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Sep 08. 2020

6개월간 A4 7장을 쓴다는 것

[마더티브X포포포] 기혼여성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 대표 이성경

written by 마더티브 에디터&창고살롱 커넥터 홍현진  


성경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육아 휴직 시절,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등센서 때문에 좀처럼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안고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날들. 성경님이 올린 사이다 글을 읽고 있으면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엄마가 쓰는 글이지만 엄마로만 머물지 않는 글. 페미니즘 렌즈로 엄마의 삶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글. 육아 휴직 끝나고 편집부 돌아가면 이분 꼭 필진으로 섭외해야지 생각했다. ‘마더티브’의 시작이었던 ‘주간애미’를 기획하면서 첫 번째 필진은 고민할 것 없이 성경님이었다.


내가 퇴사와 이직을 거치는 사이 성경님은 기혼여성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를 결성했고 2019년 봄 엄마 11명이 공저자로 참여한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민들레)를 펴냈다. 그리고 2020년 봄, 1년 만에 다시 11명의 기혼 여성을 모아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와온)를 출간했다.


기혼 여성의 페미니즘과 섹스. 한국 사회에서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주제를 두 권의 책으로 펴내는 과정에서 성경님은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서 함께 글 쓸 필진을 모으고 수개월에 걸쳐 모임을 진행하고 출판사와 필진 사이를 조율했다. 텀블벅 진행과 출간 후 홍보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혼자서는 쓰지 못했을 이야기를 ‘함께’의 힘으로 출간합니다. 각자 독립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프롤로그 중에서


함께, 공적 글쓰기의 힘은 뭘까. 어려움은 없었을까. 두 권의 책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인터뷰를 빙자해 밤 10시, Zoom 앞에서 심야 수다를 나눴다.



A4 7장을 쓴다는 것


'부너미'가 낸 두 권의 책


- 1 만에 또다시 공저로  번째 책을 냈어요 번째  내고 만났을  다시는  하겠다 그랬잖아요(웃음).

“두 번째 책 만들 때도 계속 그랬어요. 다시는 안 한다고. 그랬더니 편집자가 아마 또 몇 개월 있다 아이템 있다면서 전화 할 거라고(웃음). 첫 번째 책 편집자랑 두 번째 책 편집자가 같거든요.”


그래도  번째는  달랐을  같아요.

“첫 번째 책은 저도 처음이었고 의견 조율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두 번째 책은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참가자들도 ‘섹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6~7개월 집중적으로 책 읽고 영화 보고 섹스 관련 경험담 쏟아내고 글 쓰고… 살면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섹스를 탐구해 본 적이 없으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만나서 깔깔깔 하면서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 6~7개월 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요.

“저희 목표가 한 사람당 A4 7장씩 쓰는 거였어요. 처음부터 7장 쓰기 어렵잖아요. 각자 다른 주제 정해서 초고를 처음에 A4 용지 2장 쓰고, 그다음 달 A4 용지 4장 쓰고, 그다음 달에 6장 쓰고. 매달 오프라인으로 집중적으로 만났어요. 그다음 달에는 한옥에서 1박 2일 모여 서로 피드백을 했어요. 이건 별로다. 이건 어떤 사례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글을 완성한 다음 세부 교정하고. 출판하는 데까지 시간이 또 걸렸고요.”


공저가 결코 쉽지 않잖아요서로 주제를 나누고 톤을 맞춰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하물며 11명이라니이렇게 많은 사람과 공저를 하기로  이유가 있나요그것도  번이나.

“사실 공저자 많은 걸 출판사에서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저는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함께 탐구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A4 7장 뚝딱 써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필진들끼리 서로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과정이 좋았어요. 울고 달래주고 서로 연대하면서 외롭지 않은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죠. 책 내는 과정에서 삶이 변한 분도 많고요.”

 

기혼 여성들이 섹스를 주제로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공적으로 들려준 적이 없었던  같아요.

“이 책에 담기지 않은 재밌는 내용도 많아요. 유지은쌤 원고 초반에 외국인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체위가 뭔지 물어보는 대목이 나와요. 섹스는 우리가 함께 즐겁기 위해서 하는 건데 네 성감대를 너한테 물어보지 누구한테 물어보냐고요.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너무 쇼킹한 거예요. 우리는 성감대 어디냐는 질문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웃음) 멤버들이 유지은쌤 초고를 남편한테 읽어주면서 배우라고 그랬대요.”


맞아요저도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부부끼리 ‘네가 좋아하는 영화 뭐야’, ‘좋아하는 음식 뭐야’ 묻듯이 좋아하는 체위 뭐냐고 물어보는 게 건강하고 자연스러운데 그걸 너무 수치스러워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정말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우림쌤이 해준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프랑스에서는 섹스를 기쁨이라고 가르친대요. 우리는 한 번도 섹스를 기쁨이라고 배워본 적 없잖아요. ‘임신하면 큰일 난다’, ‘섹스는 못된 짓이다’ 죄책감, 불안을 심어주는 교육을 받았죠. 섹스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선하고 저도 많이 배웠어요.”



함께 글쓰기의 원칙


@부너미



부너미가 처음에는 페미니즘  읽기 모임으로 시작했던 걸로 기억해요어떻게 책을 쓰게  거예요?

“처음에는 책 읽고 독후감 쓰고 문집 만들고 그랬죠. 제가 ‘민들레’ 출판사에서 만드는 격월지 <민들레>에 페미니즘 관련해서 1년 동안 기고를 했어요. 거기에 부너미 활동과 엄마들의 당사자 글쓰기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걸 보고 출판 제안이 왔어요. 출판사에서는 3~4명 정도 잘 쓰는 사람들이 여러 주제를 쓰자고 했는데 저는 반대했어요. 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두 번째 책도 다양한 부부의 모습을 담고 싶었고요. 첫 번째 책 편집자가 회사를 나와서 출판사를 차렸는데요. 두 번째 책도 같이 만들게 됐어요.”


