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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마미 Mar 11. 2016

아이가 아프다. 나는 나쁘다.

죄책감만 가득한 이 시대 엄마들을 위하여

"콜록 콜록"


큰아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요근래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그동안 동생이랑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신나게 밖에 나다니더니 결국 몸이 표시를 내기 시작했다.


"나 밖에 나가서 놀다올게."

"그런데 밖에 바람 심하게 불어."

"괜찮아. 따뜻하게 입고 나가면 되잖아."


바람 탓을 대고 나가 놀지 못하게 집에 묶어 놓으면 뻗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아이들이기에 마지못해 허락은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크로 몸단도리를 시켰다. 놀다보면 다 벗어던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싫어. 이거 하고 놀면 귀찮아."


혹여 아이가 감기에라도 걸릴까봐, 아프면 힘들어하니까, 아이를 위해서 걸어준 마스크라 생각했다. 막상 눈만 빼곰이 내놓고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를 보니 내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안심이 됐다. 따지고 보면 엄마인 나를 위해서 아이를 단도리 시킨거였다.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맞추면 감기에 걸릴 확률이 낮아질테고 아이가 건강해야 내 마음도 편안할테니...나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낮춰보고 싶었나보다.


내가 어릴적에 아파서 누워있을 때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으이그, 어째 느그들은 어매인 날 닮아서 이리들 약골이다냐!"


엄마는 슬하에 다섯 자식이 감기를 한 번씩만 걸려도 다섯번 간호를 해야했다.  한지붕 아래에 열 세식구 살림살이를 도맡아하시며 특히 터울이 크지 않은 언니와 내가 어렸을적부터 쌍둥이처럼 감기도 동시에 앓아서 더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약골 몸을 물려준 자신의 탓을 하셨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느그들 아프지좀 마야. 느그들 아프믄 어매인 내가 너무 성가시다." 고도 하셨다.


'성가시다'


좀 더 크고 나서는,  내가 아프면 엄마에게 성가신 존재가 된다는 생각에 서글프기 시작했다. '튼튼한 몸을 물려주시지. 타고 나기를 약골 몸으로 태어났는데 안 아플수가 있을까'하고 불평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바쁘고 힘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지는 못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내 곁에 엄마가 잠깐이라도 다녀가시면 죄인된 마음으로 있었다.바쁜 엄마 시간을 내가 빼앗는 것 같아서...


좀 더 컸을 때에는 생리통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엄마는,

 

"아는 병이니께 너무 걱정하덜 마라. 그래서 여자몸은 항시 따땃하게 해야 써. 앞으로 내몸을 보해야겠다 생각하믄서 지혜롭게 넘기믄 쓴다. 아러째. 잉?"


아이가 아파서 누워있을 때마다 나는 어릴 적 엄마 목소리가 자주 생각이 난다. 어떤 때는 약골인 내 몸을 물려주어서 한없이 미안해지는 마음에 죄책감 한다발을 무겁게 안고 지낼 때도 있다.


잘 챙겨주지 못한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 같을 때, 내가 칠칠맞은 엄마같을 때, 나는 못난 엄마가 된다.


어떨 때는 바쁜 내시간을 아이가 빼앗는 것 같아서 '성가시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영락 없이 나쁜 엄마다.


하지만 엄마노릇 십 년차를 넘어서면서 아픈 자식을 내려다보던 친정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식들에게 튼튼한 몸을 물려주지 못한 미안함에 '어매 닮은 약골'이라는 표현을 쓰셨을거다.


집안 살림과 시집살이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 아픈 내 아이에게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대신해서 '어매가 성가시다'는 말씀을 하신게 아닐까...


"우리애기, 아프고 많이 힘들지? 엄마가 곁에서 지켜줄게. 얼른 나아라. 쎄에~"


어릴 적 내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그 따스한 말을 나는 이미 충분히 받고 자랐음을 내 아이를 키우며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가 아픈 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이 세상에 아무 의미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장갑을 끼고 나갔을지라도 아이는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씨에 밖에서 하루종일 알몸으로 놀았을지라도 아프지 않을 아이는 아무탈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아이가 아프다면, 단지 아이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찾아온 '신의 손길'이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가슴이 한결 가볍다...죄책감을 덜어낸 탓이리라..


바야흐로 3월이다.

많은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을지도 모르겠다. 안 다니던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감기를 달고 생활할 수도 있겠고, 새학년 새교실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과 탐색전 중에 티격태격 다툼이 일어나서 마음이 아플수도 있을거다.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학원 몇 군데를 순회하며 해가 뉘엿뉘엿 질 때즘 무거운 어깨로 집으로 귀가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아파하게 될 일이 생기면, 그 땐 내 감정부터 먼저 추스려야겠다. 아이가 아픈 건  절대 엄마가 나빠서 그런게 아니니까.


내 감정을 먼저 추스리고 아이를 도와줘야겠다. 아픈 아이는 엄마의 훈계가 아니라 친절한 도움이 필요한거니까...


아침에 멸치육수 진하게 내서 콩나물 국을 끓였다. 매콤한 거 좋아라하는 큰아이가 고추장이라도 풀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이번 감기도 얼른 털고 일어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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