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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Feb 03. 2019

친정엄마에게 애 맡기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

[엄마발달백과-친정엄마편 ①] 친정엄마는 육아도우미가 아니다

육아책의 주어는 늘 아이입니다.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해야 할 것을 끝없이 나열합니다. 그럼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습니다. 육아는 아이도 엄마도 함께 자라게 합니다. '엄마발달백과'는 임신·출산·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다시 씁니다. 매주 월요일 만나요.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주영입니다.


‘서울에 남느냐, 경기도로 가느냐.’ 아기를 배 속에 품은 열 달과 육아휴직 1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고민했던 질문입니다. 문장 그대로 읽으면 행정구역이 다른 두 지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지만 속내는 전혀 다릅니다. ‘혼자 키우느냐,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느냐.’ 제 고민은 이것이었습니다. ‘애는 누가 키우냐’는 질문은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풀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문제였어요.


남편과 제 직장은 당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었고, 집은 바로 옆 은평구였어요. 전 취재기자여서 일하는 곳도 근무 시간도 들쑥날쑥했지만 남편은 비교적 출퇴근이 안정적이었죠. 남편이 나인 투 식스 근무를 한다 치면, 아이를 늦어도 오전 8시 30분 전에 맡기고 빨라도 오후 7시 전에 데리고 오게 됩니다. 아이가 10시간 이상 어린이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불현듯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맞벌이 부부의 아이였고, 유아원(당시 어린이집)에선 늘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아빠를 기다렸어요. 그때 느낀 쓸쓸함과 상대적 박탈감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합니다. 그 감정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아이에게 똑같은 상실과 결핍을 줄 순 없었어요.

친정엄마가 사는 곳은 경기도 중부 지역. 전철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왕복 3시간. 그럼에도 전 복직을 한 달 앞두고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친정엄마가 아침저녁으로 저희 집에 와서 등·하원을 도와준다 했습니다. 나도 친정엄마도 고될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른의 피로보다 아이가 받을 스트레스가 더 클 것 같았거든요. 무엇보다 아이의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심리적 고통이 아침저녁으로 멀리 출퇴근하는 육체적 고통보다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친정엄마 옆으로 온 지 2년. 제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두가 익숙해지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미리 고려하고 준비했다면 서로가 덜 상처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친정엄마에게 도움받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들.


1. 엄마도 양육자다


(출처: 에쓰오일 TV 광고 '엄마웃음도 채우세요' 편)


복직 초반에는 친정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쳤습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방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저와 맞지 않았거든요.

  
가장 큰 갈등은 TV 시청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힘들 때 30분씩, 최대 두 번만 보여준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미디어 영상에 노출되면 두뇌 발달에 저해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 때문이었습니다. ‘당신 아이의 머리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 무서우면서도 잠깐 숨 돌릴 틈이 간절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여줬습니다. 당장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절박함과 아이를 유해한 환경에 노출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내린 최선의 타협점이었죠.
  
반면 친정엄마는 너무 쉽게 TV를 켰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거나 옷을 입힐 때면 리모컨부터 찾았습니다. 영상을 틀어주면 아이가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앉아 있고, 그래야 친정엄마가 편하게 아이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친정엄마는 할 일이 있을 때도 아이를 TV 앞에 앉혀둔 채 밥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바닥을 닦았습니다. 시간제한은 딱히 없었습니다.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애 엄마나 애 아빠가 올 때까지 하루 한두 시간은 거뜬히 보여줬죠.
  
제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TV 많이 보여주면 아이가 바보 된다’고 조언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친정엄마도 당장 살고 봐야 했으니까요. 저보다 더 나이든 몸으로 어리고 싱싱한 것을 감당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럼에도 전 아이의 가능성만을 생각했습니다. 양쪽 팔목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친정엄마에게 ‘손녀가 불쌍하지도 않냐’ ‘우리 아이 공부 못하면 엄마가 책임질 거냐’며 모질게 굴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못 믿으면서 어떻게 아이를 맡기니?” 참다못한 친정엄마는 앓아 누웠습니다.
  

“해결방법은 두 가지다. 맹렬하게 부딪혀서 내 의견을 관철시키든지, 아니면 어머니의 육아법에 따르든지. 전자의 경우에는 모녀관계에 금이 갈 걸 각오해야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나의 교육철학과 나의 일을 교환했다고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쿨하게.
  
