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장]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그런 책이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화자에게 나를 계속 대입해 보게 되는 책. 두고두고 곱씹어보게 되는 책.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 여운이 더 많이 남는 책. 그런데 그 화자가 60대 엄마다.
소설 <딸에 대하여>의 화자는 30대 딸을 둔 엄마다. 남편은 몇 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대학 강사 일을 하는 딸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집에 들어온다. 딸의 동성 연인이다.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애인. 세 여자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소설은 딸이 엄마에게 목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이럴 때 엄마한테 말하지 누구한테 말해”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딸. 늙어버린 엄마에게 남은 건 남편이 남기고 간 집밖에 없는데, 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라니. 엄마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책을 읽는 내내 참 많이 찔렸다. 소설 속 ‘망할 년’이 꼭 나 같아서. 자식으로 태어난 걸 대단한 권리인 줄 알고 너무 당당하게 엄마의 희생을 요구하는 딸. 저 혼자 잘 나서 큰 줄 알고, 모든 게 제멋대로에, 엄마랑은 제대로 대화도 하지 않는 딸. 나 같은 딸을 키우는 심정은 이랬겠구나,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딸에 대하여> 감상 포인트 셋.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딸에 대하여> p.83-84(e북)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드라마 속 엄마의 클리셰. 참 싫었다. 왜 엄마는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걸까. 그게 얼마나 자식을 숨 막히게 하는 건지 모르는 걸까. 나는 절대로 그런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엄마 나빠! 제일 나빠!” 얼마 전 3살 아이가 떼를 쓰며 그 작은 손으로 나를 때리는데 불쑥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너를 키웠는데...라는 익숙한 대사가 나오는 걸 꾹 참았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이가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제 발로 서고 걷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도 아이는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아이는 내 삶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는 자신의 시간과 정성과 체력과 돈을 아이에게 쏟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도. 부모 자식 관계가 좀처럼 쿨해지기 어려운 이유다. 부모는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자식이 곧 내가 된다.
출산 전까지만 해도 아이 인생과 내 인생은 명백히 별개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라고. 아이가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고 나오는데도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부모가 되겠다’며 빨리 나오라는 소리도 안 할 정도였다. 배 속에 있을 때 태담도 안 했다. 아이에게 부담 될까봐.
아이에게 내 욕망을 투영하지 않으리라,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지 않으리라,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하리라.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p.163(e북)
예전 같았으면 참 숨 막혔을 이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소설 속 엄마는 딸에게 레인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온 힘을 다해 부정하려 한다. 자신의 딸이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달라는 억지를 부리며 레인에게 떠나 달라고 애원한다. 딸을 지켜줄 수 있는 건 가족인 자신 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면서 엄마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엄마는 평생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헤아리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자신의 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엄마는 그런 자신이 싫다.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부끄러워한다는 건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동시에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딸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죄책감을 느낀다.
소설을 읽으며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나도 소설 속 엄마 같은 ‘흔한 엄마’가 될까봐 두려웠다.
벌써부터 나는 종종 아이와 나를 동일시한다. 아이가 세상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곧 내 모습이라고 착각한다.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라는 말로 아이를 통제하려 한다. 이러다 나도 아이에게 내 권리를 주장하게 되는 게 아닐까.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p.241-242(e북)
사실 엄마는 이미 알고 있다. 딸이 자신의 품을 떠나버렸다는 걸. 아무리 꾸짖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딸에게는 딸의 인생이 있다는 걸. 하지만 그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나도 알고 있다. 내 기준으로 옳고 그른 것을 하나하나 가르치던 아이는 어느 순간 내 기준에 반기를 들 것이다. 나 역시 우리 엄마에게 그런 딸이었다. 세상이 변했다고, 엄마가 틀렸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나도 이제 성인이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제 새끼 태어나니 수시로 엄마를 찾는다. 왜 좀 더 나를 도와주지 못하냐고 원망한다.
내 품에 있는 작은 아이도 언젠가 커서 나 같은 자식이 될 것이다. 솔직히 두렵다.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는 말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나 같은 딸을 30년 넘게 키우고 있는 엄마는 어떤 심정일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좋은 딸이 되었냐면 그럴 리가 없다. 깨달음은 잠깐이다.
소설을 쓴 김혜진 작가는 83년생이다. 김혜진 작가는 인터뷰에서 “엄마(부모)는 자식인 딸에 대해 이해하고 싶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딸을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를 낳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지만, 너무 가깝기에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타인에게는 기꺼이 베푸는 소통과 배려를 까맣게 잊은 채 자꾸만 생채기를 내게 되는 사람.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멀어졌다가도 결국에는 다시 찾게 되는 사람. 엄마는 내게 어떤 존재일까.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딸에 대하여> 덕분에 나는 엄마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게 됐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
1. (나처럼) 싸가지 없는 딸이라면
2. 내 자식도 나 같을까봐 겁난다면
3.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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