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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an 13. 2019

가뭄 난 가슴... 모유 안 나오는 엄마에게 조리원이란

[엄마발달백과] 산후조리원이 진짜 천국이 되려면 ①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엄마발달백과-조리원편①]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주영입니다.

산후조리원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아빠와 아기? 엄마 품에 안겨 미소 띤 얼굴로 젖을 빠는 아기? 우아하게 차 마시며 몸을 추스르는 산모?

임신했을 때 산후조리원을 예약하면서 상상했습니다. 북유럽 인테리어로 꾸며진 이곳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 전문가의 관리를 받으며 편하게 쉴 저와 아기의 모습을요. 산후조리원이라는 이름처럼 출산으로 상한 내 몸을 보살필 줄 알았죠.

아이를 낳고 산부인과에서 퇴원하자마자 산후조리원으로 갔습니다. 예약해둔 방에 들어가니 침대 위에 반듯하게 접힌 분홍색 산모복이 있더군요. 라운드넥에 단추로 여미는 원피스였어요. 언제 일일이 단추를 달았을까. 저는 산모복 하나에도 미적 감각을 추구했구나 싶어 감동할 뻔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언제든지 가슴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라고 그렇게 만든 거였어요.
  

웰컴, 모유양성소


내가 상상하던 조리원은 이랬는데...(출처: unsplash)


제가 지낸 산후조리원의 하루는 대충 다음과 같이 흘러갔습니다.


기상-모유수유-아침(미역국)-유축-간식-모유수유-점심(미역국)-모자동실(아기 돌보기)-유축-간식-모유수유-저녁(미역국)-모자동실(아기 돌보기)-유축-취침-밤중 모유수유-취침-밤중 유축-취침-기상


저는 분명 몸조리하러 들어왔는데, 실제로 겪은 2주는 모유수유 성공을 위한 극기훈련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곳에서는 저는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고 단지 젖을 생산하기 위해 사육되는 영장류 동물인 것만 같았죠.

대다수의 일정과 프로그램은 젖 물리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모유수유 성공 비법, 모유수유 효능 교육, 모유수유를 위한 마사지... 한 연구에 따르면 산모 10명 중 9명은 산후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권장 받는다네요. 저도 그중 하나였지요.

엄마들은 고민할 겨를 없이 모유수유를 선택합니다.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제일 좋다고 하니까요. 모유에는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거의 다 들어 있어서 성장과 두뇌발달에 좋고, 면역을 증가시키는 물질이 많아서 병에 적게 걸린다고 합니다. 특히 엄마 품에 안고 모유를 먹이면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줘서 애착이 더 잘생기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아이로 자랄 수 있다 하니, 모유수유를 자발적으로 안 한다고 하면 이상한 엄마가 되기 십상이죠.

슬프게도 전 모유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유양성소’의 기준으로는 문제적 학생이었죠. 처음 입소한 날이었을 거예요. 병원으로 치면 수간호사급의 관리자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저를 매서운 눈으로 훑어봤어요. 마치 학생 때 2박 3일 수련회 가면 처음 조교가 방으로 찾아와 “지금부터 옷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튀어나온다, 실시!”라고 엄포를 놓는 듯한 분위기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탐색(?)을 끝낸 관리자는 단호한 목소리로 딱 한마디만 하고 사라졌습니다.
  

“많이 물릴수록 젖이 늘어요. 저희가 콜 드리면 빠짐없이 수유하세요. 그리고 틈날 때마다 유축도 계속하셔야 해요.”


내가 젖인가 젖이 나인가


분유 먹여달라 부탁드리러 가는 길...ㅠㅠ


그때부터 정말 젖소처럼 살았습니다.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상관없이 2시간에 한 번씩 방으로 전화가 왔어요. “산모님~ 아기가 배고프대요^^” 내가 자리에 있다는 게 확인되면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직접 아기를 안고 내 방으로 오셨어요.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제가 젖을 물려주자마자 허겁지겁 빨았지만, 콸콸 나오지 않으니 이내 지쳐 잠들어버리곤 했죠. 일부러 깨워 먹여보기도 했지만 같은 상황만 반복됐어요. 가여운 것. 저는 가슴을 여민 뒤 아기를 안고 신생아실로 가서 패배감에 젖은 목소리로 부탁했어요. “얼마 못 먹었어요. 분유 먹여주세요.”
  