할머니는 육아 당사자가 아니라 보조자일 뿐이므로 당연히 엄마의 교육철학을 따르는 게 옳지 않느냐고? 단순한 보조자를 원했다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육아도우미를 쓰지 왜 굳이 할머니에게 맡기겠는가. 혈육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믿기 때문 아니었나. 그러나 바로 그 지극한 사랑 때문에 할머니는 단순한 육아도우미로 머물 수 없는 것이다.“ - 박혜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공동 양육자를 한 명 더 늘린다는 의미더군요. 부부의 양육 방식만 고집할 순 없습니다. 친정엄마 역시 아이를 함께 키우는 존재이므로 당신의 육아 방식과 가치관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등원하고 하원하고 먹여주는 일상의 보육을 도맡는 친정엄마가 어쩌면 더 중요한 양육자일지도 모릅니다. 양육 방식이 맞지 않을 때는 친정엄마와 충분히 대화해 접점을 찾아야 해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간을 담당하는 양육자가 최대한 덜 힘들 수 있도록 다른 양육자들이 배려해야 합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아이의 요구만큼이나 친정엄마의 요구도 경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정확한 근무시간과 조건을 약속하라


(출처: KCC건설 스위첸 TV 광고)


저의 친정엄마는 전통적인 ‘모성’의 표본 같은 분입니다. 아프고 힘들어도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갈아 넣습니다. “그래도 엄마니까”라는 말로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왔습니다.

  
그녀의 딸인 저는 편했습니다. 평일마다 손녀 등·하원을 담당하는 친정엄마는 딸이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길 바라는 마음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청소, 빨래, 요리, 손녀 목욕까지 해줬습니다. 주말에는 딸과 사위가 낮잠 잘 수 있도록 두세 시간씩 손녀를 봐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엄마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학병원까지 갔습니다. 갑상선암이 의심되니 조직검사를 받아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암은 아니었지만, 전 그때 알았습니다. 친정엄마는 저보다 더 늙고 약한 존재이므로 언제까지 제가 기댈 수 없다는 걸요.
  
그 이후로는 엄마의 퇴근과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근무 시간을 앞당겨 최대한 일찍 퇴근해 친정엄마와 교대했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재택근무를 하며 친정엄마에게 숨 돌릴 틈을 드렸습니다. 평일에는 정말 아이만 돌보실 수 있도록 살림을 밀어두지 않았고, 주말에는 어떻게든 둘이서 아이를 돌봤습니다.
  
아무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 해도 아이 돌봄도 엄연한 노동입니다.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구하기 전에 미리 근무 시간과 일수, 급여(용돈) 등을 정확히 정해두고 시작해야 모두가 건강히 오래 갈 수 있습니다.


3. 나는 을이다


(출처: KBS <속보인> 스틸컷)


부모님께 도움을 받는 순간, 결혼으로 이뤄낸 독립이 유보됩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손녀를 봐주기 위해 친정엄마가 집으로 오고, 냉장고가 지저분하니 당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해주게 되고, 풍수지리상으로 최선이 아닌 곳에 거울이 있으니 다른 곳에 두라고 조언하게 되고... 그렇게 다시 친정 식구가 제 삶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게 됩니다.

  
남편은 친정엄마의 살림법에 유독 낯설어했습니다. 집안 살림을 주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철학과 기준이 확고했거든요. 남편은 그릇용과 컵용 수세미를 따로 쓰고, 비 오는 날에는 빨래를 널지 않으며, 니트는 꼭 반듯하게 접어서 보관합니다. 친정엄마는 그걸 지키지 않았고요. 가끔 옷장 앞에서 인상을 쓰고 서 있는 남편을 볼 때면 중간에서 참 난처했습니다. “김 서방이 싫어하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기껏 고생한 친정엄마가 속상할 테니까요.
  
기회가 될 때마다 최대한 친정엄마가 마음 상하지 않게 말하려 했고, 남편에게도 이해를 구했습니다. 친정엄마가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만큼, 우리도 어느 정도 눈 감을 수 있어야 한다고요. 쥐는 게 있으면 그만큼 놓아야 하는 게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게 싫으면 도움을 받지 않거나, 최대한 빨리 다시 독립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늘 고민합니다. 친정엄마 덕분에 마음 편히 직장 생활을 하지만, 계속 친정엄마에게 기대 살 순 없어요. 도리어 언젠가는 친정엄마가 제게 기댈 수 있도록, 노쇠한 그 몸을 업고 나아갈 수 있도록 두 발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정엄마에게 기대지 않고 아이를 키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 벌 순 없을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해 계속 친정엄마 옆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친정엄마를 황혼육아에서 구하고 싶습니다. 멀지 않은 날, 나 역시 어엿한 엄마로 독립하길 바랍니다.
 


[엄마발달백과-친정엄마편②]

[엄마발달백과-친정엄마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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