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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마미 Mar 17. 2016

엄마마음이 되기 까지

엄마와 아이의 감정이 건강하게 만나야 한다

"엄마! 어제 내가 준 가정통신문 어딨어?"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갈 준비를 하다말고 큰아이가 내게 물었다. 어제 학교에서 나눠준 통신문을 찾는 모양이다. 청소년단체 가입 신청서를 말하는 것 같았다. 걸스카웃을 해보고 싶다길래,


"아빠 퇴근하시면 의논해 볼테니 잘 놔둬."했었다.


그러자 아이는 들뜬 기분으로 통신문을 집안 이리저리 가지고 돌아다니더니 결국 어딘가에 뒀는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엄마탓이야! 엄마 때문이야!  아빠랑 상의해 본다고 해서 어제 내가 줬잖아!"


아이는 학교갈 시간이 가까워오자 나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엄마탓이라면서 내게 책임을 떠넘다.


"오늘까지 내는거면 어떡해! 나는 걸스카웃 못하게 되잖아. 흑흑흑..."


결국에 딸아이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계속해서 엄마탓이라고 했다. 이미 아이는 감정의 홍수상태였고 나 역시 명치 끝에서부터 이름모를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못 찾아서 마음이 많이 조급하겠다. 학교 홈페이지에 얼른 들어가서 하나 인쇄해 볼게."

"홈페이지에 그런게 왜 올라가있겠어! 선생님이 나 혼낼지도 몰라. 어떡해. 나 어떡해. 걸스카웃 못하면!"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난 뒤에 파일을 학교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려놓는다. 나는 15년간 초등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리 설명해줘도 엄마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쟁이 엄마'일 뿐이다. 집에서는 선생질 안하려고 했던 내 탓도 있었겠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엄마보다 '선생님'이 더 크고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는 씩씩거리면서 집을 나섰고, 둘째 녀석은 누나의 눈치를 보면서 어색한 미소로 '다녀올게요'하고 나갔다.


'엄마탓'이라...

집에 홀로 남겨진후에야 내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스물스물 올라왔던 감정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엄마에게 책임을 전가한 딸에 대한 섭섭함이 가장 컸다. 엄마탓이라니! 키워주고, 먹여주고, 돌봐준 게 얼만데 엄마탓이라니...


아이에게서 "고마워요,엄마."라는 말을 평상시에 아흔 아홉번을 듣다가도 "엄마,미워! 엄마 때문이야!"라는 말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내 마음. 그게 바로 십 일년차 엄마인 내 마음의 실체였다. 엄마이기 전에 나도 사람이니까. 나도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고, 힘들 땐  소리내어 울고 싶은 나약한 한 여자일 뿐이니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몇 분이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큰녀석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엄마, 있잖아...학교에 가서 내 나름대로 잘 해볼게. 그러니까 엄마도..."


목소리를 들어보니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집에서 잘 찾아봐달라고 '부탁'을 하는 어조였다. 단번에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기에 앞서서 내 감정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까 엄마탓이라고 하니까 정말 섭섭하더라."

"아..."

"학교에 가서 잘 말씀드리면 선생님도 사정을 이해해주실거야. 엄마가 알림장에 메모해 준 거 꼭 보여드려."


선생님께 혼날지도 모른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알림장에 부랴부랴 메모를 남겨 주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신청서를 잃어버려서요. 혹시 한 장 더 있으시면 아이편에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끝내고나서 내 마음이 아까보다 훨씬 더 진정이 되었다. 아마도 딸에게 내 안에 담고 있던 '섭섭함'을 전달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마흔이 코 앞인 엄마도 까마득하게 어린 아이와 같이 감정이 있는 존재다. 마흔이 아니라 예순, 일흔 아니 죽을 때까지 내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들고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엄마이기에 참아야 하는 감정들도 있을 것이고, 어른이기에 아이 앞에서 표시 내지 말아야 하는 감정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이기 전에 나 자신이다. 나의 속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내 감정에 솔직하면서 아이에게 건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내 마음이 엄마마음이 되는 것이다.


무수한 자녀교육서에서는 한결같이 말한다. 아이의 감정을 코칭해 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기애를 키워주라고.... 초보맘 시절의 나에게는 이런 모든 조언들이 사실 부담스런 숙제였다. 내 마음이 아직 엄마마음이라는 진도까지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마음, 어디에 출발하는걸까?

멀리 있지 않다. 엄마마음도 할머니 마음도 내 안에서 출발해서 내 안으로 도착한다.


요즘 네이버 블로그에 아이들 키우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올리고 있는데, 최근에 한 이웃이 방문하고 가면서 댓글을 남겼다.


"엄마가 되는 것도 공부해야 하나보죠?"


프로필 사진을 보니 분명 미혼인 아가씨 같았다. 뭐라고 답글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오늘 아침 아이와 있었던 일을 되돌이켜 보면서 생각이 났다.


"그럼요. 해야죠. 하지만 건강한 내가 되는 것부터 먼저 공부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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