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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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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Sep 11. 2019

이번 주에 바람피는 아내가 이해된다

진짜 바람 피울 순 없으니까, 워킹맘의 자기만의 시간 만드는 3가지 방법


우연히 TV드라마의 한 장면과 마주쳤다. 바람을 피운 아내가 고개를 떨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았나 봐. 힘들었어.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만큼 바빴어. 결혼도, 일도 내가 선택한 거니까 그 어느 하나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일로 바쁜 당신도 나도 열심히 사느라 그런 거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생각했어. 근데 더는 못 버틸 것 같았어. 그때였나 봐. 내 가방에 채 30페이지도 읽지 못한 책이 있다는걸. 그걸 읽을 만한 시간이 내게 없다는 걸, 나도 몰랐던 걸 그 사람이 알아준다는 게 그게 이상하게 기쁘면서 슬펐어." - JTBC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중


업무상 미팅에 2시간이나 늦는다는 상대방은 수연에게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일도, 육아도, 가사도 묵묵히 해내던 '완벽한 아내, 엄마' 수연은 흔들린다. 책 한 권 읽을 시간, 이 단 2시간이 그의 마음에 균열을 냈고 이내 쩍하고 갈라져 모든 게 산산조각 부서져 내렸다.


마치 내가 바람을 피우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수연처럼 완벽하진 못했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일상에 최선을 다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늘 한구석이 허전했다. 나를 채워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


마이클이 선물한 2시간, 수연의 마음이 흔들렸다. (출처 : JTBC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중)


엄마가 되기 전엔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게 이렇게 사치스러운 것인 줄 몰랐다. 마음껏 일을 다 하고도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도 만났다. 지치고 소진된 마음을 추스르고 충전할 시간이 충분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후엔 밥이라도 제때 앉아 먹으면 다행이었다. 운동, 독서, 영화관람 같은 건 늘 꿈꾸면서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았다.


복직을 하고 난 후엔 나만의 시간이 더욱 간절해졌다. 집과 일터만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고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란 어려웠다. 내 시간이 없으니 점점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진짜의 나는 소멸되고 직장인, 엄마라는 껍데기만 남을까 봐 두려웠다.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나만을 위해 쓸 시간을. 누가 나에게 공짜로 시간을 주진 않을 거니까, 진짜로 바람을 피울 것도 아니니까.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다. 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한다. 지금은 날 지키기 위해서 이것들이면 충분하다.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절실한 사람들, 워킹맘이 나를 지키기 위해 자기만의 시간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


1. 틈틈이 한다


뭘 하든 진득하게 자리를 펴고 앉아야 했던 나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워킹맘에겐 진득한 시간이 없다고, 틈새 시간에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요즘 나의 왕복 출퇴근 시간은 총 4시간. 길에 버리기엔 아깝고 긴 시간이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그렇게 4개월 동안 1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봤다.


처음엔 그저 시간이 아까워 취미활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출근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내가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취향의 책과 영화를 고르며 설렜고 아무 방해 없이 빠져들 수 있는 게 좋았다. 책은 상황에 따라 서적, e북을 읽거나 오디오북을 듣고 영화는 왓챠 플레이어와 넷플릭스로 보고 있다.


지금은 이 시간에 운동도 하고 글도 쓴다. 운동과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틈틈이'가 불가한 영역이었다.  작정하고 몇 시간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그래서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나 자신을 뛰어넘게 만들었다. 피트니스 소셜벤처로 이직한 후 틈틈이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일하는 중엔 어깨 스트레칭, 출퇴근 길엔 코어 호흡 운동, 아이들과 놀 때는 골반 스트레칭을 한다. 글은 아이폰 메모장과 브런치 앱으로 쓰는데 이동 중에 한 문장, 한 문장 메모한 걸 모아 한 편을 만든다.


한 번에 무언가 뚝딱 해낼 만큼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속도도 느리다. 그렇지만 조금씩, 천천히 해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틈틈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자 틈틈이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노는 첫째 아이와 키즈카페에 갔을 때, 둘째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아아아아아주 가끔 아이 둘이 같이 놀 때, 자기 전. 꼼지락대며 할 수 있는 걸 찾는다.


