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마가 궁금해서] 영화 <벌새>의 숙자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엄마. 납작한 모성이 아닌 다양하고 풍부한 엄마의 서사를 발굴합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 있으면 언제든 마티 채널 댓글 통해서 추천해주세요.
“엄마, 어엄마! 이것 좀 봐.”
“엄마! 핸드폰 그만 보고 이것 좀 보라니까.”
5살이 되면서 아이는 감정이 부쩍 섬세해졌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관심과 애정을 갈구한다. 아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엄마가 자기를 안 봐주는 거다. 함께 놀던 엄마가 또다시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자 아이는 시무룩해져서 말한다.
“엄마, 여기로 좀 와봐.”
“엄마, 나는 엄마 보는데 엄마는 왜 나 안 봐.”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지금 아이 모습이 꼭 어릴 적 내 모습 같아서.
“엄마! 어엄마!” 영화 <벌새>는 중학생 은희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시작한다. 가게 운영하랴, 세 아이 키우랴. 엄마는 늘 지쳐 보인다. 구멍 난 스타킹, 까칠해진 발 뒤꿈치, 어깨에 덕지덕지 붙은 파스. 김보라 감독은 몇 가지 디테일만으로 엄마의 서사를 충분히 상상하게 만든다.
엄마는 바쁘다. 은희가 오빠에게 맞았을 때도, 친구의 배신에 상처 받았을 때도, 은희 귀 뒤쪽에 혹이 나서 검사를 받아야 할 때도, 수술 뒤 병실에서 회복을 할 때도 엄마는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 엄마의 고단함을 아는 은희는 엄마에게 말을 아낀다.
방앗간에 단체 주문이 들어와 일이 많은 날, 은희네 3남매는 새벽부터 부모님의 일을 돕는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은희는 벌겋게 달아오른 열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이 고되고 힘든 일을 엄마 아빠는 매일 같이 반복하며 가정을 일궜다.
영화에는 유독 은희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웃음도 대화도 없이 밥만 먹는 가족을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는 저 많은 음식을 언제 다 했을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밥상을 차리고 치웠을까.
엄마의 이름은 ‘숙자'. 딱 한번 이름이 나온다. 어느 날 밤, 외삼촌 그러니까 엄마의 오빠가 갑자기 집에 찾아온다. “내 고등학교 학비 때문에 숙자가 공부를 못 마친 게 평생 한이야. 숙자가 머리가 참 좋았거든. 학교 갔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엄마는 멋쩍게 웃는다. 그 후 숙자라는 이름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은희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두 번째 장면에서 엄마는 고개를 들어 어딘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은희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아무리 엄마 하고 불러도 엄마는 은희를 바라봐주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 엄마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아니라 숙자가 된 것 같다. 공부 열심히 하는 여대생이 돼서 무시도 안 당하고 영어 간판도 잘 읽고 싶었던 숙자가.
나도 은희처럼 엄마를 애타게 부르던 아이었다. 부업을 하다 창업을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됐다, 주로 생계 때문에 엄마는 늘 뭔가를 하고 있었고 뭔가를 하고 싶어 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즈음, 엄마가 동네 사거리에 김밥 집을 차린 적 있다. 엄마가 싸준 김밥을 들고 할머니와 함께 소풍을 가면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뒤, 엄마는 가게를 접었고 그 후 한 번도 김밥을 싸주지 않았다.
“엄마, 근데 그때 가게 왜 그만뒀어?”
“K(남동생) 다섯 살 때 유치원 보내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더라고. 뭐라도 하고 싶었어. 근데 K가 유치원에서 크게 다친 거야. 그거 보고 바로 접었지. 그때는 그렇게 뭐가 하고 싶더라.”
엄마는 자주 말했다. 엄마에게는 엄마 인생이 있는 거라고. 네가 할 일은 스스로 하라고. 엄마는 내가 하는 말에 영혼 없이 반응했고 대화는 뚝뚝 끊겼다. 엄마의 마음은 늘 다른 데 가 있는 것 같았다. 좀처럼 만져지지 않는 엄마의 사랑을 나는 꽤 오래 의심했다.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다. 아이와 노는 건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3n살 어른에게는 하나도 재밌지 않다. 무한반복 역할극을 하는 것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는 것도, 사소한 것 하나에도 오버하며 폭풍 칭찬을 하는 것도. 가끔 아니 자주 힘겹다.
아이에게 집중하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걸 알지만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집은 늘 엉망이고 저녁도 차려야 하고 빨래도 개야 하고 어린이집 일정도 챙겨야 하고 일에 대한 고민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아이랑 노는 게 어렵다. 아이가 잠들 시간만 기다리게 된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 또 후회하게 될 거면서. 몸은 아이와 함께 있는데 마음이 자꾸만 콩밭을 맴돈다. 이제 아이는 그걸 귀신 같이 알아챈다.
은희 엄마가 은희를 바라봐주는 순간이 있다. 영화 후반부,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은희에게 엄마는 감자전을 해준다. 김보라 감독과 앨리슨 백델의 대담(책 <벌새>)에서 백델은 이 장면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엄마가 은희를 문자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갓 구운 감자전을 후후 불어가며 입 속에 집어넣는 은희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이 예쁜 것을 두고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가슴을 쓸어내리지는 않았을까. 내가 아이에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은희를 바라봐주지 않는 동안, 은희의 일상에는 전쟁이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울기도 하고 엄마만큼 좋은 사람을 만나 한없이 행복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세상이 온통 반짝반짝 빛났다가 어떤 날은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고 싶어지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건 은희를 키우는 게 엄마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라고 단호한 눈빛으로 말해주는 영지 선생님이 있고, “진단서가 필요하면 말하라"는 의사 선생님이 있다. 병실에 홀로 있는 은희를 챙겨주는 여자들이 있다. 킥킥 대며 손글씨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 크고 작은 재난 속에서 은희는 조금씩 자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영지의 편지 중
엄마, 하고 아무리 불러도 바라보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고 미운 아이의 마음을 안다. 엄마가 되어서도 나만의 세계를 바라보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이제는 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다.
Written by. 에디터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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