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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Mar 10. 2020

안 친했던 어린이집 엄마, 반전이 일어났다

아주 사소하고 신기한 여성연대

코만도와 나는 합정동 공동육아 어린이집 ‘또바기 어린이집’ 학부모로 만났다. 공동육아에서는 학부모라는 말 대신 ‘아마’라는 말을 쓴다. 아빠+엄마의 합성어다.


코만도가 영화감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네이버에 무려 인물 정보도 뜨는 유명인이었다. 배우 김꽃비가 나오는 <거짓말>을 연출했고(왓챠에서 볼 수 있다) 2015년에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도 수상했다고 나왔다.



배우 김꽃비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거짓말>



같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녔지만 코만도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 하원 시간에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하하” 어색한 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마더티브 북토크에 코만도가 갑자기 나타났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뒷자리에 앉아 있던 코만도는 북토크가 끝나기 전 책을 구매해서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때 코만도가 보낸 카톡을 공개한다. 우리가 이렇게 어색한 사이였다.


“잘 보고 듣고 왔습니다~ 책 내신 거 축하드려요! 도린이 키우면서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ㅎ 같은 육아 동지들의 노력과 용기들이 부러웠습니다.”




코만도와 영차


포포포 매거진 유미님과 첨 만나던 날. 파안대소하는 나(파랑)와 에디터 인성(분홍).



코만도는 왜 마더티브 북토크에 왔을까. 여기서 영차 이야기를 해야겠다. 북토크가 열린 장소는 영차가 운영하는 합정동 GX룸 ‘달리운동장’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는 북토크를 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영차가 기꺼이 장소를 내줬다.


영차 역시 또바기 어린이집 아마이기는 했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다. 영차는 그해 들어온 신입 아마였고, 나는 내향적 인간이라 주변 아마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럼 영차를 어떻게 알게 됐느냐. 포포포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포포포 매거진은 유미님이 편집장으로 있는 독립잡지다. 서울에서 에디터 생활을 하던 유미님은 결혼하고 아이 낳으며 포항으로 이주했다. 포포포는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한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출간을 앞두고 유미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더티브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포포포와 마더티브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지 해보자고도했다.


그러면서 유미님은 포포포 함께 만드는 멤버 중에 합정에서 GX룸도 하고 에어비앤비도 하는 엄마가 있다고 말했다. 사이드프로젝트로 포포포 활동을 하고 있다고.


순간, 얼마 전 어린이집에 새로 들어온 조합원이 어린이집 카페에 GX룸 홍보를 했던 게 기억났다. 에어비앤비도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포포포와 마더티브의 만남이 시작됐다. 영차는 나와는 달리 엄청난 인싸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와 정반대 외향적 인간. 사람과 모임(과 술...)을 좋아했고 코만도와도 가까웠다.


마케터 출신인 영차는 어린이집 카페에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책 홍보를 올렸다.


 너무 멋있는 것 같아서... 읽기도 전에 또바기 추천 필독서로 감히...


이게 제목이다. 역시 마케팅은 이렇게 하는 건가… 영차는 북토크 홍보 글도 올렸다. 나는 너무 민망하고 쑥스러워서 북토크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코만도가 나타난 거다. 고맙기도 하고 코만도가 왜 왔을까 궁금했다. 직접 묻지는 않았다.




“네? 제가요?”


벙거지 모자 쓰고 앉아 있는 코만도



얼마 후, 코만도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나와 만나고 싶다고.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코만도가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편은 말했다.


“영화 촬영하자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코만도는 극영화 감독인데.”


남편의 촉이 맞았다. 어린이집 근처 중국집에 마주 앉아 코만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임신한 몸으로 아이 낳기 직전까지 영화 작업을 했고, 아이가 태어나던 해 영화 <거짓말>도 세상에 나왔다고.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극장에서 개봉도 했지만 그 후로 6년 가까이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다고.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도 엔딩이 나오지 않으면 소용없는데 엔딩 없는 시나리오만 쌓여간다고. 이러다 다시 영화를 못 찍게 되는 게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다고.


