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화관] 다큐 영화 <까치발>에 위로 받은 이유 세 가지
첫아이 임신을 알았을 때 내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임신 초기엔 2주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으면 되지만 아랫배가 조금만 아파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병원을 찾은 적도 있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기형아 검사'를 앞뒀을 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정기검진으로 두 번이나 거치는 과정. 임신 중 일기를 들춰보니 '저위험' 판정 문자를 받고서 한숨 돌렸다가도 다음 검진을 앞두고 또 불안해하는 내가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불안은 여전하다. 얼마 전엔 불안의 정점을 다시 찍었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지게 되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 아이들 안위에 대한 걱정, 사회적으로 취약해진 위치, 그리고 이런 불안을 자극하는 각종 마케팅 카피… 엄마가 되고 증폭되는 불안에 어쩔 줄 몰라 발을 구르는 일이 허다했다. 불안에 불안이 더해지고 불안이 불안을 낳았다. 위태로웠다.
엄마의 불안을 얘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이 나왔다. 10여 년 전 <땅의 여자>로 주목받았던 권우정 감독의 8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그 역시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으며 엄마의 삶을 살아 내고 있었다.
엄마의 불안에 대해 바닥까지 박박 긁어 꺼내 놓은 이야기가 거칠지만 솔직했다. 심각한 다큐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렇듯 마음이 힘들 줄 알았는데 도리어 위로 받았고 한편으론 속 시원하기도 했다. 감독과의 대화까지 모두 듣고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에 위로받을 수 있었던 이유 세 가지가 있었다.
엄마는 불안하다. 뇌성마비 징후인 까치발로 걷는 아이 때문이다. 아직 인지적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아이의 까치발 걸음이 늘 마음에 걸린다.
아이는 미숙아였다. 태어나자마자 장기 입원이 시작됐고 이후에도 잦은 병치레와 들어보지 못한 병명으로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엄마는 죄스러웠다. 모든 것이 다 자기 잘못인 것 같았다. 극도의 죄책감은 불안과 분노로 표출됐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가족의 손길도 차단하고 혼자 아이 곁을 지켰다. 그렇게 해야만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에게 위로가 된 사람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었다. 어쩌면 같은 어려움을 미리 겪었을, 그래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던 사람들.
<까치발> 권우정 감독의 이야기다. 이후 그는 수년 만의 복귀작으로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한다. 예상치 못한 삶의 변화 앞에서 강요된 죄책감으로 자신을 학대하고 있을 엄마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자신이 위로받았던 것처럼.
'위로'가 시작이었던 영화는 내내 괜찮다고 말한다. 장애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은 인터뷰를 통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직접 토닥인다. 극도의 불안을 겪는 감독의 모습은 엄마지만 불안해도, 흔들려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연출자로 다시 카메라를 잡은 감독은 엄마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언젠가부터 카메라가 꺼져도 질문이 이어졌다. 인터뷰는 상담이 되어갔고 제작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제작 관계자, 투자 심사위원들도 궁금해했다. 대체 왜 장애 당사자인 아이들이 아닌 비장애인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지.
감독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던진 질문은 곧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자신의 불안을 인정하지 않고는 결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카메라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 가족을 향했다. 스스로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했다.
감독은 우연히 맞닥뜨린 자신의 불안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끊임없이 '왜?'라고 자문하고 답을 얻기 위해 끝까지 몰고 간다. 불안의 근원을 끈질기게 쫓으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드러낸다.
아이를 심하게 다그치고, 남편과 싸우는 다소 격정적인 장면들은 논란의 여지가 남지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내 안의 불안을 인지하고 근원을 찾아가는 것.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증명한다.
시작은 내 안에서부터 찾아가지만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갈 때 위로는 더해진다. 살아온 환경, 인간관계 등과 뗄 수 없는 문제임을, 나아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얘기할 때의 통쾌함까지.
엄마의 불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괴롭지만 쉬이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더 증폭되곤 했다.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인 문제여서 복잡했고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온 이야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할지 몰랐다. 내가 <마더티브>를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는 게 반갑다.
8살이 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영화는 끝났다. 영화는 기복이 너울이는 바다 같았음에도 마침표가 없었다.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물었다. 그래서 당신의 불안은 해소되었느냐고. 불안의 근원을 찾아 헤매던 나 역시 답을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감독은 말했다.
"여전히 불안을 갖고 있어요. 저희 아이는 아직도 까치발을 하거든요. 완벽하게 불안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적어도 이 불안이 모든 것을 잠식하지 않게 노력하게 됐어요. 불안이 모든 것을 잠식할 땐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근데 그 순간에도 왜일까 자꾸 질문을 던지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이 영화를 통해 상담을 받으면서 엄마와 나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봤어요. 이걸 통해서 저와 딸이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애착에만 기대지 않고 서로가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불안에는 마침표가 없었다. 어쩌면 삶이 이어지는 한 계속되는 것이었다.
영화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버스 안에서 나의 불안을 하나씩 꺼냈다. 불편하니까 그저 외면해왔던 내 안의 것들을 마주했다. 나의 성향, 삶의 위치, 주변 환경, 인간관계... 원인은 복합적이었고 당장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불안과 함께 가기로. 때론 격하게 싸워보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길들여보기로 했다. 아이와의 좋은 관계가 애착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말처럼. 불안도 무조건 미워할 게 아니라 밀고 당기며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 불안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면
- 부모가 되는 것이 불안하다면
-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
다큐멘터리 영화 <까치발>은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오는 11월 2일(토) '진주같은영화제(https://jjff.jjmedia.or.kr/)'에서 상영 예정이다. 상영 소식은 까치발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docutiptoe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