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화관]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된 것들 <레이디 버드>
“엄마 나빠! 엄마 싫어! 엄마 저리 가! 엄마 때릴 거야! 엄마 없어져 버려! 엄마 버릴 거야!”
아이가 세 살 때였다. 아이는 두 돌이 지나자 갑자기 엄마 거부 증상을 보였다. 처음에는 “날날아 엄마한테 왜 그래, 엄마 그럼 속상해”하며 달래 봤다가 “날날아!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화도 내봤다.
그럼 아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 하며 안겼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도끼눈을 뜨고 또다시 엄마를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보통 애들은 엄마만 찾는데 얘는 아빠~ 아빠~ 아빠 보고 싶어~하고 울더라고요”
어린이집 선생님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아빠만 찾았다. “아빠가 없어서 기분이 안 좋아” “아빠가 보고 싶어” “아빠는 어딨어?” “아빠 언제 와?”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처음에는 솔직히 좋았다. 아빠랑 자겠다고? 땡큐지. 너 정말 효자구나 ^^
모진 말이 반복되자 마음이 아리고 쓰렸다. 3살 아이가 사심 없이 하는 말인 걸 아는데도 진심으로 화가 나고 서운했다. 이유 없이 미움받는 서브 여주가 된 느낌이랄까. 아빠에게 찰싹 붙어 “엄마 가!” “엄마 나빠!”를 연발하는 아이가 미웠다.
하루는 아이가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달래 보려 해도 아이는 아빠만 찾으며 엄마를 밀어냈다. 까무룩 겨우 잠이 든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도 엄마를 완강히 거부했다. 엄마는 방에 들어가라고 문을 쾅 닫고, 조그마한 손으로 엄마를 때렸다. 악. 진심으로 아팠다.
“엄마도 너 싫어! 앞으로 어린이집 안 데리러 갈 거야!”
내 안의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했다. ‘자식새끼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더니 벌써 그걸 몸으로 보여주는 건가?’ 싶었다가, 내가 이 꼴을 당하려고 그 고생을 했나 회의가 밀려왔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통 주사도 없이 4kg 넘는 애를 낳다 죽다 살아난 기억부터 만성 피로와 만성 통증으로 점철된 그간의 고난이 머릿속에서 빨리 감기로 재생됐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주말 드라마 아님…).
결국 그날 아침 나는 집을 나갔다. 가출이었다. 너 좋아하는 아빠랑 잘 있어라.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문을 쾅 닫았다.
가출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원 시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는 영상을 틀어주고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주책맞게 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날날이가 엄마 싫다고 그랬잖아. 엄마도 날날이 싫어. 니가 좋아하는 아빠랑 놀아”
아이는 내 품을 세차게 파고들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야!!! 나 엄마 좋아! 아빠 싫어!”
서른여섯 짤이나 먹은 나는 내 나이의 반의반도 안 되는 작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협박을 일삼는다.아이의 의미 없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진심으로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한다. 내 옹졸하고 못난 민낯을, 내 밑바닥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나도 우아하고 쿨한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게 육아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도무지 그게 안 된다. 내 안의 괴물이 계속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도 나처럼 이랬을까.
엄마와 딸의 미묘한 애증 관계를 잘 그려낸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학교에서 정학을 맞은 크리스틴에게 엄마는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동안 크리스틴에게 서운했던 것, 불만이었던 것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고개 푹 숙이고 저자세를 취하고 있던 크리스틴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반격한다.
“다 얼마야?”
종이와 펜을 꺼낸 크리스틴은 눈을 똑바로 뜨고 말한다.
“나 키우는 데 얼마 드는지 말하라고. 그럼 더 커서 돈 많이 벌면 그동안 빚진 거 갚고 인연 싹 끊어버릴 테니까.”
그러자 엄마의 반격.
“넌 그만큼 돈 벌 직장 구하지도 못해”
이 장면에서 뜨끔했다. 누가 나랑 엄마랑 싸우는 거 찍은 거 아니지.
크리스틴과 매리언처럼 나와 엄마도 서로에게 늘 생채기를 내는 관계였다. 일부러 엄마가 속상해할 말을 쏙쏙 골라서 해놓고는 엄마가 내게 상처를 주면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엄마가 돼서 그럴 수 있냐고. 엄마는 엄마 자격이 없다고. 그럼 엄마는 말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네가 이상한 거라고. 너 같이 유별난 딸 키우는 거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크리스틴. 크리스틴이 자신과 상의도 없이 뉴욕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는 사실을 안 엄마는 분노한다. 크리스틴이 홀로 집을 떠나는 그 날까지도 엄마는 크리스틴과 말을 섞지 않는다.
크리스틴을 데려다주러 공항에 가는 길. 굳은 표정의 엄마는 역시나 아무 말이 없다. 주차비가 비싸다며 공항에 함께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뒤늦게 공항으로 뛰어 들어가지만 이미 크리스틴은 떠난 후다. 뉴욕 기숙사 방에 도착한 크리스틴은 아빠가 챙겨준 엄마의 편지를 읽는다.
시작만 하고 끝은 맺지 못한 편지에는 엄마의 진심이 토막토막 담겨 있다. 편지를 전해준 아빠는 철자나 문법이 틀리면 크리스틴이 흉볼까 봐 엄마가 끝내 편지를 못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어른이 그러면 안 되지, 특히 엄마는 그러면 안 되잖아. 늘 나만의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엄마를 평가했다.
엄마가 되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가 되지 못할까 두려웠다. 내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나를 평가하고 원망하게 될까 봐.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내가 될 수 있는 나는 너무 달랐다.
세 살 아이의 말 한마디에 울며 가출하던 날, 나는 내 그릇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절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어른이라는 걸.
영화에는 크리스틴과 엄마가 함께 쇼핑하는 장면이 나온다. 옷이 안 맞는다는 딸에게 그러게 파스타를 한 접시만 먹지 그랬냐고 말하는 엄마. 딸이 핑크 드레스를 입고 나오며 마음에 든다고 하자 너무 핑크 아니냐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엄마.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돼? 난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
“근데 좋아하냐고?”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이라고 말하는 크리스틴의 대사를 들으며 나는 울었다. 엄마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너무 잘 아니까.
동시에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예쁘다고 말해주지 못하는 마음도, 철자가 틀릴까 봐 편지를 전해주지 못한 마음도, 입을 앙다물고 공항에 들어가지 않은 마음도.
서툴고 우스꽝스러워도, 어쩌면 그게 엄마에게는 최고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아이에게 그런 것처럼.
이 글은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 에디터 홍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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