 책을 함께  편집자가 남자분이라고 들었어요.

“첫 번째 책 낼 때는 편집자가 넋 빠진 표정을 많이 했어요. 회의할 때마다 엄마 11명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니까(웃음). 첫 번째 책 낼 때는 필진들이 편집자 의견에 동의를 안 하기도 하고 마감을 안 지키기도 하고. 중간에서 제가 많이 힘들었어요.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했어요. ‘편집자 말은 하늘이다, 무조건 듣자’(웃음). 


저는 이 모임에서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선을 명확하게 했어요. 책이나 다큐를 추천해주거나 경험을 들려주거나 공간 대여하고 식사 예약하고... 운영 면에서 서포트 하는 거지 출판에 대한 건 전적으로 출판사의 권한이라고요.”


그럼 6개월간 처음 멤버가 끝까지  건가요?

“네. 다들 같이 모여서 탐구하고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끝까지 글 쓰게 만든 원동력은 벌금이었죠(웃음). 그런데도 마감 어기는 분들이 있어서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고요. 애초에 타이트한 일정을 강제성 있게 잡아놓고 그걸 사람들이 인지한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순조롭게 마무리됐어요. 편집자가 공저 책이 이렇게 일정 맞춰서 나오기 어렵다고 고맙다고 하길래 제가 한마디 했죠. ‘돈의 힘입니다’(웃음).


이렇게 단호하게  이유가 있을  같아요.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는데 한없이 기다려주고 이해해줄 수 없으니까요. 제가 부너미 이전에 다른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적 있는데 너무 느슨하게 하니까 책 안 읽고 오는 사람도 있고 당일에 안 나오기도 하고. 의욕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2017년에 부너미 만들 때 처음부터 단호하게 원칙을 정했어요. 모임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요. 무조건 읽고 무조건 쓰고 무조건 말할 것. 최소한의 선을 정한 거죠.” 



나의 경험을 넘어서는 글쓰기


코로나 시대라 화상 인터뷰로@홍현진


제가 성경님  처음   2016년이었어요그때 이미 페북 스타(?)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전에도 공적 글쓰기를 하셨나요?

“페북 이전에는 공적 글쓰기도 안 했고 페북도 안 했어요. 카카오 스토리에 육아 일기만 올렸죠. 남편이 주차 못 하는 사람한테 ‘김여사’라고 말한 것 때문에 열 받아서 페북에 글 처음 쓴 게 2016년 초였어요. 분노가 도저히 갈 곳이 없어서 글쓰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반응이 좋았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 페북 글 읽게 되면서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됐고요. 저는 남편이 은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남편이 나를 분노하게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육아일기 충실히 쓰고 있을 텐데(웃음).”


그렇게 공적 글쓰기를 시작해서 ‘함께 글쓰기 넘어가게   흥미로워요계속 혼자  수도 있었을 텐데  힘들게 사람들을 모은 거예요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를 봤을 때 답답함이 많았어요. 현실에서는 저것보다 훨씬 다양한 기혼 여성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데. 혼자 글 쓰게 되면 제 이야기밖에 못 하잖아요. 저의 경험 이상은 이야기 못 하니까요.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온다는 게 저한테는 되게 귀한 기회였어요. 대단한 커리어우먼, 슈퍼우먼 그런 것도 아니고 평범한 기혼여성 이야기를 실어주겠다는 거잖아요. 그 기회를 몇 명만 갖는 것보다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담고 싶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주제 당사자가 이야기했으면 했어요. 인세는 11분의 1이지만 귀한 경험을 같이 나누는 게 좋았어요.


설마 다음 책도 구상 중이신가요?(웃음

“또 할 거예요! 제가 지금 성 평등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아이들과 전래동화 같이 읽다 보면 답답하더라고요. 엄마들이랑 전래동화를 성 평등 관점에서 같이 분석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쓰고 싶어요. 시중에 전래동화 다시 쓴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저는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 신데렐라가 출판사별로 15개 버전이 있다면 새로 쓴 신데렐라도 15개 정도는 돼야죠.


정말 큰 목표는 전집을 만드는 거예요. 명작동화, 전래동화 30권, 50권 세트로 나오는데 새로 쓴 버전도 그 정도는 나와야죠. 혼자 하면 힘들겠지만 한 10명 모이면 집단 지성이 있잖아요. 돈의 힘도 있고(웃음), 마감 때가 되면 아이디어도 나오는 거고 어떻게든 결론이 나오겠죠.


정말 대단해요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 거예요

“제가 읽고 싶은데 없으니까 만드는 거예요. 첫 번째 책도 그렇고 두 번째 책도 그랬고요. 제가 필진들에게 계속 그 이야기를 했어요. 각자 읽고 싶은 책, 읽고 싶은 글을 쓰라고. 동화책도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현진님도 함께 해요.”


“우리 삶의 패턴은 제각기 떠돌아다니는 것들이 아니라, 잠시라도 함께 박자를 맞추어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멀고도 가까운> 


성경님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리베카 솔닛의 문장을 떠올렸다. ‘울컥’에서 시작된 개인적 글쓰기가 함께 글쓰기로 이어지고 책 한 권, 한 권으로 엮이는 모습. 그 책에서 용기를 얻어 누군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모습. 머지않아 또다시 멋진 작품을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글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 3호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시민 23인의 코로나 적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