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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Dec 01. 2020

결혼 후 세종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궁금했다  

<나의 사적인 세종 이주기> 제작 후기 

Written by. Humans of Sejong 유진 


내가 좋아서 내가 보려고 만든 책


창문을 여니 상쾌한 찬 공기가 쓱 들어옵니다. 세종시에서 맞이하는 6번째 겨울이에요. 어느덧 결혼 6년 차인데요, 남편과 함께 한집에서 살았던 시간은 3년이 채 안 되었을 거예요. 제 직장은 서울에, 남편 직장은 세종에 있거든요. 어느 누구 한 명이 직업을 바꾸지 않고선 상황이 바뀌지 않으니, 서울-세종 출퇴근, 주말부부, 원격근무 등 여러 방식을 실험하기도 했어요.


결국 3년 전의 저는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세종에서 경력 공백기를 보냅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무척 외로웠어요. 비슷한 상황,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만나기 쉽지 않았고요. 어쩌면 점들이 연결되지 않은 채 각자가 자기 자리에 홀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 후 세종으로 이주한 뒤 커리어를 지속한 여성의 서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 아래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낯선 지역에서 적응하는 부담을 조금 더 줄여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렇게 레퍼런스를 모아보자는 결심이 <나의 사적인 세종 이주기: 30대 일하는 여성 인터뷰집>이라는 결과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을 의뢰할 때 우지현 작가의 '오후 네시의 빛'을 생각했다. 색이 진해지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전환의 시간이라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할 동네 친구를 찾다


저는 제안을 가볍게 잘 못하는 성격이라, 프로젝트 기획안을 작성하고 (인쇄까지 해서) 두 친구에게 제안했어요. 봄님은 대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였고, 상인님은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이였죠. 사실 프로젝트 합류 전 상인님과는 딱 1번 만난 사이였어요. 상인님이 운영하는 지속상점의 북클럽 홍보 포스팅에 제가 지원했었거든요. 셋이서 무언가를 같이 한 경험은 없지만,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비슷해서 금방 서로의 언어를 이해했어요.


세 명 모두 편집자로서 인터뷰 질문을 만들고, 인터뷰이 섭외를 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글을 썼습니다. 웬만하면 인터뷰에 다 같이 참여하려 했고 부득이하게 참여를 못 했을 땐 녹취 파일을 들으며 모든 내용을 서로가 알고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개별적인 역할로, 제가 프로젝트 기획과 일정을 관리했고, 상인님은 책자의 전체적인 디자인 콘셉트 방향과 가이드를 주었어요. 봄님은 운영/회계 업무를 꼼꼼하게 챙겼어요.

   

모두가 편집자니까 서로의 원고를 검토하고 의논했다. 


프로젝트를 위해 한참 달릴 때는 잘 몰랐는데, 뒤돌아보니 균형감 좋은 팀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맞습니다, 자랑!) 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 역할이었고, 봄님은 저조차도 의심이 되고 주저할 때 ‘일단 해보자’며 일을 되게 만드는 역할, 상인님은 우리 팀이 집중해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슬기롭게 가지 치는' 역할이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꾸릴 때 구성원의 다양성이 왜 중요하다고 하는지 깨달았어요.

  


주제를 정하고 인터뷰이를 섭외한 방법


인터뷰집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부터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인터뷰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리스트가 있었어요. 세종시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함과 동시에 여러 경제 활동 선택지를 다루고 싶었거든요. 세종에서 경력 공백기를 보낸 개인 경험 덕분에 주제를 리스트업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먼저 주제(목차)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사람들을 찾는 방식이었어요. 


주제를 정할 땐, 창업, 이직, 대학원, 프리랜서, 원격근무, 지점 이전 등 큰 틀에서 유형을 나누었고요. 그다음엔 ‘세종시에는 정부부처/공공기관 일자리가 많으니, 경력직 공무원으로 이직한 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까?’ ‘세종시에서 차로 30분쯤 걸리는 카이스트나 충남대 대학원에 다녀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이런 식으로 세부적인 콘셉트를 잡았어요. 지인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에 맞게 콘셉트를 정하기도 했습니다. 


