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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Dec 30. 2018

둘째 출산은 쉽냐고요? 유서 썼습니다

[엄마발달백과] '출산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엄마발달백과-출산편③]


첫째 잘 낳았잖아, 둘째 낳는 건 쉽지 뭐


둘째를 임신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입니다. 제가 첫째를 비교적 순탄하게 분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전 첫째를 낳을 때도 쉽지 않았고 둘째 출산을 앞두고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정말 많이 어려웠죠. 출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후기를 봐도, 안 봐도 출산은 무서워


처음으로 임신을 하고 가장 많이 한 일은 출산 후기를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죠.


손가락 하나 굵기만 한 질로 수박이 나오고, 그에 앞서 생리통의 백배가 넘는 진통도 겪어야 한다더군요. 도저히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겪은 이들을 통해 출산 과정의 면면을 미리 숙지하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열심히 출산 후기를 찾아 읽었죠.


의식적으로 '성공 후기'를 더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무통주사'를 맞고 큰 통증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람, 딱 세 번 힘을 줬는데 아이가 '쑴풍' 나왔다는 사람… 매일 밤, 탈 없이 아이를 잘 낳았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나도 별일 없이 잘 될 거야'라고 스스로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열 개의 순산 후기를 보아도 한 개의 난산 후기 때문에 몇 날 며칠 불안함에 끙끙 앓기까지 했습니다.


후기를 찾아보았던 애초의 목적은 완전히 방향을 잃었습니다.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았고 전 제가 처하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사서 걱정하는 심신미약 임산부가 됐습니다.


출산은 잘 했느냐고요? 첫째 아이가 끝까지 머리를 위쪽으로 하고 있던 바람에 결국 전 제왕절개 분만을 했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보았던 자연분만 출산 후기들은 마지막까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보고 또 보고 출산 후기 (출처 : pexels)


차마 털어놓지 못한 두려움


제왕절개 분만이 결정된 날, 제가 처음으로 한 일 역시 '제왕절개 출산 후기'를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수술 절차 중 병원에선 얘기해주지 않는 직접 겪었던 산모들의 유용한 팁 정도만 찾아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전날 입원해서 불편하게 있는 것보단 편하게 집에서 쉬고 아침에 입원하는 걸 추천한다, 수술실에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간다, 수술할 때 무서우면 옆에 계신 선생님들께 얘기해도 된다’같은 것들이었죠.


그리고 후기를 읽으며 두려움을 키우는 것보다 나의 두려움을 직접 써보기로 했습니다.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궁극적으로 다시 눈을 뜨지 못하게 될 수도, 어쩌면 신체 일부를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해서 가진 아이인데 이 아이를 낳으면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산을 코앞에 두자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걷잡을 수없이 몰려왔습니다.


불의의 분만사고를 왕왕 접했습니다. 가깝게는 주변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고도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 모성사망자 수는 2015년 38명, 2016년 34명, 2017년 28명(출처 : 2017년 사망원인통계, 통계청)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임신·출산 과정에서 수십 명의 여성이 사망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내가 이 현실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완전히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삶을 잃고 싶지 않은 원초적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겠죠. '내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시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차마 나의 순산을 기원하고 있는 가족과 지인들 앞에서는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 앞두고 쓴 유서


전 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유서를 쓰기로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말이 유서라 그렇지 지금 그리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한자 한자 써 내려가며 해소하기에 좋은 형식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습니다.


"제왕절개 수술 5일 전, 사실 지금 난 많이 무서워요.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에요.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어서 나만 보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이 글을 보는 일이 없길 바라며 씁니다."
"나와 아이, 둘 중 나를 포기한 상황이라도 너무 슬퍼 말아요. 우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아마도 응급 상황에서 아이가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았던 것이겠죠.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게 중요한 상황, 이해해요. 부디 아이는 건강하길 바랄 뿐이에요."


유서,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써 내려가며 해소하기에 좋은 형식. 전 맥북으로 썼습니다만... (출처 : unsplash)


지금 보니 아이 적금, 남편의 재혼 허가(?), 나의 장례 절차 등 너무 솔직하고 현실적인 얘기들도 많아 오글오글 부끄럽기도 하네요.


"아이 적금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달에 10만 원씩 꼬박꼬박 넣어주세요."
"남편, 날 그리워하는 건 1년이면 충분해요. 그리고 꼭 다시 좋은 사람 만나길. 1년도 못 채우는 건 아니겠지..."
"나는 화장해서 반은 바다에 반은 바다가 보이는 나무에 뿌려주세요. 어느 바다든 괜찮은데 가족들이 자주 놀러 올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부담 주는 건가?ㅎㅎ 바다 보이는 수목장이 너무 비싸면 바다 근처도 콜."


하지만 유서를 쓰는 동안 아이를 갖는 과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난 당신이 좋고, 아이도 좋아요. 우리 아이를 키우는 게 참 많이 힘들겠지만 당신도 그 길에 함께이기에 큰 고민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었어요. (중략) 알다시피 난 잔정이 많아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걸 좋아하잖아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겠죠. 우리 아이에게도 대가 없는 순수한 사랑을 마음껏 주고 싶었어요."
"아이가 커갈수록 현실은 더 팍팍해질 수도 있겠지만 부모라는 또 하나의 자아를 갖게 됨으로써 우리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어요. 물론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겠죠.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라는 신세계가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난 신세계 안에서 일어날 치열한 사유와 고민 같은 것들이 기다려졌어요. 그런 것들이 날 설레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거든요."
"내가 없어도 아이를 많이 사랑해줘요. '엄마가 없는 아이'로 불쌍히 여기지 말고 '아빠도, 할머니·할아버지도, 이모·삼촌도 있는 아이'로, 사랑이 충만한 아이로 보살펴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았어도 엄마만 중요한 아이로 자라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만,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진 꼭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둘째 출산을 앞두고도 나의 두려움은 여전했습니다. 앞선 경험이 있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감쇠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분만과 수술 중 불의의 상황에 따른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역시 유서를 썼습니다. 다행히 가족들은 나의 유서를 읽지 않았습니다. 운 좋게도 내 두 번의 제왕절개 분만은 큰 탈 없이 잘 끝났습니다.


참, 작은 탈(?)은 있었어요. 둘째 출산 때 갑자기 양수가 터져 응급 수술을 했거든요. 그런데 하필 양수가 터지기 직전 음식을 먹은 바람에 수술 전 금식 시간 초기화. 팔자에 없을 것 같던 진통을 8시간 동안 쌩으로 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분만 과정에서 후기에 없는,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음을 꼭 염두에 두세요.


작은 탈(?), 8시간 쌩진통...


'쉬운 출산'은 없습니다


최근 둘째 출산이 임박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누가 봐도 아주 당찬 성격의 친구입니다. 온종일 깔깔대다 대화의 막바지가 돼서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는 그제서야 "나 사실 너무 무서워"라고 털어놓더군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애초에 '쉬운 출산' 같은 건 없습니다. 그 가능성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출산은 모든 여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합니다. 그래서 신성한 것일 테죠.


두려워하는 친구에게 "무서운 게 당연하다"며 "큰일이지만 꼭 잘 끝날 것"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나의 출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응원해준 사람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이 나의 순산을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을 땐 작은 말에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힘이 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낯설고도 두려운 인생의 새로운 기점을 앞둔 그들에게 괜한 힘 빠지는 농담이나 장난 혹은 겁주기 식 얘기보다는 진심이 담긴 작은 응원을 전하는 게 어떨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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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발달백과 - 출산편 ①]


[엄마발달백과 - 출산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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