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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Mar 13. 2020

업무공백과 돌봄공백의 기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맞벌이 부부에게 미치는 영향


재택근무 12일 차(주말 제외). 맞벌이인 우리 집은 요즘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나와 남편은 집에서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전에 없던 초인적인 집중력과 체력을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발휘 중.


회사는 지난 2월 26일부터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면서 유치원과 학교, 어린이집도 휴원 했기 때문. 대다수가 엄마인 팀원들은 걱정이 컸는데 회사의 재택근무 허용 결정으로 한시름 놓았다.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코로나19 감염자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 결국 휴원이 연장되면서 우린 3주째 화상회의로만 만나고 있다.


코로나19 국내 확산이 시작될 무렵 엄마들 사이에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병보다 휴원이 더 무섭다는 얘기가 오가곤 했다. 특히 일하는 엄마들에게 돌봄 기관의 장기 휴원은 또 다른 재앙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정말로 그 재앙이 닥쳤다.


전국적으로 감염병이 확산돼 돌봄 기관이 장기 휴원 하니 상황은 더 복잡했다.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업무 일정 상 길게 휴가를 쓰지 못하는 때라 당장 손이 많이 가는 3살, 6살 두 아이를 데리고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업무공백과 돌봄공백의 기로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이 상황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두 아이를 돌보며 일한다는 건 늘 그랬다. 언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질지 몰라 일과 육아 사이 어디쯤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언젠간 닥칠 일이었다. 해왔던 대로 온 가족이 총동원된 TF팀을 꾸려 최대한 업무공백과 돌봄공백을 메꿔보기로 했다.


뭘 잘 몰랐던 재택근무 1일 차 ©에디터 인성


맞벌이 재택근무,

남편과 교대로 일하는 법


하필 나와 남편은 오래 일을 쉴 수 없는 시기였다. 나는 마감 기한이 정해진 큰 프로젝트를 책임져야 했고 남편은 업무 특성상 수시로 미팅을 가지며 일을 진행해야 했다.


나만 재택근무를 했던 2월 마지막 주 3일 중 남편이 휴가를 썼던 하루를 뺀 나머지 이틀은 전쟁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집에 있는 걸 눈치챈 첫째가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데리고 있다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새벽 2시까지 야근. 다음 날엔 굳게 마음먹고 유치원 긴급 돌봄에 보냈는데 등원 한 시간 만에 열이 난다고 전화가 와 조퇴하고 새벽 4시까지 야근. (둘째는 진즉에 친정집에 맡겨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한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외부 컴퓨터에서 회사 서버 접근이 쉽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이틀간 고강도 육아노동 후 한껏 초췌해진 나를 본 남편은 미국 본사에까지 전화해 문제를 해결했다.


재택근무가 결정된 우린 머리를 맞대고 일도 육아도 놓치지 않을 일정을 쥐어짜냈다. 우선 염치 불고하고 보따리를 싸 친정에 눌러앉았다. 우선 딱 일주일만 머물 계획으로. 서로의 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시간 단위로 일정을 계획했다. 재택근무, 단축근무, 휴가 쪼개기 사용, 주 35시간 완전 자율 근무… 여러 묘안과 최후의 방법까지 끄집어냈다. 이 정도면 유연근무의 끝판왕.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타임 테이블이 완성됐다. 


재택근무 중 반차가 어려운 남편이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휴가를 쓰기로 했다. 나는 남편이 쉬는 날은 풀타임으로, 그 외엔 휴가를 쪼개 써 4-6시간씩 단축 근무를 한다. 내가 오전 8시에 일을 시작해 정오나 이른 오후에 일을 마무리하면 남편은 정오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다. 휴가는 나와 남편 모두 연차휴가를 쓰다 방학에 대비해 지금은 무급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하고 있다.


재택근무 중 휴원이 2주 더 연장됐다. 방에서 일을 하던 중 뉴스 속보를 들은 엄마와 남편이 소리를 지른 바람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물론 엄청난 일이긴 하다. 하아…


업무량이 많아 더 이상은 단축근무가 어려울 것 같았다. 갑자기 돌봐야 할 식구가 늘어난 엄마도 지쳐 보였다. 죄송했다. 시부모님에게도 긴급 요청을 해 그다음 일주일은 남편이 첫째 아이와 시집에 가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하늘은 끝내 더 큰 시련을 주었다.


회사를 통째로 옮겨 온 재택근무 12일 차 ©에디터 인성


긴급 돌봄 보내는 부모의 사정


시집은 몇 가구 없는 깊은 산골이었다. 청정구역이었던 그 시골에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나오더니 11명으로 늘어나 급기야 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다. 시부모님은 다행히 아직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확진자, 접촉자들과 동선이 겹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보내주시려 매일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사신 것. 아, 하늘이시여.


마음이 무거웠지만 긴급 돌봄을 신청하기로 했다. 긴급 돌봄 말고는 답이 없었다. 포항 어린이집 교사의 코로나19 확진 뉴스를 봤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 '긴급 돌봄도 하지 말라', '자식들은 부모가 책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댓글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도 보내고 싶어 보내는 게 아니니까.


이번 주부터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들은 등원했다. 늘 하던 대로 남편이 아침에 아이들 등원을 하는 동안 난 일을 한다. 그리고 낮에 함께 일하다 내가 늦은 오후 아이들 하원을 하고 남편이 저녁까지 일한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은 정원 180명 중 1명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이번 주부터 등원하는 아이들이 4-5명으로 늘어났다. 간식과 점심 식사는 제공이 안 돼 도시락을 싸가는데 잘 먹고 깨끗하게 비워진 도시락 통을 보면 기특하다.


마침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작한 둘째는 첫 등원이 긴급 돌봄이었다. 이곳도 기구한 사정이 있었다. 새 담임이었던 선생님의 가족이 확진자가 일했던 곳에서 함께 근무했던 것. 개원 직전 담임 선생님은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 기관에 맡겨 미안한 엄빠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둘째는 첫날부터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해주고 있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긴급 돌봄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 마음이 어찌 편할까. 당연히 곁에 두고 더 안전하게 보살피고 싶지만 부모에겐 지켜야 할 생계가, 일상이 있다.


불안에 무너지지 않고 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상을 쌓아나가는 것 ©에디터 인성


우리가 더 단단해지는 시간


최일선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고 계신 분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과 유연근무가 녹록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일터에 남은 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최근 콜센터 사업장의 집단 감염 소식은 너무나 착잡했다.


가까운 곳에서도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남편이 재택근무와 휴가가 어려운 친구는 혼자 업무공백과 돌봄공백을 채우느라 퇴근이 없다. 다른 친구의 지인은 돌봄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일을 그만뒀다. 임신∙출산으로 커리어가 중단됐다 미술놀이 강사로 막 일터에 복귀했던 친구는 기약 없는 수업 중단으로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며 허탈해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 그래도 우리 정도면 사정이 나은 거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사정이 더 좋지 않은 이들을 응원하며 그들에게도 안전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쉽지 않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이번 기회로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도 남편과 머리를 맞대 이 어려운 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 몇 가지 해법들을 찾았다. 우리가 얼마나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지, 일과 육아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여러 가능성을 보았다.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지만 삐걱대면서도 하나씩 맞춰나가니 또 일상은 굴러간다. 순식간에 몰려온 불안에 무너지지 않고 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상을 쌓아나가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꼭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비상 상황이 항시 대기 중인 부모의 삶에서도.)


어렵고 지치는 시간이지만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응원하며 나아갈 길을 찾는다. 우리는 더 단단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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