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티브X포포포] 밤 10시에 모인 엄마들 무슨 얘기할까?
written by 마더티브 에디터&창고살롱 커넥터 인성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운 기세로 한반도를 덮쳤던 지난 3월. 끝을 알 수 없는 돌봄 기관 휴원과 재택근무로 영혼이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육아와 가사 부담이 늘어난 집에선 수시로 신경전이 벌어졌고 비상 상황에서조차 원격 근무에 관대하지 않던 경직된 조직 문화가 피로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사이드 허슬러(Side Hustler) 동료들과 숨통 좀 틔워보자며 또다시 작당 모의를 시작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는 웹매거진 <마더티브>를 함께 만들고 운영해온 현진님과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들의 커뮤니티 <창고살롱 프로젝트>를 같이 도모하고 있는 혜영님이었다.
우리 셋은 올해 초 엄마들의 커뮤니티를 구상하며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문화 살롱 모임을 기획했었다. 모든 기획이 끝나고 공지를 올리기 직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됐다. 모든 계획이 좌초된 것 같아 실망이 컸지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엄마들은 고립에 익숙했다. 코로나 이전부터 돌봄 노동에 몸이 매여 외출과 교류가 자유롭지 못했다. 커뮤니티 구상을 시작하던 때부터 우린 무조건 '온라인 중심 서비스'여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도록 시공간을 초월한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코로나로 모두가 물리적으로 고립되고 나니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툴이 급속도로 보급됐다. 특히 온라인 화상 회의 툴이 가장 빠른 속도로 보편화됐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린 온라인으로 문화 살롱 기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더 부담되는 것은 싫었다. 처음엔 가볍게 영화를 한 편 보고 만나기로 했다. 밤 10시, 아이들을 재운 후 맥주 한 캔 들고 컴퓨터 앞에서 만나자고. 한 명도 안 모이면 어쩌나 덜덜 떨며 공지를 올렸던 게 무색하게 하루 만에 모집이 마감됐다. 코로나로 고립이 심화되면서 엄마들의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함께 본 영화는 <줄리&줄리아>였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사는 두 기혼 여성이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해내는 과정을 담았다. 10년 전 본 영화였지만 애를 둘이나 낳은 기혼 여성이 된 후 다시 본 영화는 완전히 달랐다.
엄마가 되고 내 일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육아휴직 후 복귀했지만 '네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고 면전에서 말하는 팀장의 홀대를 견뎌야 했다.
보육 기관 등하원 시간도 맞벌이 가정의 현실과 멀었다. 집보다 어린이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던 아이가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던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양가 부모님을 총동원해 버티고 또 버텼다. 둘째 아이까지 낳고 보니 변수는 더 많아졌고 돌발 상황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없었다. 체력과 시간이 소모되고 수많은 변수를 감당해야 하는 육아를 하면서 사회 통념에 따른 일을 지켜내긴 힘들었다. 경력은 쌓여 가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지만, 책임은 무거워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것처럼 모든 걸 갈아 넣으며 일할 순 없었다.
우리는 일에 대한 담론부터 바꾸고 싶었다. 모집 대상이 '일하는 엄마', '워킹맘' 등이 아닌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인 이유였다. 꼭 9 to 6 직장에 다니거나 돈을 벌지 않아도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일, 일과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나만 놓쳐도 우수수 모두 망가지는 저글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을 향해가고 있다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우리의 커뮤니티가 일의 대안적 담론을 제시하기 바랐다.
새로운 일 담론과 여성의 연결은 서로 필요충분조건 같았다. 엄마가 일을 지속하려면 연결이 필요했다. 일하는 엄마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성의 일'을 주제로 열렸던 북토크에서 책 <출근길의 주문>을 쓴 이다혜 작가가 여성 연대 필요성을 강조하며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순간 여자들은 각자 섬처럼 흩어져
혼자 고민하고 혼자 외로워하다 가라앉아요"
영화 모임 이후 더 많은 참석자들과 세 번의 북클럽을 진행했는데 <출근길의 주문>을 첫 번째로 읽었다. 이어 멜린다 게이츠 에세이 <누구도 멈출 수 없다>와 김혜진 장편소설 <9번의 일>을 읽고 일과 연결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외로움을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경험이었다. 어린아이와 둘이 집에서 씨름 하다 보면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때론 영영 이 세계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완전한 고립감을 느끼기 직전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전 직장 동료들과 육아집중기를 함께 보냈다. 아이 때문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지만 같은 언론사를 다니는 동료로서 우린 육아, 엄마에 대한 다른 관점의 고민도 나눌 수 있었다. 이런 연결은 내가 엄마가 되어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게한 힘이 됐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여자들이 엄마가 되어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하는 나와 엄마인 나 사이에서 해답 없는 고민을 반복하다 지쳐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라앉지 않고 연결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
책 <출근길의 주문>을 패러디해 캔맥북토크 멤버들과 우리만의 출근길의 주문도 만들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 다시 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 진짜 내 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 좋은 문장들이 모였다. 꼭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내 일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담아두어도 좋을 것 같다.
일하는 엄마를 위한 출근길의 주문
1. 나를 위해 일하자
2. 하려던 말은 끝까지 하자
3. 지금의 내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미래의 내가 더 좋은 기회를 얻는다
4. 쉬어 봤잖니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5. 세련되게 나대자
6. 비생산적인 감정 소모 버튼은 끄자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건강하게 하루를 마무리
7. 남자도 할 일도 많다 선택은 내가 한다
8. 글을 쓰자 (한 줄이라도)
이 글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 3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