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해주신 집밥을 떠올리며...
"엄마, 맛있는 거 해줘."
밥 때가 돌아오면 으레 아이들은 내게 이런 주문을 한다.
'맛있는 거'라...
한창 크는 시기인지 요즘 우리 아이들이 밥을 막 먹고 돌아서서 배가 고프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고보니 어린시절 나도 엄마한테 똑같은 말을 했었다. 엄마가 시장에 장보러 가시면 현관 문 앞에 서서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외쳤다.
"엄마, 맛있는 거 사오세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서도 현관 문앞에서서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엄마, 맛있는 거 집에 있어요?"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체 그 맛있는 게 뭐다냐?"
딱히, "무얼 사 주세요."라고 콕 찍어 말할 수 없었던 나의 그 허기진 뱃 속이 원했던 맛있는 것의 정체는 간단했다. 실상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입에 넣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 무엇'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자주 만나게 된다.
양팔 무겁게 장을 보고 돌아오신 엄마보다 나는 장바구니가 더 반가웠다.
"느그들이 말하는 그 맛있는 게 뭔지 모르겄다만 한 번 봐봐라. 있는가."
장바구니의 바닥까지 샅샅이 살펴도 달달한거라곤 달콤한 제철과일들 뿐이었다.
과자봉지를 기대했던 우리들은 실망감과 함께 과일조각을 입에 넣으며 우적우적 씹을 수 밖에 없었다. 입에 맞는 간식을 먹지는 못한 우리는 안타까움을 달래며 또다시 엄마한테 주문을 넣었다.
"엄마, 맛있는 거 만들어주세요."
"아러따!"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져나오고 도마위에서 칼질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가스렌지 위에 얹혀진 후라이팬에서 '치익'하고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또다시 기대감에 푸풀었다.
'아, 맛있는거다!'
과거 그 시절, 장에 가실 때마다 엄마는 슬하의 다섯 자식들을 생각하며 자식들 입에 맛난 걸 넣어주고픈 마음이 간절하셨을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시절 내 어머니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이런 게 철이 들어가는 걸까.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그 '맛있는 거'를 내놓아야하는 엄마가 되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맡겨둔 것도 없으면서 당당하게 맛있는 것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하는 나의 아가들...
20년 전에 내가 찾았던 맛있는 그 무언가는 지금의 나의 아이들이 찾는 것과 동일한 품목은 아닐 것이다. 세월이 흘렀고 세대가 다르니 입맛도 변했을테니까...하지만 엄마와 나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까지 이어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맛있는 사랑...
오늘도 나는 맛있는 사랑을 요리한다. 추억을 요리한다. 이제 나는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