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전달법을 잘 쓰는 엄마들에게...
날이 많이 풀렸다. 봄바람이 조금씩 불긴하지만 더 많이 더워지기 전에 실컷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갔다.
우리 아이 또래들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좀체 찾아볼 수 없는 방과 후 시각. 둘째 아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놀 수 있냐고 묻기 위해서다. 전화를 건지 단 몇 초도 되지 않아서 통화가 끝났고 아이는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친구랑 못 놀게 됐구나."
"태권도 학원 갈꺼래..."
"그럼 그거 끝나고 놀자고 하지 그랬어?"
"그 후에는 피아노 학원 간데."
"그럼 많이 늦게 끝난데?"
"집에서 학습지 하나 더 해야한데.."
"..."
아이는 전화를 끊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미끄럼틀을 오르자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곁에서 나뭇가지에 팝콘처럼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햇살을 맞고 서있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놀이터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모여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어린아이'들 이었다.
유치원 원복을 입은 아이가 가장 커보였고, 대부분이 4,5세 가량되어 보였는데 어린이집 반일반을 마치고 나온 듯 보였다. 함께 놀이터에 나온 엄마들도 다양한 모습이었다. 아이를 쫓아다니며 술래잡기를 하는 엄마, 벤취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쥐고서 아이와 핸드폰을 번갈아서 보는 엄마 그리고 아이들은 놀게 하고 삼삼오오 그늘아래 모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엄마들까지...
한가로운 봄풍경의 아름다움과 놀이터에서 깔깔대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천국이 있다면 이와 같은 모습이겠다 싶었다. 그 때였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벤취에 앉은 엄마와 어린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고 주고받는 말들이 내 귀에 꽂혔다.
"아야! 너도 한 대 맞아봐라!"
"아야야."
"너도 엄마 때렸잖아! 어때? 아프지?"
"으아앙! 엄마..."
어찌된 영문인지 아이가 엄마의 심기를 먼저 불편하게 한 것은 같은데, 엄마는 아이가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고 있는 듯했다. 어른의 힘에 눌린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이내 기분이 상한 엄마는 아이의 세 발 자전거를 한 손으로 번쩍들고는 소리쳤다.
"엄마는 집에 갈꺼야!"
아이를 낳기 전에 엄마들은 자신이 어떤 모습의 엄마가 될지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는 생각해둔 그 모습 그대로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쓴다. 엄마들을 만나보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많이 있다.
"친구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저희 친정부모님이 엄하셨거든요.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고요."
그 '친구'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물어보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아이와 마음이 통하는 엄마', '아이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함께 나누는 엄마', '아이가 언제든지 찾아와서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엄마'등이다. 그런 엄마가 바로 친구같은 엄마라는 것이다.
단어가 가진 의미가 다소 확장된 느낌이 있지만 참 좋은 해석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느끼고 생각하겠다는 엄마의 다짐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는 '친구같은' 존재가 절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엄마는 이미 아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모종의 권위를 행사하는, 힘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를 친구처럼 대하는 엄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는 하다. 언제냐면 엄마가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때 이다. 대화기법 중에 '나-전달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엄마들은 주로 나-전달법을 자주 쓰는 엄마들이다.
"엄마가 싫어.", "엄마가 힘들어.", "엄마가 불편해."...등
엄마의 감정을 아이에게 전달할 때는 친구같은 존재로 다가간다. 그런데 과연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 받을 때에도 친구처럼 다가가는지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학창시절에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둔 비밀스런 이야기를 친구와 주고 받아본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 때, 과연 '친구'라는 의미는 어떠했는지 되새겨본다. 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나와의 만남이 의미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도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힘들 때 마음을 나누고, 안부를 물어주는 그런 사이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경청하고,공감하는 사이.
아픈 상처는 보듬고 기쁨은 함께 나누는 친구사이.
부모와 자녀가 그러한 진정한 친구사이가 된다면 이 세상에 자녀교육은 특별히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부모쪽 입장에서 주창하는 '친구사이'뿐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친구사이'라고 느껴지는 모자지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평생을 부모 자식지간으로 살면서도 우정을 나누는 친구사이처럼 그렇게 서로의 존재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연일 아동학대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는 요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보는 내내 가슴이 저린다. 비록 부모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지만 그 존재는, 영혼까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었을텐데...하지만 한 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혹 이런 부모도 있지 않을까?
'저 부모도 오죽했으면 저렇게 했을까', '그 심정 나도 이해가 간다'
...
바야흐로 봄이다. 아이들이 새학년 새학기를 시작한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간다. 학교행사 중에 학부모 총회이며 학부모상담주간이 이 즈음에서 시작하는 학교들도 많다. 그 때 학교행사에 참석하게 되는 엄마들이 이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친구같은 엄마'
교실 벽면에 붙은 내 아이의 작품을 다른 친구들의 것과 비교하지 않는 엄마, 선생님께서 아이의 단점을 언급하시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든든한 응원군같은 엄마.
그러한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요...친구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