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Sep 14. 2020

이름 석자 공식 문자, 나는 펑펑 울었다

[마더티브X포포포] '엄마'다움에서 벗어나 '나'다움 찾기   

잠 못 드는 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야근이 잦은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 컴컴한 거실에서 아이가 잠들기만을 바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매일 밤의 그 시간이 외롭고 힘들었다. 직장을 다닐 때 저녁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걸 시작하는 또 다른 하루였는데, 이렇게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될지 몰랐다. 


그 시간은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뿌리 깊게 내리고 있어야 엄마의 역할도 잘할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엄마의 ‘자기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졌다. 관습적으로 강요되어 온 엄마다움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찾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공기처럼 집안 가득 메우는 엄마의 감정 상태는 가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편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아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하고 1차 서류 통과 문자를 받았을 때는 펑펑 울었다. 내 이름 석 자, 나만을 위한 공식 문자를 받은 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소속감마저 느껴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직장생활을 그만둔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한 발자국 내딛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엄마의 시작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BOOX


그렇게 모든 이의 자기다움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는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북스

https://boox.kr/가 탄생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관련 아이템을 매번 검색하고 선택하기를 반복하는 일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누가 골라주고 결제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지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아이 그림책을 뭘 사줘야 하나 고민하다 큐레이션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 검색해봤는데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출판사, 다양한 작가의 좋은 그림책만 골라 보여주고 싶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처음엔 한 권 한 권 골라주고 싶었지만 막막하고 어려워서 결국 비싼 전집을 들이고 붙박이장처럼 되어버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기가 어려 밖을 나가기 힘든 분들, 지방이라 그림책 서점 접근성이 떨어지는 분들도 집에서 편리하게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좋은 그림책으로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사실 이건 내 상황이기도 했다. 서울 밖으로 이사 오니 접근성도 떨어지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책을 고른다는 건 판타지 그 자체였다.

 


북스 x 위커넥트


@BOOX


북스는 매월 아이들과 나누고픈 주제를 선정하고 아동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연령대별로 정성껏 도서를 선정한다. 단순히 글밥이나 보드북이냐 아니냐로 연령대별 도서를 나누지 않는다. 가족 주제의 책을 선정할 때에는 3~4세 즈음에 동생이 많이 생기는 점을 고려한다. 동생의 탄생에 대한 형이나 누나의 마음을 담은 책을 선정해 아이가 공감받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다. 양육자 가이드인 소통 프로그램은 양육자가 아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엄마가 되어 일의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다시 사회로 나가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나를 재조명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었구나 하며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고, 아직 사회로 나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어떠한 발견이 되었든 나를 돌아보고 토닥이고 돌보는 시간 역시 필요하다. 그 여정에 좋은 그림책 한 권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경력 보유 여성이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지, 북스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 하나가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위커넥트는 경력 설계와 매칭 등 관련 전문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어 있고, 북스는 앞단에서 용기 한 스푼이 필요한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뗄지 말지 고민이신 분에게 적합한 그림책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양육자의 자기다움 실현을 지원하는 것도 북스의 중요한 축인데, 북스가 시도해보고자 하는 방향성을 응원해준 위커넥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다움 챌린지



오프라인 워크숍과 강연이 아닌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은 처음이었다. 컨퍼런스 콜이 아닌 미니 강연 형태의 영상 미팅을 주도하려니 막막했다. 노션도 처음 만져봤고 슬랙도 오랜만에 쓰려니 왜 이렇게 낯선지. 온라인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한다는 것 역시 엄청난 부담이었다.


챌린지 기간 내 단 한 번뿐인 화상 미팅이 밤 10시에 있었다. 9시 반에 아이가 다행히 잠이 들어서 후다닥 셔츠로 갈아입고 아래는 잠옷 바지인 채로 진행했다. 코로나와 관계없이 시공간의 제약이 큰 엄마의 특성상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은 선택이라기보다 필수였다. 덕분에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가 가능했다. 임산부부터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시는 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참여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 할머니 등 ‘양육자’의 범위를 재고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 엄마의 마음이나 상황이 모두 다 같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나의 상황에 비추어 제한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북스의 내일


@BOOX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자기다움과 다양성이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체인지 메이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요새는 육아의 많은 부분을 아웃 소싱하지만 피곤해도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매일 10분 그림책 읽어주기. 아이는 그림책을 ‘읽기’보다 마음을 이입하여 ‘경험’한다. 그때의 아이 표정과 언어에서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네 생각은 어때? 그게 다야?”로 대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림책을 잘 모르는 양육자도 아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소통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독후활동은 화려할 필요도 오랜 시간 할 필요도 없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나에게 집중해주는 사랑이다. 아이가 보고 싶은 책을 양육자와 일상에서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그림책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마음에 울림을 주고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내 아이가 처음 접하는 콘텐츠이자 예술인 그림책을 아무거나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건강한 가치관과 철학을 지닌 작품을 통해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고 다양한 세상을 포용적으로 보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by. 북스(BOOX) CEO 조수연 


이 글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 3호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6개월간 A4 7장을 쓴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