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는 법>
나로부터 벗어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자유의 존재를 알게 된다.
대학교와는 달리 나보다 똑똑한 인재들이 많이 모인 S대에서의 대학원 수업은 그 자체로 나의 자존감을 위협했다. 수업시간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남들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수업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배움보다는 학점이 중요했고 남들의 평가가 중요했다.
수업을 끝내고 연구실에 앉아서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나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책 읽기에 빠져들 수도 없었고, 글쓰기에 빠져들 수도 없었다. 남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더 심해져서 끊임없이 내 하루를 구속했고 옥죄였다. 강박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S대 대학원생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부쩍 심해져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틈만 나면 내 하루 속으로 불쑥 고개를 디밀었다. 이럴 때마다 무언가를 보여줄 수 없는 내가 비참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영원히 나란 존재의 대단함을 남에게 영원히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날 것 같다는 불안이 내 하루의 에너지를 갉아먹었다.
이런 나에게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을 지도교수님이 해주셨을 때 적잖이 놀랐다. 그때는 자의식의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나에 대한 좋지 못한 평가라고만 생각했고, 나의 무식함이 들통날 것 같아 제대로 여쭙지도 못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그때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가 자의식 과잉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덩달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00kg이 넘는 거구의 몸은 우리 집에서 나 하나뿐이었다. 더군다나 바로 위의 언니는 너무 먹지 않아 저체중이었고,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언니의 음식을 뺏어먹었다는 장난스러운 말을 간간히 들어야 했다. 내가 어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나를 보며 가만히 있었으므로 거구이니까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말,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뚱뚱한 나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20년 동안 이런 생각을 하고 자랐으니 내 자의식은 왜곡되어 있었고 거구인 나에 대해 던지는 일부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과 말에 대해 맞대응하다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더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 같아 그 어떤 대응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놀림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상처였고 언제든지 나를 놀릴 수 있는 타인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시선을 늘 의식하며 놀림당할 것 같은 상황을 피하는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를 더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지렁이처럼 언제든지 밟힐 수 있는 내가 꿈틀 할 수 있다는 대단함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으리.
자의식 과잉이었을 그때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선생님들로부터는 항상 무한한 사랑과 칭찬을 받았던 나였기 때문에 지도교수님이 슬쩍 흘리신 말도 새겨듣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고 싶어하는 내 바람을 신이 알아주셨던 것일까?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걷는 길에 나로부터 벗어나야 비로소 얻어지는 자유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오래 걷기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함께 걸으며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그 순간이, 나무의 미세한 흔들림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바람이 내 몸에 말을 걸어주는 그 속상임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만 집중하고 나에게만 말을 걸고 나를 향해 미소 지을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음을 발견했다.
20년째 나는 걷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걷기를 통해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세상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교정하고 지금 누구보다 자의식이 건강한 삶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