아껴 쓰고 나눠 쓰는 엄마의 시간 (출처 : unsplash)


2. 대체 시간을 찾는다


일과 중 낼 수 있는 틈이 1초도 없다면 '내 시간'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건 자는 시간. 복직 후 <마더티브> 마감 때문에 세 번 정도 잠을 줄여 새벽 3-4시까지 글을 쓴 적이 있다. 더 이상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다음날 출근이 너무 힘들고 컨디션이 되돌아오기까지 전보다 한참 걸려 도리어 효율이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치명적 단점 때문에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니 절대 무리 말자. 열정이 컨디션을 이길 수 있다면 유용한 방법이지만 체력적으로 오래가긴 어렵다. 우리에겐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고 출근해서 제 몫도 해야 하지 않은가. 더구나 나같이 잠이 많은 사람은 거의 불가능하다. 애 재우고 분명 다시 일어나려고 했는데 눈 뜨면 아침인 경우가 허다했다.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한 셈이니 마음만 급해졌다.


대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습관 때문인지 주말에 일찍 눈이 떠진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면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전형적인 올빼미였던 내가 이른 새벽에 뭘 하다니.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더니 생체 리듬도 내 마음을 알아챘나 보다. 이후엔 틈틈이 시간으로는 모자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주말 아침 시간을 이용하곤 한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왕복 3시간 출퇴근을 하는 워킹맘 친구가 있다. 디자이너인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점심시간에 미술 전시를 찾는다. 상사의 배려로 팀원들과 함께 하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지만 평화를 만끽하기엔 충분하다고. 친구를 보며 앞으론 점심시간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슈퍼맘이 되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여력이 되는 선에서 조금씩 줄일 수 있는 시간을 줄이고 내어 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일 뿐.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재충전해 일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출처 : unsplash)


3. 참지 말고 요청한다


가끔은 진득한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남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시간을 내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남편도 나도 일도 하고, 어린 두 아이도 돌봐야하기 때문에 자주 그럴 수는 없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바람을 피운 수연은 바보처럼 참았다. 쓰레기 버려주는 정도면 좋은 남편이라 생각하던 현우도 막장이었지만 그걸 모두 감내하던 수연도 미련했다. 그렇게 수연은 참기만 하다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버렸다.


나 또한 두 아이 육아를 하면서 내 시간에 당당하지 못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혼자만 발을 동동 구르다 시간에 닥쳐서야 엉뚱한 때에 일을 벌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왜 꼭 지금 이걸 해야 해?" 같은 말을 자주 들었고 괜히 오해만 생겼다. 주로 마감이 있는 <마더티브> 일이 그랬다.


이후론 사정이 생기면 바로 얘기하고 조율해 2-3시간 정도 시간을 벌어 쓴다. 저녁 시간뿐이었던 운동 강습, 아주 가끔 꼭 나가야 하는 저녁 모임, 듣고 싶은 주말 강연 등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할 때 이런 방법을 쓴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의 핵심은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는 것. 정작 나무라는 사람은 없는데 괜히 미안해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필요한 시간을 당당하게 요청하지 못하던 난 어쩌면 수연과 다를 바가 없지 않았을까.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다, 어쩌다 한 번.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재충전해 일상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참는 게 능사도 아니고 언제까지 참을 수 만도 없다. 부모이기 전에, 배우자이기 전에 나이기도 한 걸. 수연과 현우처럼 미안함이 서운함이 되고 오해가 되어 상황이 악화되기도 한다. 같이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가족에 대한 배려와 나를 아끼는 마음을 조화롭게 맞춰가는 삶이 필요하다. 참지 말고 말하자, 나의 시간을 달라고.


안 그래도 바쁘고 시간 없는 워킹맘에게 억지로 뭘 더 하라는 건 아니다. 난 틈틈이, 일부러 낸 시간에 그저 멍 때리기도 자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무엇을 먹는 것도, 무언가를 하는 것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나에겐 너무 오랜만이었던 거야." -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중


수연을 흔들리게 만든 시간은 수연 자신이 원하는 걸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 워킹맘의 삶. 날 추스르고 일상을 지탱해줄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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