“제가 찍으려는 영화랑 제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거예요. 어떨 때는 그냥 노트북 커서 깜빡깜빡 거리는 걸 보고 있는 내 뒷모습만 찍어 볼까 생각도 들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내게 코만도는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보는 엄마였다. 아이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키워주려 노력하는 엄마. 엄마로 사는 게 힘들었던 나와는 달리 엄마 역할에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원래 나 빼고는 다 좋은 엄마처럼 보이니까. 코만도에게 남모를 고민이 있는 줄 몰랐다.


코만도는 마더티브 북토크에 다녀간 후 영화를 다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자극제가 됐다고. 고맙다고. “네? 제가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코만도에게 또 다른 자극제가 있었다. 바로 영차. 코만도는 일주일에 몇 번씩 영차가 운영하는 운동장에서 운동 수업을 들었다.


“내 몸에 있는 근육 하나하나를 알게 되고 쓰게 되면서 내가 정말 내 몸을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내 자신을 방치했구나... 운동하니까 억지로라도 밖에 나오게 되더라고요. 그것도 좋았어요.”


영차는 운동장과 에어비앤비 운영뿐만 아니라 운동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봄에는 체육대학원 공부도 시작할 예정이다. 취미로 벌이는 일은 셀 수도 없다. 영차의 긍정적 에너지가 코만도에게도 전해진 걸까. 두 사람은 2주에 한번 북클럽도 함께 하고 있다.


코만도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찍어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오랜만에 영화의 결말이 떠올랐다고. 나는 물었다. “그럼 제가 주인공인가요?ㅋㅋㅋ”




“몰라, 그냥 찍고 보는 거야”


코만도네 집에서 회의하던 날(성대한 안주를 보라...)



그 후 코만도를 볼 때마다 나는 직업 정신을 갖고(마감 쪼는 걸 제일 잘한다)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시나리오 어떻게 돼가요? 제가 도와줄 거 없어요?” 코만도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코만도와 가까워졌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코만도가 어떤 영화를 찍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주인공일지 영차가 주인공일지 아니면 극영화를 찍게 될지(멋진 배우가 나오면 좋겠다). 그동안 몇 번 스마트폰 들고 와서 후줄근한 일상을 찍어가기는 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거냐고 물어보자 코만도는 말했다. “몰라. 그냥 일단 찍고 보는 거야.”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던 코만도는 일단 뭐라도 찍고 보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카메라를 든 코만도를 보며 나도 자극을 받는다. 하나를 해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못하는 일이 많았다. 어줍지 않게 아는 게 독이 됐다. 이제는 일단 뭐라도 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더 자주, 가볍게 글을 쓴다.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인다.

 


“그러나 손을 잡아 준 나의 육아 동료, 엄마, 아빠들이 있기에 힘을 내본다. 동굴에서 나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허송세월한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다시는 암흑의 그곳으로 가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김동명, ‘비천한 영화감독, 손에 손을 잡다’, <포포포>



솔직히 신기하다. 유명인도 아니고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도 아닌 나와 동료들이 걸어간 길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발자국이 될 수 있다는 게.


생각해 보면 엄마로 사는 게 힘들었을 때 도움이 된 건 잘 나가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앞, 바로 옆에 있는 엄마들이었다. 척하면 척, 착하면 착.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뭐라도 돕고 뭐라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멋진 여자들.

 


“누구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중략… 이런 나를 위해, 그리고 많은 여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응원은 하나다. 계속해주세요. 거기에 길을 만들어주세요. 시야 안에 머물러주세요. 계속해주세요.” 이다혜, <출근길의 주문>



포포포와 마더티브는 서로의 채널에 필진으로 글을 싣고 있다. 코만도는 이번에 두 채널 모두 글을 썼다. 마티에는 딸과 함께 만든 그림책 원고를 보내줬다.


참, 마더티브 에디터 인성은 영차와 함께 엄마 댄스팀을 결성해 매주 월요일 밤 춤을 춘다. 요즘에는 (여자)아이들의 ‘Lion’을 배우고 있단다. 이렇게 또 엄마의 서사가 쌓여간다.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섬처럼 흩어져있는 엄마들을 연결하는 '맘썸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마티도 참여하고 있어요. 그 첫 번째 프로젝트! #엄마생존챌린지.


코로나 19로 집에서 아이들과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엄마들, 생존신고와 함께 나만의 코로나 생존법도 알려주세요. '오늘의 엄마'를 뽑아 푸짐한 선물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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