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가 궁금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어웨이>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 납작한 모성이 아닌 다양하고 풍부한 엄마의 서사를 발굴합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 있으면 언제든 마티 채널 댓글 통해서 추천해주세요.
SF 작가 김초엽은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남성의 세계로 인식되던 우주 공간에 여성, 엄마를 전면에 내세운다.
<스펙트럼>의 희진은 인류 최초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고(<벌새> 김보라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고 한다, 만세!), <우주 영웅> 재경 이모는 ‘우주인의 자격'을 묻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선다. 힐러리 스웽크가 주연한 <어웨이> 역시 여성 우주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화상 탐사선 아틀라스호 사령관 에마(힐러리 스웽크)는 15살 딸의 엄마다. 남편 맷은 에마와 함께 우주 비행 훈련을 받았지만 유전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행에서 제외된다. 대신 로켓 책임 엔지니어로서 관제센터에 남기로 한다.
지구에서 달, 화성을 거쳐 돌아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년. 물론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무수히 존재한다. <어웨이>는 지구에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두고 온 우주인 엄마의 분투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에디터 홍이 추천하는 <어웨이> 관전 포인트 3가지.
에마가 달에서 화성으로 떠나기 전, 에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남편은 유전병이 발병해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된다. 딸 렉스는 극도로 불안해하며 엄마가 돌아와서 옆에 있어주면 안 되냐고 눈물로 호소한다. 에마는 고뇌에 빠진다.
우주에 있으면서도 에마는 끊임없이 돌봄 노동을 한다. 아틀라스호가 지구와 가까이 있을 때만 해도 통신이 어찌나 잘 되는지, 에마는 수시로 문자하고 전화하고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와 남편을 챙긴다. 아이 성적이 떨어졌다며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부탁하고, 남편 주치의와 소통한다.
이 와중에 에마는 주임무인 사령관 역할도 훌륭히 해내야 한다. 비행 초반 에마의 실책 때문에 팀원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에마가 사령관 자격이 없다며 불신하는 팀원도 생겨난다. 리더로서 통솔력을 발휘하면서 팀원들의 사생활과 멘탈을 관리하는 것도 에마의 일. 에마는 우주선 안에서도 밖에서도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그럼 지구에서 딸 렉스는 누가 돌볼까. 아픈 몸도 몸이지만 맷은 지구에서 아틀라스호를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맷은 아틀라스호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해결사처럼 나타나 솔루션을 내놓는다(누가 보면 맷이 주인공인 줄).
렉스를 엄마처럼 돌보는 건 에마, 맷과 함께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았던 멀리사다. 멀리사는 임신 때문에 훈련에서 중도하차하고 싱글맘이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다. 멀리사는 지상 지원군으로 에마의 가족을 돌본다. 결국 돌봄 노동은 모두 여성의 몫이 된다.
화성 탐사라는 ‘임무’와 남편과 아이로 대표되는 ‘가정’은 에마 삶의 중요한 두 축이자,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우주선 안에서의 삶과 지상에서의 삶을 끊임없이 교차하며 비슷한 비중으로 보여준다.
극 초반, 여유롭고 리더십 넘치는 모습을 보이던 에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점 지쳐간다. 우주선이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자신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사실 에마는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다. 멀리사가 임신과 함께 훈련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두려움은 더 커진 상황. 에마는 맷에게 소리친다.
“애가 있으면 넌 더 훌륭한 우주 비행사가 돼.
넌 점수가 오르고 여자는 점수가 깎여.”
이 장면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우주인만 그런 건 아니다. 아이가 있는 남성은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더 충성스럽게 일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아이가 있는 여성은 아이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노동자가 된다.
실제로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책임감은 번번이 에마의 발목을 잡는다. 팀원들은 에마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리더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기도 한다.
우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60대 우주 비행사 포포프는 가족과 임무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비행하느라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아내를 잃었고, 하나밖에 없는 딸의 사랑과 신뢰를 잃는다. 그는 딸에게 평생 사죄를 구하며 살아간다.
에마에게 가족은 걸림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된 임무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에마는 말한다. 비행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화성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더 많은 게 있는지 몰랐다고. 얼마나 많은 게 기다릴지 몰랐다고. 엄마로 살아가는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아틀라스호에는 또 한 명의 엄마 우주인이 있다. 중국 출신 화학자 '왕루'. <어웨이>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루를 선택하겠다.
우주에서도 “지구를 움켜쥐고 있는” 에마와 달리 루는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루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지구에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온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아틀라스호에서 루와 에마는 강력한 긴장관계를 형성했다가 여성들만의 연대를 보여준다. 중국의 강력한 국가주의에 순응하던 루는 의외의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루는 정말로 똑똑하다.
마지막 비행을 앞두고 루는 마음속 두려움을 숨긴 채 아들에게 웃으며 영상 편지를 보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엄마는 이 일을 사랑해.
엄마는 네가 이만큼 행복한 일을 찾으면 좋겠어.”
김초엽의 <나의 우주 영웅에게>는 재경처럼 우주인 후보로 선발된 가윤이 이모를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윤은 한때 재경을 보며 우주의 꿈을 꾸던 소녀였고, 이제 재경 다음에 온 사람이 되었다.”
엄마 우주인이 등장하는 <어웨이>를 보며 어떤 소녀들은 우주를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배경으로 한 더 많은 여성, 엄마 서사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Written by. 에디터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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