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온라인에서 만나는 아빠들의 육아 수다
2019년 가을, 6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친 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들과 오랜만에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육아휴직 동안 주양육자로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육아에 관심이 많아졌고, 식사를 함께한 동료들도 비슷한 연령의 자녀를 둔 아빠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아빠들의 육아 수다로 채워진 1시간 남짓한 점심시간, 사무실로 돌아가기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육아를 통해 처음 겪는 고충, 아이들과 교감하며 느낀 감정을 다른 아빠들도 공감했고, 서로의 육아 고민에 대한 조언과 육아팁은 실용적이고 시의적절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아빠들의 육아 수다를 온라인으로 옮겨와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함께 식사했던 직장 동료 아빠(로이드)에게 육아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보는 것을 제안했고,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아이가 둘인 맞벌이 직장인 아빠들이 별도로 시간을 내서 유튜브 영상 촬영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결국, 육아빠들의 모임 첫 번째 시도는 아쉽게 기획으로만 남았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한 올해 3월, 우리 부부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엄마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아내는 온라인으로 엄마들을 만났다. 온라인 화상 회의 툴 줌(Zoom)을 이용한 방식인데, 오프라인 모임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었다.
특히 화상 대화를 동영상으로 남길 수 있는 기능이 주요했다. 아빠들의 모임과 유튜브 영상 촬영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창고살롱'을 통해 찾은 것이다.
함께 유튜브 채널을 구상했던 로이드님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나를 포함해 4~5명 정도의 구성을 목표로 멤버 섭외를 시작했다. 대학교 동기, 선/후배, 고등학교 동창들 중 아빠들에게 연락해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아빠들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멤버를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육아에 별로 참여하지 않아서 할 말이 없어', '요즘 너무 바빠', '말주변이 없어서… 유튜브 구독할게'라며 모두 거절했다. 여자 지인들에게까지 연락해 남편의 참여 의사를 물었지만 비슷한 반응이었다. 결국 더는 멤버를 찾을 수 없었다.
온라인 모임이니, 온라인에서 찾아보자!
온라인에서 멤버를 모아보기로 했다. 아내의 추천으로 브런치에서 육아 에세이를 쓰는 아빠들을 찾았고, 육아에 열정과 욕심이 있을 것 같은 몇 사람에게 연락했다. 아빠 온라인 카페에도 멤버 모집 홍보 글을 남겼다. 그리고 로이드님에게도 지인들 중 같이 참여할 분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온라인 육아 수다를 함께할 멤버들이 모였다. 브런치를 통해 참여하게 된 '페이소'님, 온라인 카페 글을 보고 연락을 준 '데니스'님, 로이드님이 섭외한 '커비'님, 그리고 나 '윌크'. 이렇게 <애는 아빠가 봐야지> 멤버들이 구성됐다. 현재는 첫 번째 모임 영상 시청 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참여한 '프랭크'님까지 한 명 더 늘었다. (아빠들의 닉네임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이름이다)
5월 20일, 드디어 첫 번째 만남 일정을 잡았다. '재밌을 것 같아', '일단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인데 막상 일정이 잡히자 부담이 커졌다. 어색할 수도 있고, 이야기가 잘 안 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기대감으로 참여한 아빠들이 실망하고 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유익한 시간이 되도록 첫 번째 만남의 진행 방식과 이야기 주제를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다.
첫 온라인 모임 공지
1. 모임 일정
- 날짜 : 5월 20일 수요일
- 시간 : 밤 10:00 ~ 11:30 PM
- 접속방법 : Zoom 화상회의 (접속 링크 추후 공지 예정, 캠이 내장된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참여 가능)
2. 개인별 사전 준비
- 닉네임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이름으로)
3. 진행 순서
① 자기소개 : 닉네임 / 자녀 수 및 연령
② 스몰 토크 : 아빠가 추천하는 나만 알고 싶은 육아템
③ 본격 토크
- 육아빠가 코로나에 대처하는 방법
- '주말 육아 plan 짜기' 베스트
- 아빠가 갖고 싶은 베스트 패밀리카 (+ 차에서 우는 아이 달래는 법)
긴장감 속에 줌 화상 모임을 시작했다. 아빠들은 어색했지만 밝은 모습으로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준비한 '아빠가 추천하는 육아템' 스몰 토크만으로 1시간 30분이 채워진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페이소님이 소개해 준 '하트로 가는 신나는 여행' 보드게임은 아이들의 속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고 정서 발달에도 도움을 주는 육아템이었다. 6살 첫째 아이는 매일 이 보드게임을 꼭 하고 자야 할 정도로 푹 빠졌다. 로이드님이 아이들과 놀러 가기 좋은 곳이라며 추천해 준 강화도를 찾아 아이들과 여행 브이로그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인천에 사는 커비님은 자녀가 타던 스트라이더 밸런스 바이크를 광주에 사는 페이소님에게 선물로 보냈고, 페이소님은 두 딸과 두 발 자전거 타기 연습을 신나게 할 수 있었다.
아빠들의 대화 주제는 최근 육아뿐 아니라 아빠들의 놀이, 부부관계 등 제한 없이 확장되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멤버들이 서로를 더 알아가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아내나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들까지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된 것이다.
특히, 얼마 전 '슬기로운 성생활'이란 주제로 진행한 모임에서는 서로의 경험과 고충을 솔직히 이야기하며 유익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정관수술을 고민하고 있는 멤버들에게 경험자가 자세한 후기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바쁜 직장 생활과 힘든 육아로 부부만의 시간이 줄어들고 오랜 기간 잠자리를 갖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빠들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아가 아이들 성교육 노하우와 중요성까지도 이야기하며 아빠들의 모임은 깊이와 가치를 더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빠들은 배우고, 나누고, 공감하고, 응원하고, 위안받고, 즐기고 있다. 하는 일, 사는 곳, 나이 모두 다르지만 아빠라는 공통분모 위에 진정성과 열정이 더해져 만들어진 연대가 아닐까?
'애는 아빠가 봐야지' 모임은 2~3 주에 한 번씩 계속하고 있지만 유튜브 영상은 최근 더 이상 업로드하지 않고 있다.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을 때 멤버들이 더 솔직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보다 진솔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모임을 꾸려나갈 계획이다. 모두 딸이 있는 아빠들이라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토론해 볼 생각이고, 육아전문가가 알려주는 육아법이나 훈육법을 직접 해보고 이야기 나눠보고도 싶다. 아빠들끼리 아이들 옷을 사러 가는 브이로그를 만들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바람은 <애는 아빠가 봐야지> 멤버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우리는 한 번도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적이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여섯 멤버 가족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Written by. 윌크
두 아이 키우며 일하는 아빠. 육아빠 모임 '애는 아빠가 봐야지' 운영자. <마더티브> 에디터 인성과 같이 사는 사람.
'애는 아빠가 봐야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wC1cF3ev0sdZLK8YO434rg
마더티브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