걸맞은 인터뷰이를 찾고 싶었으나 포기했던 주제들도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학원 등 사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케이스였어요. 세종시 인구의 1/4은 유소년이라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지인들에게 추천과 연결을 부탁했는데, 대부분 40대였던 거예요.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직업을 전환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여튼, 30대 일하는 여성이 인터뷰집의 주제다 보니 해당 연령대에 맞는 분을 찾지 못하고 주제를 포기했죠.


신생 도시, 세종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인터뷰이마다 달랐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인터뷰 자리를 빌려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 나누다


30대 일하는 여성 8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 감정을 인터뷰이가 정확한 언어와 경험으로 말할 때였어요. 남편 따라온 아내라는 서사에 대한 저항,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20대와 달리 30대는 버티고 꾸준히 지속해야 하더라 등... 누군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 주기만 하면 나도 정말 할 말이 많아지는 주제들을 놓고 오래 대화했습니다. 


인터뷰라는 자리를 빌려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유독 좋았던 대화들을 반추해보면, 뾰족한 해결책을 알려줘서가 아니라 내 또래의 일하는 여성이라는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분명 인터뷰 자리였는데, 어느새 좋아하는 책과 귀여운 걸 선물하는 자리가 되었다


하나 더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제가 좋아하는 공간인 우리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거예요. 세종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다 보니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이 꽤 자연스러워요. 올해는 유독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스튜디오처럼 멋진 공간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의 소음 없는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어요.

 

동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인터뷰한다는 건, 일인데 즐겁게 노는 일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힘이 있을까요? 


인터뷰를 글로 풀어내면서 들었던 고민도 있었습니다. 여성의 일과 삶을 주제로 하다 보니, 일은 그렇다 쳐도 삶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선까지 공적 콘텐츠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죠. 창업가, 학자, 정치인 등 사회의 어떤 특정한 역할과 위치에 있는 사람의 인터뷰라면 그의 메시지가 공적인 힘을 가지고 퍼질 수 있을 텐데요. 인터뷰에 참여한 분들께 드리는 질문은 대단히 사적인 질문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주를 결심했는지, 경제 활동을 계획했는지, 가족계획은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연애, 결혼, 가족사 등 소소한 사연들이 나오게 되거든요. 


또 한편으로, 아무리 개인의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은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지는 않다는 점도 고민이었어요. 어떤 선택은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도 있고, 운 좋게 가능할 때도 있으니까요. 이런 개별성을 지닌 서사가 나열되는 것이 과연 힘이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배울 점은 너무나 많고,
힘들 땐 아주 작고 사소한 조언이라도 그걸 붙들고 그 터널을 지날 때가 있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랴 일하랴 바쁜 엄마에게 '자아실현'이라는 큰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인터넷 쇼핑할 때 더 싼 걸 찾으려고 30분 허비하지 말고 상단에 뜬 아이템을 사고 쉬라'는 말이 위로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사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도 담아보기로 했습니다. 대신, 인터뷰이가 원한다면 익명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어요. 


익명으로 인터뷰가 나간 대신 그 사람을 닮은 일러스트를 그렸다




도움을 받은 책들


로컬 숍 연구잡지 브로드컬리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를 읽으며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몰입감이 대단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자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대신하는 자리인 만큼 질문을 세심하게 준비하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십 대를 보낸 이들 일곱 명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안은별 저자의 <IMF 키즈의 생애>를 읽으며, 개인의 생애와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언어가 얼마나 강력한 지를 느꼈습니다.  


예스 24 문화 웹진 '채널예스' 엄지혜 기자의 <태도의 말들>은 3 회독했습니다. 인터뷰어는 어떤 자세로 인터뷰이를 대해야 하는지, 인터뷰에 대한 해설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혼란스러움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


이렇게 쭉 회고하니, 인터뷰집을 만드는 과정은 내 안의 혼란스러움, 복잡한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펼쳐 보니, 의외로 별것 아닌 문제도 있었어요. 인터뷰집을 만들며 버릴 생각은 버리고, 계속 품고 가야 할 질문은 남기는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네요. 



인터뷰집을 만든 사람들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분들은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해보세요!  


온라인 북토크

• 일시: 2020년 12월 6일 일요일 저녁 8시
• 장소: 온라인 화상 미팅
• 패널: 편집자 유진, 봄, 상인 그리고 인터뷰이 소네
• 진행: 포포포매거진 정유미 대표


신청 링크: bit.ly/sjwork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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