목표가 있어 계속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문학, 언어, 쓰기와 말하기에서 경험한 것들을 내 식으로 표현했으니 그것도 상당한 자아실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것일 수도 있고 가끔은 초라해질 때도 있지만, 내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는 길과 자아실현이라는 목적지가 일치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다.


더구나 흑백요리사 시즌2 마지막 화에서 많은 쉐프들이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그거에 비하면 국어 수업은 비교적 자기만족도 되는 듯하다. 내가 원하는 글도 찾아보고, 괜찮은 작품도 골라볼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수업한 내용에 내가 변하기도 한다. 가령, 가전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글을 수업하다 감동 받아서 가전을 마음껏 지르기도 했다.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지만, 내가 길을 되찾기도 하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값진 일이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소명을 다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도 호젓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시는 분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백석의 시에 싣는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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