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화관] 오늘도 '낮버밤반'하는 당신에게, <툴리>
감기에 걸린 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유난히 떼를 많이 썼다. 어린이집 하원 한번 하는 게 전쟁이다. 친구집 따라가겠다, 잠바 안 입겠다, 징징대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 문밖으로 나왔다. 문앞에서 같은 어린이집 아빠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놀란 표정으로 나와 아이를 바라본다.
아니, 그런데 애가 왜 맨발이에요?
맙소사. 신발을 안 신겼네. 다시 어린이집 현관에 갔더니 신발장에서 분홍색 신발을 꺼낸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이즈가 크다. 다른 누나 신발인가 보다. 애는 말을 안 듣고 나는 정신이 나갔고. 화가 불쑥 올라온다.
이게 왜 니 신발이야. 이거 누나 신발이잖아.
신발 주인 불러와? 왜 남의 신발을 신어!
아이를 윽박지르고 겨우 신발을 신겼다. 집에 가는 길에도 아이는 안 걷겠다며 길바닥에 주저앉고 드러눕고. 나는 몇 번이나 심호흡 하고 소리를 지르고. 10분 거리가 30분처럼 느껴진다.
그날 밤 아이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계속 토닥토닥 하다가 나는 아예 잠이 달아나 버렸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거실로 나왔다. 새벽 3시. 아이가 못 자는 게 아이 잘못도 아닌데, 나는 또 화가 난다. 잠이 부족하고 피곤하니 안 그래도 부족한 참을성이 소멸해 버렸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나는 왜 저 작은 아이에게 이리도 관대하지 못할까. 좋은 엄마는 못 돼도 좋은 사람은 되고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자책하던 날, 영화 <툴리>를 만났다. 나는 많이 울고 또 울었다. <툴리>를 추천하는 세 가지 이유.
영화의 첫 장면은 만삭의 마를로가 솔로 아들 조나를 마사지 해주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엄마와 아이. 화면 가득 햇살이 비친다. 가슴 뭉클하다. 하지만 육아의 아름다움은 잠깐(그럼 그렇지), 곧바로 현실 육아가 이어진다. 맙소사. 애가 하나 더 있다. 전쟁 같은 등원·등교 준비. 시간 없는데 신발 안 신는다고 떼쓰는 아이, 소리 지르는 아이. 엄마는 쉼호흡 하며 화를 참는다. 그러다 샤우팅 폭발.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8살 6살 두 아이에 계획에 없던 셋째까지. 남편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마를로는 위태로워 보인다. 게다가 둘째 조나는 예민하고 다루기 어려운 아이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를 1대1로 돌봐줄 전담 교사를 고용하라고 한다. 교사를 구하는 것도 돈 주는 것도 모두 마를로가 직접. 벅찬 현실에 마를로는 패닉에 빠진다.
그 와중에 셋째는 울음을 멈출 생각을 안 한다. 모든 게 뒤죽박죽,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일상. 아이도 내 맘 같지 않고 내 맘도 내 맘 같지 않은 육아. 이건 정말 100% 리얼 현실이다. 우는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 놓고 차 밖에서 외마디 욕을 내뱉는 마를로. 막막함과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 눈물이 났다.
신생아를 키울 때 가장 힘든 건 고립감이었다. 눈 뜨면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우는 거 달래고(+젖 짜고). 밤새 또 젖 먹이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우는 거 달래고(+젖 짜고).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된다. 아이와 떨어질 수 없으니 외출도 친구와 커피 한 잔도 쉽지 않다. 여기에 마를로는 돌봐야 할 두 명의 아이까지 더 있으니 오죽할까(여기에 전혀 도움 안 되는 남편까지...).
똑같이 아이가 셋이지만 마를로 오빠네 부부의 삶은 여유로워 보인다. 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우아하게 밥 먹고 취미 생활을 즐긴다. 야간 보모를 구해준 것도 부자인 오빠다. 처음에 야간 보모를 뜨악해 하며 마를로는 말한다. 인생을 하청처럼 맡길 수는 없다고. 혼자서는 벅차지만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는 않은 마음. 마를로의 고민이 이해가 갔다.
그러다 마를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야간 보모’ 툴리에게 연락한다. 밤에만 아이를 봐주는 보모라니. 게다가 육아도 살림도 베테랑이다. 툴리는 말한다. 나는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돌보러 왔다고. 툴리는 마를로의 손이 되어주고 말벗이 되어준다. 마를로는 생기를 찾아간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우울감에 시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그렇게 거창한 도움이 아니다. 아이와 엄마를 잠시라도 분리해주고, 힘들지,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
툴리는 마를로에게 말한다. 아이가 밤새 자라서 아침이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아이는 정말 빨리 자란다. 정신을 차려 보면 저만치 커 있다. 그런데 육아의 버거움은 종종 육아의 기쁨을 압도한다. 오늘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좀 더 잘해줄 걸’ 후회한다. 내일이면 또 아이에게 화를 내겠지만.
대부분의 육아 이야기는 ‘기승전-그래도 사랑해’로 끝난다. ‘아이 키우는 게 정말 힘들지만 그럼에도 엄마가 된다는 건 숭고한 일이고 나는 아이를 사랑한답니다.’ 하지만 <툴리>는 육아를 아름다운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로가 되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매일 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구나.
나는 내 자신을 좀 더 보듬어 주기로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
1. 싱크로율 100%, 현실육아가 궁금하다면
(feat. 샤를리즈 테론 현실연기)
2. 오늘도 ‘낮버밤반(낮에 버럭하고 밤에 반성한다)’했다면
3. 남편에게 육아는 '돕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