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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석자 공식 문자, 나는 펑펑 울었다

[마더티브X포포포] '엄마'다움에서 벗어나 '나'다움 찾기

by 마더티브

잠 못 드는 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야근이 잦은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 컴컴한 거실에서 아이가 잠들기만을 바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일 밤의 그 시간이 외롭고 힘들었다. 직장을 다닐 때 저녁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걸 시작하는 또 다른 하루였는데, 이렇게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될지 몰랐다.


그 시간은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뿌리 깊게 내리고 있어야 엄마의 역할도 잘할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엄마의 ‘자기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졌다. 관습적으로 강요되어 온 엄마다움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공기처럼 집안 가득 메우는 엄마의 감정 상태는 가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편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하고 1차 서류 통과 문자를 받았을 때는 펑펑 울었다. 내 이름 석 자, 나만을 위한 공식 문자를 받은 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소속감마저 느껴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직장생활을 그만둔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한 발자국 내딛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엄마의 시작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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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이의 자기다움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는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북스

https://boox.kr/가 탄생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관련 아이템을 매번 검색하고 선택하기를 반복하는 일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누가 골라주고 결제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아이 그림책을 뭘 사줘야 하나 고민하다 큐레이션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 검색해봤는데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출판사, 다양한 작가의 좋은 그림책만 골라 보여주고 싶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처음엔 한 권 한 권 골라주고 싶었지만 막막하고 어려워서 결국 비싼 전집을 들이고 붙박이장처럼 되어버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기가 어려 밖을 나가기 힘든 분들, 지방이라 그림책 서점 접근성이 떨어지는 분들도 집에서 편리하게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좋은 그림책으로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사실 이건 내 상황이기도 했다. 서울 밖으로 이사 오니 접근성도 떨어지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책을 고른다는 건 판타지 그 자체였다.



북스 x 위커넥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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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는 매월 아이들과 나누고픈 주제를 선정하고 아동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연령대별로 정성껏 도서를 선정한다. 단순히 글밥이나 보드북이냐 아니냐로 연령대별 도서를 나누지 않는다. 가족 주제의 책을 선정할 때에는 3~4세 즈음에 동생이 많이 생기는 점을 고려한다. 동생의 탄생에 대한 형이나 누나의 마음을 담은 책을 선정해 아이가 공감받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다. 양육자 가이드인 소통 프로그램은 양육자가 아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엄마가 되어 일의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다시 사회로 나가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나를 재조명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었구나 하며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고, 아직 사회로 나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어떠한 발견이 되었든 나를 돌아보고 토닥이고 돌보는 시간 역시 필요하다. 그 여정에 좋은 그림책 한 권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경력 보유 여성이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지, 북스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 하나가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위커넥트는 경력 설계와 매칭 등 관련 전문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어 있고, 북스는 앞단에서 용기 한 스푼이 필요한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뗄지 말지 고민이신 분에게 적합한 그림책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양육자의 자기다움 실현을 지원하는 것도 북스의 중요한 축인데, 북스가 시도해보고자 하는 방향성을 응원해준 위커넥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다움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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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워크숍과 강연이 아닌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은 처음이었다. 컨퍼런스 콜이 아닌 미니 강연 형태의 영상 미팅을 주도하려니 막막했다. 노션도 처음 만져봤고 슬랙도 오랜만에 쓰려니 왜 이렇게 낯선지. 온라인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한다는 것 역시 엄청난 부담이었다.


챌린지 기간 내 단 한 번뿐인 화상 미팅이 밤 10시에 있었다. 9시 반에 아이가 다행히 잠이 들어서 후다닥 셔츠로 갈아입고 아래는 잠옷 바지인 채로 진행했다. 코로나와 관계없이 시공간의 제약이 큰 엄마의 특성상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은 선택이라기보다 필수였다. 덕분에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가 가능했다. 임산부부터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시는 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참여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 할머니 등 ‘양육자’의 범위를 재고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 엄마의 마음이나 상황이 모두 다 같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나의 상황에 비추어 제한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북스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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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자기다움과 다양성이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체인지 메이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요새는 육아의 많은 부분을 아웃 소싱하지만 피곤해도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매일 10분 그림책 읽어주기. 아이는 그림책을 ‘읽기’보다 마음을 이입하여 ‘경험’한다. 그때의 아이 표정과 언어에서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네 생각은 어때? 그게 다야?”로 대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림책을 잘 모르는 양육자도 아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소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독후활동은 화려할 필요도 오랜 시간 할 필요도 없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나에게 집중해주는 사랑이다. 아이가 보고 싶은 책을 양육자와 일상에서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그림책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마음에 울림을 주고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내 아이가 처음 접하는 콘텐츠이자 예술인 그림책을 아무거나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건강한 가치관과 철학을 지닌 작품을 통해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고 다양한 세상을 포용적으로 보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by. 북스(BOOX) CEO 조수연


이 글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 3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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