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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an 20. 2019

산후조리원 '인싸' 대실패기

[엄마발달백과] 새벽 6시, 의문의 까똑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엄마발달백과-조리원편②]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홍입니다.

조리원 가던 날. 정말 처참한 모습이었어요. 아이를 낳은 후 병원에서 두 번이나 쓰러졌어요. 임신 후반부터 철분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아이 낳고 빈혈 증세가 더 심해진 거예요. 계속 어지럽고 온 몸에 기운이 없었어요. 금방이라도 또 쓰러질 것 같았죠.

10시간 넘게 진통하면서 힘을 너무 많이 줘서 그럴까요. 온몸이 산산조각 찢어졌다 재조립되는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4.14kg 아이를 자연분만 하면서 회음부 절개를 많이 했는데 그 고통은 정말...(여기에 치질까지ㅠㅠ) 앉아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도너츠 방석 없이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조리원 상담하러 갔을 때 원장님은 말했어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모유수유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출산 후 제 상태를 본 조리원 관계자는 걱정스럽게 말하더군요.


“당분간 수유콜 받지 말고 푹 쉬어요.
엄마가 몸을 먼저 추슬러야지. 이러다 큰일 나.”


수유콜 안 받으면 푹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그 와중에 젖은 계속 돌았어요. 제때 수유나 유축하지 않으면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지면서 아팠어요. 젖이 줄줄 흘러 조리원 원피스가 다 젖을 정도였죠. 밤에도 3시간 마다 한번씩 깨서 유축을 했어요. 그것도 앉아서는 못하고 서서. 낮 시간에는 아이를 침대에 데리고 와서 누워서 젖을 먹였어요.

찢어진 회음부도, 이제 막 젖을 물리기 시작해 피 나고 딱지 앉은 가슴도. 불이 나는 것처럼 아팠어요.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하루 세 번 좌욕하고, 젖꼭지에 비판텐을 발랐어요. 조리원에 보내는 시간은 2주. 여기에서 몸을 회복해야 집에 돌아가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나도 만들 수 있을까, 조동


몸은 부서질 것 같은데 젖은 먹여야 하고...(이미지 출처 : 마더티브)



조리원 선택할 때 고민은 한 가지였어요. 바로 밥. 방에서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할 것이냐, 식당에서 다른 산모들과 함께 밥 먹는 곳을 선택할 것이냐. 내향적이고 사람 많은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상,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전자를 택했을 거예요.

이번만큼은 달랐어요. 조리원 가기 전 제게는 큰 포부가 있었어요. 조리원 동기, 줄여서 ‘조동’을 만드는 거였어요.  

저는 친정이 멀리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면 꼼짝없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어요. 그때 동지가 될 사람이 있었으면 했어요. 아이 함께 키우는 동네 친구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요. 집 근처에 밥이 맛있다는 조리원을 예약했어요.

조리원 동기가 군대 동기보다 더 끈끈하다고 하잖아요. 퉁퉁 부은 민낯으로 수유실에서 가슴 풀어놓고(?) 함께 젖먹이며 쌓는 전우애! 그런데 저는 2주 중 1주는 아예 수유실을 가지 못했어요. 여기서 1차 실패.

대신 식당을 공략했어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도너츠 방석 위에 앉아서 사교 활동을 했답니다. 모유수유 했는지 제왕절개 했는지 진통은 얼마나 했는지 젖은 얼마나 나왔는지 살은 얼마나 빠졌는지 조리원 나가면 애는 누가 봐줄 건지... 대략 이런 이야기들이 매일 식탁에서 오고갔어요. 어머어머, 열심히 맞장구치며 ‘인싸’가 되려고 노력했죠.

지금 생각하면 조리원에서 뭘 그리 열심히 했나 몰라요. 모유수유, 마사지, 다이어트, 거기에 친구 만들기까지. 푹 쉬면서 몸만 회복해도 모자랐을 시간인데 말이에요.


새벽 6시의 까똑


조리원 동기 단톡방은 유용했다, 처음에는...(이미지 출처 : pexels)



그렇게 애쓴 끝에 조리원에서 나올 때쯤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조동’이 생겼어요. 야호!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하루에도 수백 개의 메시지가 쏟아졌어요.


“예방접종 하셨어요? 몸무게 몇kg예요? 분유 몇ml 먹어요? 수유텀 어떻게 돼요? 변은 언제 한번씩 봐요? 낮잠 재울 때 어떻게 해요? 목욕 어떻게 시켜요?”


같은 초보적인 궁금증부터


“어제 애가 몇 번이나 깼어요. 죽을 것 같아요. 저도저도. 갑자기 등센서가 심해져서 계속 안고 잤어요. 죽을 것 같아요. 저도저도.”