아기가 자주 물어야 모유량이 늘어난다는데 우리 아이는 자꾸 잠들어버리니 이 방법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유축기로 틈날 때마다 젖을 쥐어짰어요. 이렇게 하면 모유량이 늘어날 줄 알았거든요. 많게는 하루에 30번까지도 유축했던 기억입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컵에 물을 따르듯이 유축기에 젖을 흘려보내기 위해 십여 분 넘게 등을 앞으로 구부린 채로 있어야 해요. 게다가 저는 길이가 짧아서(^^) 더 숙여야 했어요. 보름 동안 굽은 등으로 살았습니다. 직립보행 인간으로 살다가 엄마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퇴화한 기분이랄까요.
  
젖을 짜낼 때의 고통도 참기 힘들었어요. 한번 유축할 때마다 양쪽 각각 10~15분씩 짜야 했거든요. 30분간 진공청소기로 가슴을 2초 간격마다 빨아들인다 상상해 보세요. 가슴이 멀쩡하겠습니까?
  
유두가 까지다 못해 갈라졌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연고를 바르며 부상 투혼을 펼쳤습니다. 사실 전 모유가 안 나오는 사람이라는 걸 진작 알아차렸어요. 아무리 물리고 짜 봐도 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딱 30일만 버티자는 심정이었어요. 초유를 한 방울이라도 더 먹이고 싶었거든요. 출산 후 30일까지 나오는 초유에 가장 좋은 면역 성분이 들어 있다고 조리원에서 몇 번이고 강조했어요. 초유만큼은 먹여야 한다고. 전 가뭄 난 가슴으로 50일까지 버티다가 조용히 백기를 내걸고 투항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제가 너무 불쌍해요. 어차피 젖이 나오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모유수유에 매달렸을까요. 당분간 낮에 편히 쉬고 밤에 푹 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산후조리원 퇴소 후 집에서 아이와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을 잊지 못합니다. 아기가 밤중에 한 시간 간격으로 깨서 우는 통에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남편과 저는 마치 세상이 끝난 듯한 표정으로 뜨는 해를 바라봤고, 그제야 깨달았어요. 아, 이래서 산후조리원을 천국이라고 하는구나. 천국인줄도 모르고 제대로 누리지 못했구나.
  

천국은 거기 있었다


   

기를 쓰고 모유수유하던 어느 날


선배 엄마들은 애 낳으러 가는 저한테 분명 말했습니다. 산후조리원이 천국이라고. 그곳에 있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젖 먹이라고 하는데 웬 천국?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 산후조리원은 나 하기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곳이에요. 밤에 수유콜을 받지 않으면 조금이나마 더 잘 수 있고, 낮에 ‘직수’(유축이 아닌 직접 먹이는 방식) 횟수를 조금 줄이면 당분간 집에 가면 없을 자유시간도 누릴 수 있어요. 정말 나 하기에 달렸던 거예요.
  
그때는 몰랐어요. 엄마노릇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부담이 컸으니까요. 산후조리원은 엄마 쉬라고 들어가는 곳인데, 정작 그곳에서 저를 돌볼 여유는 없었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엄마의 탄생>이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산후조리사들이 모유수유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녀의 필요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첫 번째 압력을 받게 된다. 해산을 치르며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린 여성 자신은 첫 번째 배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중략) 여성은 ‘엄마’이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자녀를 위해 최적화된 상태로 몸과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 - <엄마의 탄생> 26~27쪽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저처럼 젖이 안 나오면 경우라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쨌든 산후조리원에서는 엄마가 쉬어야 합니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엄마도 살아야 해요. 집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극한 수준의 육아를 해야 할 테고, 그러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전에 일단 엄마의 몸이 좋아져야 해요. 모성은 곧 체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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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발달백과-조리원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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