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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Dec 23. 2018

4.14kg '쌩'으로 자연분만, 내가 왜 그랬을까

[엄마발달백과] 3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엄마발달백과-출산편②]


안녕하세요. 에디터 홍입니다. 


음악 먼저 한 곡 들으며 시작할까요. 



‘Drive It Like You Stole It’. <원스>, <비긴 어게인>을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 <싱스트리트> OST입니다. 듣기만 해도 신나고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노래인데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이 동작이 떠올라요. ‘합장합족’. 일명 개구리 자세라고 하는 건데요. 바닥에 드러누워 양 손바닥을 가슴 앞에 모으고, 양 발바닥도 마주치게 모아줍니다. 그리고 양손과 양발을 동시에 쭉쭉 뻗었다 당겼다를 반복합니다. 헛둘헛둘. 


헛둘헛둘


합장합족은 대표적인 순산운동인데요.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미친 듯이 개구리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36주 막달 검사에서 아기 몸무게가 이미 3kg대라 아이가 빨리 나왔으면 했거든요. 머리는 헝클어지고 허리가 점점 아파옵니다. 땀이 막 쏟아져요. 그래도 1초에 하나씩 헛둘헛둘. 


그래서 애가 빨리 나왔냐고요? 예정일을 한 주 넘기고, 아이는 4.14kg로 태어났어요. 무통 주사 없는 자연분만이었어요. 

 


도전자연분만 


대부분의 산모들이 그렇듯 저도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었어요. 제가 출산한 병원은 제왕절개 비율이 10%대인 곳이었어요. 자연스러운 출산을 추구하는 곳이었고, 불필요한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료도 다른 병원의 절반밖에 하지 않았어요. 


대신 한번 병원을 찾으면 아이의 상태에 대해 30분 넘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비상상황에는 원장님과 바로 소통할 수 있었어요. 당연히 병원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됐지만 그만큼 원장님의 철학이 확고한 곳이었어요.  


의료적 개입을 줄이는 대신 의사가 강조한 건 산모의 노오오력이었어요. 의사는 자연스러운 출산을 위해 순산운동을 강조했어요. 산모수첩에는 ‘순산을 위한 운동일지’ 페이지가 따로 마련돼 있었어요. 거기에 매일매일 어떤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기록했어요. 


매일 1만보를 걸었고(무릎 다 나갔어요...도가니야...), 일주일에 두 번은 문화센터에서 요가수업을 들었어요. 문화센터에 가지 않는 날도 집에서 동영상을 틀어놓고 순산요가를 했답니다. 심지어 태교여행 가서도 숙소에서 요가를 했어요.  


의사는 체중관리도 중요하다고 했어요. 아이가 4.14kg로 태어났는데 제 몸무게는 41주 동안 11kg가 늘었어요. 매일매일 다이어트 하는 심정으로 체중계에 올랐고, 칼로리 하나하나 체크하며 음식을 먹었어요. 제 평생 그렇게 혹독한 다이어트는 처음이었네요. 


마지막에는 소화가 안 돼서 음식을 거의 못 먹었는데 그때 제 사진을 보면 뭔가 울고 싶어집니다. 너무 불쌍해서요. 피골이 상접한데 배만 볼록 나온 모습. 저는 환상 속의 ‘유니콘 임신부’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 맘대로 안 되는 출산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글쎄... 예정일이 다 돼 가는데 애가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예정일 한 달 전부터 출산휴가를 내고 집 정리 다 하고 출산 준비도 다 해놨는데, 책이고 영화고 보다보다 지쳐서 심지어 미드 <브레이킹 배드> 시즌 5까지 다 달렸다고요.


아가야, 난 준비가 됐어


예정일을 결국 넘기자 저는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미친 듯이 출산후기를 찾아봤어요. 산모들 사이에서 유도분만으로 진통 끝에 제왕절개한 케이스는 ‘최악’으로 통하더군요. 출산후기에 느껴지는 그 열패감이란... 저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어요. 실패하게 될까봐. 


아이는 조금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40주 5일. 유도분만 날짜를 잡아서 병원에 갔는데 자궁문이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네요. 의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도분만을 하면 고생 끝에 수술할 확률이 높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산모가 순산운동을 열심히 해왔다면 아이가 크더라도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저는 출산가방을 도로 들고 나왔어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출산은 아이가 결정하는 거라고요. 자연분만은 저만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아이의 상황과 제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해요.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면서 저는 깨달았어요. 아이를 낳는 건 결코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지금 생각하면 그건 앞으로 시작될 육아의 복선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와 관련해서는 그 무엇도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없더군요. 



짐승의 시간 


저는 평생을 ‘범생이’로 살아왔어요. 제가 열심히 최선을 다 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어요. 출산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연분만을 못하면 실패자가 되는 거라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우리나라 제왕절개 비율이 45%라고 해요(2017년 기준). 두 명 중 한 명은 제왕절개를 하는 거죠. 누구나 자연분만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산모들에게 자연분만이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는 걸까요. 모유수유도 마찬가지고요.


40주 6일. 그토록 기다리던 이슬이 비쳤고, 양수가 새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는... 아, 그건 정말 짐승의 시간이었어요(누가 출산을 아름답다고 했나요). ‘그냥 나중에 낳으면 안 될까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더구나 제가 다니는 병원은 자연스러운 출산을 추구하는 병원이었기 때문에 무통주사를 놔주지 않았어요. 무통주사를 맞게 되면 아이와 산모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될 수 있고 수술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였죠. 출산에는 어느 정도 고통이 필요하다는 원장님의 철학도 있었어요(축구선수 이영표님이 떠오르네요). 


출산 전만 해도 저는 제가 다 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엄마니까! 하지만 저는 원래 고통을 잘 못 참는 인간이에요. 조금만 아파도 약을 먹고 병원을 찾아야 해요. 엄마가 된다고 해서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더군요. 제발 타이레놀이라도 한 알 꿀꺽 삼켰으면 하는 심정이었어요(지금도 타이레놀을 먹을 때마다 저는 분만실을 떠올립니다). 


난산 끝에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문제는 저였죠. 출산 직후 철분이 부족해서 두 번이나 쓰러졌고, 회복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어요. 조리원에서는 거의 좀비처럼 살았어요. 조리원에서 만난 제왕절개 산모가 그러더군요. 이렇게 아픈 걸 못 참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애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냐고. 마사지실 이모님은 제가 이 조리원에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산모라고 말하더군요. 집에 가서 애 어떻게 키울지 걱정된다고.

 


자연분만이 뭐라고  


자연분만이 뭐라고(출처 : unsplash)


조리원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저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나는 무통주사도 맞지 않고 4.14kg 남자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뭔가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남들도 다들 대단하다고 했고요. 이후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제 출산 과정을 다시 되돌아보게 됐어요.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 p.151


임신과 출산 과정을 생각하면 저는 제 자신이 참 안타까워요. 자연분만이 뭐라고 그렇게 내 자신을 괴롭혔을까. 자연분만은 금메달, 제왕절개는 동메달도 아닌데 무슨 올림픽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제 자신을 채찍질 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한 친구는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하자 시어머니가 그랬다더군요. 네가 뭐가 부족해서 자연분만을 못하냐고. 루저가 된 것 같아 속상하다는 친구를 보는데 제가 다 마음이 아팠어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자연분만, 제왕절개. 지나고 나면 다 상관없어. 제일 중요한 건 산모와 아이 건강이야.”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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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발달백과 - 출산편 ①]


[엄마발달백과 - 출산편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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