같은 신세한탄까지. 집에 아이와 홀로 있어도 늘 스마트폰은 분주했어요. 외롭지 않았죠. 이래서 조동이 필요하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처지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이는 분유를 ○ml나 먹어요? 저희 애는 너무 안 먹어요.”
“○○이는 몸무게가 ○kg나 나가요? 저희 애는 왜 몸무게가 안 늘까요.”
“○○이는 왜 이렇게 잠을 안 잘까요. 통잠 자는 ○○이가 부러워요.”
“우와, 남편이 애 씻기고 재워줘요? 좋겠다.”
“친정엄마가 애 봐줘요? 부럽네요. 전 독박육아.”


저희 아이는 먹는 것과 몸무게는 뒤지지 않았지만 잠, 잠, 잠이 문제였어요. 조리원에서 나온 후 100일 정도까지 통잠 자던 애가 딱 100일을 기점으로 밤새 계속 깼어요. 100일의 기적은 개뿔. 이가 나거나 감기 걸렸을 때는 (체감상) 5분 10분에 한번씩 깼어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죠.

자다 깨다 밤을 꼴딱 새운 어느 날. 새벽 6시쯤이었나. 조동 단톡창이 울렸어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지 했는데...


“저희 아이 지금까지 통잠 잤어요!”



정말 스마트폰을 집어 던지고 싶더라고요. 아마 그 엄마는 아이가 통잠 잔 것에 감격하며 메시지를 보냈을 거예요. 신생아 때는 잠자는 문제가 거의 전부니까.

그냥 "축하해요" 한마디 했으면 됐을 텐데... 잠을 못 자 예민해진 상황에서 그런 메시지를 보니 마음이 뾰족해지더라고요. '읽씹'하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뒤집어 엎어놨어요.


나는 사라지고 아이만 있는 관계


조동 단톡창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곧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이미지 출처 : pexels)



이후에도 단톡창은 계속 울렸고 몇 번의 오프라인 만남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동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우울해지더라고요. 아이 키우다 보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비교하지 말자’인 것 같아요. 둘째 키우는 것처럼 첫째 키우면 편하다고 하잖아요.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게 참 쉽지 않지만요.

조동 단톡창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곧 나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우리 애가 조금만 못 먹고 못 자고 발달이 느려도 내 자신에 대한 평가 같고, 다른 애랑 비교하게 되고, 조급해지더라고요. ‘쟤는 저렇게 앉아서 밥 잘 먹는데, 쟤는 저렇게 잠 잘 자는데, 쟤는 저렇게 얌전한데,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 하면서 제 자신과 아이를 계속 괴롭혔어요.

아이가 분유 몇 ml 먹고, 하루에 젖 몇 번 먹고, 누워서 자느냐 안겨서 자느냐, 뒤집기를 언제 하고 언제 기어다니느냐... 지나고 나니 왜 그렇게 집착했나 싶어요. 결국 아이는 먹을 만큼 먹고 잘 만큼 자는 어른이 될 거잖아요. 우리가 그래왔던 것처럼요.

아이마다 기질도, 발달도 천차만별이에요. 하지만 신생아 시절에는 온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돼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요. 내 아이가 조금만 달라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죠.

특히,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묻는 사회에서는 아이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가 곧 엄마의 성적표가 돼요. 그런 상황에서 계속 아이 이야기만 하니 더 민감해질 수밖에요.

조동 모임에서는 매일 아이에 대해 수백 개의 카톡이 오갔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관심사가 뭔지, 취향은 어떤지...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만 있을 뿐, 나 자신이 없었죠. 그걸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친구가 될 수는 없었어요.

다행히 그 즈음 지인들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 모임에서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먼저였어요. 아이를 낳기 전부터 형성된 관계니까요. 개월수가 각기 달라서 비교할 일도 없었어요. ‘우리 애도 좀 더 크면 저렇게 되겠구나’ 하고 기대와 걱정(?)을 하게 됐을 뿐이죠.  

이후 놀이터, 문화센터, 어린이집에서도 저는 ‘인싸’에 실패했어요. 워낙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이기도 하고, 제 자신보다 아이가 먼저인 만남이 잘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몇 개월이에요?”하면서 시작되는 관계말이에요.

물론 엄마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친구가 되는 관계도 있어요. 한 선배는 조리원 동기와 매년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도 함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그때 좀 더 마음을 열고 노력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들어요.

다만 저는 엄마라는 이름에만 묶여있는 게 너무 버거웠던 것 같아요. 안 그래도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데, 적어도 ‘어른 사람’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동은 어떻게 됐냐고요? 돌 즈음 와해됐어요. 어느 순간부터 단톡창이 조용해지더라고요(저 빼고 다른 단톡창이 생겼을지도;;).

조리원에서 친구를 사귀어 보겠다던 야무진 꿈은 그렇게 대실패로 끝났답니다.  지금도 처참한 몰골로 조동 만들겠다고 애썼던 제 자신을 생각하면... 쓴웃음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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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발달백과-조리원편①]



[엄마발달백과-조리원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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