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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마미 Mar 08. 2016

엄마,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과일 꼭지를 먹는 사람은 따로 없다.

"엄마, 그걸 왜 엄마가 먹고 있어요?"


아이들이 밥을 먹고나서 한 조각씩 먹으라고 배를 깎았다. 접시에 담아 식탁위에 올려두고 남은 과일 꼭지를 먹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들고 식탁 의자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왜 유독 엄마만 그것을 먹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되물었다.


"왜 먹고 싶어?"

"아니, 왜 맨날 엄마는 여기 접시 위에 놓인건 두고 그걸 먼저 먹는지 궁금해서"


따로 이유는 없었다.

다만 꼭지에 남은 과육이 아까웠을 뿐이고, 그 부분을 칼로 깎아서 내놓더라도 볼품이 없어서 가족들 중 누가 집어 먹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아니면 누가 꼼꼼이 과육을 발라서 먹을까도 싶었다.

딱히 엄마인 나 말고는...


내가 어릴 적에도 그랬다.

엄마는 항상 가족들을 위해서 음식을 맛있고 먹기 좋게 차려놓으신 다음 볼품없고 맛도 적은 부분을 드시곤 했다. 게다가 양도 형편 없었다.


그 때 그 시절에 나도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는 이거 안 드세요?"


그럴때마다 돌아오는 말씀은 한결같았다.


"응. 엄마는 음식 만들면서 미리 먹었다."

"엄마는 배가 부르니께 니들 먼저 먹어라."


당시 엄마는 결코 많이 드셔서 배가 부르지도, 미리 충분히 드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다만 다섯 자식들이 맛있게,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기에 본인의 시장기는 우선순위에서 내몰았던 것이었다.


식욕,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본성도 엄마의 사랑 앞에서는 잊혀진다는 것을 엄마가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뱃 속에 아이가 찾아왔을 때부터 하는 '태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하는 등의 태교는 '교(가르칠 교)'가 아니라 '애(사랑 애)'인 셈이다.


'사랑'


크고 맛있는 것을 보면 아이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예쁜 옷을 보면 내 아이에게 입히고 싶고,  아들, 딸 또래의 아이들이 지나가면 한 번 쳐다보고 씨익 웃게 되는 마음...엄마의 마음.


"다음번에 배 깎으실 때 남은 꼭지는 엄마가 먹지 말고 여기 접시에 같이 올려놔요. 나라도 먹을게. 꼭이요. 알았지?"


이제 갓 10살을 넘긴 딸아이 앞에서  순간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 깊이 찡한 감동을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럴게. 고마워."


과일꼭지를 씹으며 오늘도 나는 우리엄마의 사랑을 삼켰고, 내 아이의 사랑을 느꼈다. 그날 따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배가 유난히 더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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