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육아-일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저는 ‘이민재'라고 합니다. 다양한 일들을 벌이는 것을 잘하고요. 수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출판 스터디, 게임 개발, 뉴스레터, 교재 제작, 유튜브 운영 등 현재 백수임에도 불구하고(사실 백수이기 때문에) 수개월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벌여왔습니다. 역시 수습하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25개월 딸아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부침이 생기긴 합니다. 지금도 새벽 3시. 육아와 일,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끝나는 시간입니다.
요즘 코로나19로 갑자기 직장을 떠나게 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지난 5월까지 전국의 중,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회사에서 기업부설연구소를 맡고 있었습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창업 멤버로 시작해 10년 가까이 교육 프로그램 설계를 비롯해 교사 연수, 학부모, 학생 강의, 책 집필, 교육 게임 개발 등 교육 기획 일을 했습니다.
내 노력의 결과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때의 느끼는 보람을 좋아합니다. 또 그것이 교육 콘텐츠다 보니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누구보다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일을 했다 자부합니다. 이렇게 함께 일군 회사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진로교육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죠. 참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일터를 제공해 준 이전 회사에 항상 고맙습니다.
전 ‘동료복'이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즐겁게 일을 하며 나름의 성과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동’들 덕분입니다. 다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느끼는 제 단점들이 분명하다 보니 도와줄 사람들이 잘 보이는 편이거든요. 기워야 하는 부분이 잘 보이는 구멍 난 양말처럼 말이에요. 무엇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두리번두리번’ 도와줄 사람들을 찾는 것부터입니다.
거기엔 아내도 포함됩니다. 저에겐 없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총합이 바로 아내입니다. 아내의 직업은 개발자입니다. 답을 구하는 수학 문제를 풀듯 최적의 코딩으로 프로그래밍하는 일이다 보니 매사 꼼꼼하고 계획적입니다. 사고의 체계도 꽤 단계적이며, 그 과정 또한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차 없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죠. 사실 저에겐 없는 성향입니다. 계획보단 실행이 빠르고, 그것을 통한 직관에 의지하는 편이거든요.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었을까요. 이 기획자와 개발자의 만남으로 재인이라는 엄청난 아웃풋을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친구입니다. 지극히 다른 성향 탓에 싸움이 전혀 없었던 부부였습니다. 싸우지 않는 부부라고 글을 썼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을 정도였죠. 이제는 둘 다 싸움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추리해보건대 아이의 탄생 직후부터입니다. 사람을 이렇게나 변하게 만들다니 실로 굉장한 능력입니다.
재인이와의 시간이 늘었습니다. 어린이집 등, 하원을 모두 제가 하게 되었고, 식사를 준비하고 챙겨주고 정리하는 것 역시 백수인 제 몫입니다. 결혼 전 아내에게 농담처럼 건넸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말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웃자고 했던 싱거운 말이었는데 졸지에 약속을 지키는 남편이 되어갑니다. 재인이를 돌보는 일과 집안일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아내의 외벌이가 시작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죠. 즐겨야 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퇴사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유튜브입니다. 퇴사 이후의 삶을 기록해보자는 취지로 <퇴사자인더하우스>라는 채널을 개설하고 현재까지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떠벌리는 데는 아주 효과적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퇴사는 흠도 아니니 걱정은 없습니다. 스스로 만든 마감을 지켜 영상을 만들고 보고 있노라면,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아직도 영상 편집에는 완벽하게 익숙하지 않아 공부하며 진행하다 보니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혼자 했다면 아마 재인이의 육아 브이로그 몇 편 올리고 끝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회사에서 함께 나온 동료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날을 정해 저희 집에서 모여 유튜브를 기획하고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재인이가 집에 없는 시간을 피해서 말이죠.
모이다 보니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하고 의논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프로젝트들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만드는 것이 제 특기를 살리고 있는 거죠. 현재 <호락호락>이라는 부모교육을 위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밀레니얼 세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고 일상을 보내는 데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누구보다 저희 부부에게는 정말 필요했거든요. 바빠죽겠는데 정보의 바닷속에서 헤엄칠 시간 없잖아요. 아이는 잘 키우고 싶고, 내 삶도 잘 지켜내고 싶은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이들에게 도움 되는 글과 정보, 기사들을 한데 모아 주제 별로 묶어 격주로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 우리 아이들은 호락호락하게 살게 해보자는 뜻으로 뉴스레터 이름을 <호락호락>이라고 지었습니다.
이 일은 저희가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전부터 하던 것을 발전시켜 이어나가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그중 가능한 것이 교육 콘텐츠를 도서라는 형태로 출판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팀원들과 그동안 40여 권의 책을 만들었고, 대부분은 운 좋게도 좋은 평가와 높은 판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출판 업무를 돌아보며 정리해보자는 뜻에서 <출판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저희끼리 교안을 만들고 학습하는 형태로 스터디를 기획하였고, 스터디 이름도 그래서 ‘삼삼오오’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위 분들께서 이 스터디의 커리큘럼과 취지에 공감해 주셨고, 함께 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첫 책 출판을 꿈꾸는 16분과 비대면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멋진 작품 활동을 보여주시는 작가님들께서 강사로 참여해 주시기로 하셨고, 출판사 3곳의 후원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상을 넓혀 글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2번째, 3번째 스터디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백수에게 무려 ‘계획’이라니.. 저희 팀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글로 제 요즘을 늘어놓다 보니, 참 정신없네요. 아마 이런 분주함 속에서도 이것들을 진행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로 설명될까요.
‘연대’와 ‘도모’입니다.
스스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은 저 두 단어를 인생의 기치로 내걸게 만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멋진 팀을 이루고 있는 아내를 비롯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 현재 많은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힘을 쏟는 동료들이 바로 그것의 표상입니다.
부디 이 글이 잡스러운 넋두리나 우쭐대는 소리로 들리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요즘 모두 힘들잖아요. 이토록 처절하지만 그래도 유쾌함을 잃지 않은 제 몸부림이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응원이 되길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이 시기를 이렇게 극복해나가는 사람도 있구나.’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피식' 싱거운 웃음이라도 만들어드린다면 더없이 기쁘겠네요. 더불어 이런 생각을 글로 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마더티브에도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연대'해서 멋진 일 ‘도모’해 보자고요!
Written by. 이민재(호락호락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