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살롱 세 번째 캔맥 북토크 <9번의 일>
안녕하세요. 창고살롱 커넥터 현진입니다. 날이 부쩍 더워졌네요.
일하는 엄마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창고살롱’ 프리시즌. 마지막 책은 소설 <9번의 일>이었어요.
<9번의 일>은 중년 엄마와 레즈비언 딸 이야기를 다룬 <딸에 대하여>를 쓴 김혜진 작가 작품이에요. 이번 책의 주인공은 퇴직 위기에 처한 중년 남성인데요. 갖은 모멸과 모욕을 겪으면서도 회사를, 일을 놓지 못합니다.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전개되는 소설을 읽다 보면 ‘대체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데요. 창고살롱 프리시즌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미 pick
“일이란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책 읽으면서 회사 다닐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동시에 시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시아버지가 늘 ‘내 인생에 뭐가 있겠냐. 손자밖에 없지’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종일 회사에서 일하며 충성을 다 하던 세대였거든요. 아버님한테는 일밖에 없었겠구나,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영차 pick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일상, 완벽한 하루, 그런 것들을 욕심 내어 본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 완벽함과 충만함 같은 것들은 언제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 속에만 머무는 것이었고,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너무 힘들게 읽었어요. 저의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도저히 이해 안 갔던 회사 상사 분들 얼굴도 떠올랐어요. 이 문장을 읽으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제일 어렵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랑주 Pick
같은 문장
좋은데 보고 싶지 않은 그런 책이었어요. 너무 현실적이어서. 주인공이 만족스러운 삶을 욕심 내지 않아서 이렇게 고통받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 생각이 났어요. 저랑 남편도 소설 속 주인공과 성격이 비슷하거든요. 경제적으로도 욕심을 내야겠다 싶었어요.
민지 Pick
같은 문장
어디에나 있을 법한 9번의 해피엔딩을 위태하게 바라며 소설을 읽었어요. 크게 욕심내지 않았던 그의 삶이 점점 행복과는 멀어질 때, 처음에는 피해자인 것 같던 주인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되어가는 뫼비우스 띠 같은 사회구조를 바라볼 때, 소박하고 너무 현실적인 그의 행복론이 더 묵직한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홍래 Pick
“이봐요.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고요. 통신탑을 몇 개나 더 박아야 하는지, 백 개를 박는지, 천 개를 박는지, 그게 고주파인지 저주파인지 난 관심 없어요. 나는 이 회사 직원이고 회사가 시키면 합니다. 뭐든 해요. 그게 잘못됐습니까?”
나는 그냥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라고 말하던 아이히만이 떠올랐어요. 9번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에 대해 고민을 안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이 없으니 조직이 정체성이라고 생각했고, 일을 그만두면 나를 잃는다고 생각한 거죠. 저도 그저 주어진 가이드대로만 일하다가는 9번처럼 될 수 있겠다는 고민이 들었어요.
혜미 Pick
"오래도록 그는 몸으로 오는 이런 고된 피로감을 믿었다. 육체가 단련되고 익숙해지는 동안의 시간을 신뢰했다. 그 시간들이 어떤 일을 비로소 자신의 일로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일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더 인간다워진다는 자부가 있었고, 그 자부 안에 함께 성장해온 회사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깃들어 있었다."
저는 일에서 시간이 쌓이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요. 9번도 그런 생각으로 그다음, 그다음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걸 지나면 더 나은 상황으로 갈 거라는 생각. 그 동기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주연 Pick
같은 문장
지영 Pick
“몇 년 뒤면 준오도 자신의 일을 갖게 될 거였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알게 될 거였다.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인간상으로 변해가는 것. 제가 그리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이 구절을 보며 깨달았어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자각이 매 순간 중요할 것 같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다면 3번으로.
혜미
“9번은 어떤 지점에 대한 희망을 계속 가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거라는 인식을 했고, 일하는 나로서 존재를 지켜야겠다, 나 자체를 지켜가겠다는 선택을 한 게 아닐까요.”
영차
“저는 자살한 걸로 읽었어요. 일이 멈춰버렸을 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단단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무너지는 순간. 그걸 이겨내지 못한 것 같아요.”
랑주
“과거 나의 일을 없애버린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게 내 발목을 잡고 있었네! 에잇!”
홍래
"두 가지 생각이 났어요. 첫 번째는 회사에 대한 도전. 회사의 실체를 깨닫고 투쟁의 길로 가는 건가? 두 번째는 철탑을 해체하면서 일의 본질을 본 게 아닐까 해요."
유미
"얼마 전에 EBS에서 기생 식물에 대한 방송을 봤는데요. 숙주가 되는 식물의 뿌리까지 침투해서 영원히 같이 살게 되는 구조더라고요. 내가 회사에게, 회사가 나에게 기생하게 되면서 나와 회사가 하나가 돼버리고, 같이 파국을 맞게 되는 결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서로에게 사망선고인 거죠."
혜미
“그동안 일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많이 찾고 일을 너무 신성하게 생각했어요. 요즘은 그렇게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은 일이고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어도 조직에서 일하는 나는 대리인이잖아요. 일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요.”
영차
“퇴사 후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조금씩 답을 찾고 있어요. 예전에는 9번처럼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어서 힘들고 괴로웠다면, 지금은 틀렸으면 수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힘듦의 질이 달라졌어요.”
랑주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경제적인 고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일, 하면 가사 일이 일단 떠올라요. 매치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홍래
“가치롭고 돈도 잘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사실 저는 저 자신을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일을 쉬었다가 소셜 섹터에 눈을 뜨게 됐고 지금은 일을 하면서 괴리감이 들지 않아서 좋아요.”
유미
“일을 하면서 스스로 학대를 했어요. 번아웃과 도피의 반복이었죠.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싶어요. 많이 팔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오롯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혜진 작가 인터뷰
지난봄,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창고살롱 프리시즌은 ‘일’이라는 주제로 진행이 됐는데요. 그동안 영화 <줄리&줄리아> 책 <출근길의 주문><누구도 멈출 수 없다><9번의 일>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눴어요.
‘온라인으로 과연 진솔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까.’'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느라 정신없지 않을까.' 사실 온라인으로 창고살롱을 시작하면서 걱정이 앞섰어요.
코로나 긴급 좌담회까지 포함해서 총 5번의 창고살롱을 진행하면서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쩌면 온라인이었기에,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었기에 더 부담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일’을 고민하는 엄마들의 취향과 경험을 공유하는 창고살롱은 재정비 기간을 거쳐 시즌1으로 다시 돌아올게요. 우리 곧 다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